Prologue XII. 자승자박

몇주 전 자살한 직장 동료가 계속 그의 눈에 보였다. 그냥 일면식도 없는 직장 동료였는데, 회식이 있었던 날 이후로 부고가 들려왔고, 그 뒤로 계속해서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회식할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나타난 그녀는, 그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눈으로 그를 ‘신랑’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뒤로는 여자를 만나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만나려고 약속을 잡으면 다른 일이 생겨서 파토를 내게 되거나, 여자쪽에서 갑자기 파토를 내기도 했다. 어쩌다가 약속이 성사되더라도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서 애프터가 들어오지 않았다.

최근에는, 그뿐 아니라 몇 번이나 죽을뻔 하기도 했다. 머리 위로 벽돌이나 화분같은 게 떨어진다거나, 길을 가다가 오토바이나 전동 킥보드에 치일 뻔한 적도 있었다. 갑자기 걷다가 넘어져서 차에 치일뻔한 적도 있었고, 발을 헛디뎌서 다칠뻔한 적도 있었다. 정말 이렇게 가다간 정말 결혼도 못 해보고 죽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치고 위협받다보니 주변에서 걱정해 줄 수준이었다.

“사, 살려주세요! 이러다간 정말 죽을 지도 몰라요… ”

막 출근한 미기야가 본 것은, 아침부터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웬 젊은 남자가 라우드를 붙들고 사정사정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라우드는 남자를 진정시킨 다음 미기야에게 안내해주면서, 뭔가 붙어있는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미기야는 라우드에게서 자초지종을 전해듣고, 남자를 진정시킨 다음 자리에 앉게 했다.

“주초부터 손님이라니… 엉? 이 녀석, 엄청난 걸 데리고 있잖아. ”
“아, 파이로 씨. ”

미기야가 손님을 앉히고 막 상담을 시작할 무렵, 파이로도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파이로가 본 것은, 남자가 미기야와 얘기를 나눌동안 주변에 서 있던 젊은 여자였다. 남자와 또래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는, 머리를 하나로 묶고 흰 옷을 입고 있었다. 남자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요량인지, 젊은 여자는 시종일관 남자의 옆에 붙어있었다. 아마도, 젊은 남자가 온 것도 이 여자 때문인 모양이었다.

“여자 귀신이 붙어서는 떨어지려고 하질 않습니다… 쳐음에는 그냥 눈앞에 나타나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절 죽이려고 하고 있어요. 뜬금없이 벽돌이 머리 위로 떨어지거나 맹견이 갑자기 덤비기도 하고, 차에 치일뻔한 적도 있었어요. ”
“혹시 머리를 하나로 묶고 흰 옷을 입은 여자분 말씀하시는 건가요? ”
“마, 맞아요! ”
“지금도 옆에 있습니다만… 혹시 그 분하고 아는 사이인가요? ”
“직장 동료였습니다. …일 외에는 교류가 전혀 없었던 직장 동료였죠… ”

일 외에는 교류가 없는 직장 동료라면 어떤 실수때문에 꽁해있다거나, 아니면 이 여자가 이 남자를 너무나 사랑하지 않는 이상 유령이 되어 붙어있을 일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남자에게 여자 귀신이 붙은 이유와 죽이려 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뭔가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던가, 이 여자가 니가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은 게 아니면 굳이 붙어있을 이유가 없는데.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거 아니지? ”
“절대요. ”

파이로는 남자가 말할 때, 여자가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보고 있었다. 숨기는 것이 없냐는 질문에 남자가 없다고 대답하자마자, 여자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남자를 죽일 기세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 좋아, 너. 잠깐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
“…네? ”
“그 여자, 어떻게든 해결 볼테니까 일단 기다리라고. ”
“…… ”

파이로는 멀뚱히 앉아있는 남자를 뒤로 하고, 그 길로 위층에 있는 고키부리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도희를 찾은 그녀는, 안에서 도희가 나오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손님으로 온 젊은 남자의 이름과 나이, 현재 뭘 하고 있는지를 얘기했다.

“김재식씨, 28세고… 지금 A 기업에 재직중이라고요? 그리고 뭔가 엄청난 게 붙어있다… ”
“여자 귀신이었는데, 걔 말로는 일 외에 교류가 하나도 없는 직장 동료였대. 그런데 붙었다고 하고… 근데, 내가 볼 땐 뭔가 더 있는데 안 밝히는 것 같단 말이지. ”
“아, 안그래도 그 분때문에 의뢰가 들어온 건이 있긴 했는데요. ”
“엥? 의뢰? ”
“네. 아무래도 강제로 범해진 다음 자살했다… 거기다가 죽은 분이 A 기업 소속이었다는 걸 보면 아마도 괴담수사대에 찾아오신 분에게 붙어있는 것 같네요.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
“강제로 범해진 다음 자살이라… 좋아, 나머지는 그 여자한테 직접 듣지. 알려줘서 고맙다. ”

미기야가 젊은 남자에게 부적을 건네려던 찰나, 고키부리 사무실에서 돌아온 파이로가 부적에 혼불을 붙여서 태워버렸다.

“파이로 씨! 그 부적 태우면 어떻게 해요! ”
“부적 주는 건 아직 일러. 그 전에, 얘랑 여자 둘 다 나랑 얘기를 좀 해야겠거든. 시각화 부적 있지? 좀 줘봐. ”
“시각화 부적이요? 그거 다 떨어져서 써야 하는데… ”
“그럼 그것부터 써. ”

미기야가 부적을 건네주자, 파이로는 여자의 등에 부적을 붙였다. 그리고 젊은 남자에게만 보였던 여자가 모습을 드러내자 파이로는 사무실 의자에 그녀를 앉혔다. 사색이 된 젊은 남자와 달리, 그녀는 마냥 행복한 얼굴이었다.

“히익- ”
“자,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니 엔딩이 갈린다. 여기서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있고, 이 여자를 떼 줄 수도 있어. 내가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하면 멀이지. 이런 말 알지? ‘귀신을 속여?’. 이 몸은 말 그대로 귀신이니까, 속일 생각 하지 말고 똑바로 대답해, 김재식씨. ”
“무, 무슨… ”
“너, 이 여자한테 무슨 짓 했지? ”

맞은 편에 앉은 여자는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느냐는 표정을 지었고, 남자는 안그래도 사색이 된 얼굴이 거의 죽은 사람마냥 창백해졌다. 동시에, 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는 눈치였고 여자는 그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사무실 위층에는 고키부리 사무실이 있어. 거기는 여기랑 달리 최고의 정부원들이 나노단위로 정보를 수집해주는 사무실이고… 니가 뭘 숨기고 있는 눈치라서 내가 위층에 갔는데, 이 여자 부모님이 의뢰인으로 왔다 간 모양이던데. ”
“의뢰인…? 이 여자분의 부모님이요? ”
“이 여자의 사인은 자살이다. 그리고 이 녀석이 이 여자를 죽게 만들었지. 왜? 얘가 하기 싫다는데, 얘가 강제로 범해서. ”
“뭐…라고요? ”

기막힌 우연이라고 해야 할 지, 그녀의 부모님이 젊은 남자가 찾아온 날 고키부리 사무실을 찾아 의뢰를 했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의 의뢰 대상이자 그들의 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은, 괴담수사대에 그들의 딸을 데리고 왔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는 상황이었다.

“기막힌 우연 아니냐? 이거 아니었으면 조사하는데 며칠은 걸렸을 거 같은데. 아니면 이 여자 데리고 얘기하거나… ”
“자, 그래서. 니가 말해봐. 어떻게 된 일인지… 얘를 죽이려고 하는 게, 단순히 원한 때문이야? ”
“원한이요…? 아뇨, 제 낭군한테 원한이랄 게 있겠어요? ”
“…엉? ”
“그렇지~ 나랑 결혼할 생각이 있어서 그랬던거지…? 그래서 나랑 잤다고 다 떠벌리고 다녔던 거 아냐? 그래서 회식한 날, 내가 술 못 마시는 거 뻔히 알면서 소주 연거푸 먹여서 취하게 만들고… 모텔 데려가서 그랬던거지? ”
“너도 만만찮다만… 이거 생각보다 쓰레기였잖아. ”

여자는 덧붙여서, 이 사람을 죽이려는 건 원한 때문이 아니라, 이 사람이 살아있고 자신이 죽은 상태에서는 결혼을 할 수 없으니까 이 사람을 죽인 다음 결혼하려는 생각이라고 했다. 자신은 혼전순결 주의였고 그걸 알면서도 범한 것, 그리고 그걸 다 떠벌리고 다닐 정도면 결혼할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논리와 함께. 얘기를 듣던 미기야는 어이가 없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 그럼 김재식씨. 발언권은 너한테 있다. 니가 한 개짓거리에 대해 반성하냐? ”
“…… ”
“다시 묻는다. 니가 한 개짓거리에 대해 반성하냐? 그 여하에 따라 니 엔딩이 갈리거든. ”
“아니… 애초에 그 날 회식인 걸 알면서 치마를 입고 온 게 잘못 아니예요? 제 옆자리에 앉아서 끼부린 게 잘못 아니고? 그래놓고 이제와서… 뭐라고? 결혼? 혼전순결? 그럼 애초에 끼부린 게 문제지. ”
“너, 이 옷이 그 날 입었던 옷이냐? ”
“네. 회식이 있었던 날도 다른 분들이 다 앉고 저는 나중에 들어왔더니 이분 앞자리가 비어서 앉은 것 뿐이었어요. 그냥 얘기 들어주면서 웃었던 게 다인 것 같은데… 아, 혹시 그래서 그랬던거야…? ”
“오. 이거 개자식에 착각남인데? ”

파이로는 이제 됐다는 듯 여자의 등에 붙였던 부적을 뗐다. 그러자 여자는 눈앞에서 사라졌다.

“미기야, 부적 써주지 마. 이녀석은 살려두면 다른 여자도 지 멋대로 착각해서 범할 놈이다. ”
“그래도 의뢰인인데… ”
“이 여자를 떼버릴 작정이었으면 아까 보였을 때 내가 혼불로 태웠겠지. 그런데 왜 안그랬는지 아냐? 이 자식이 개자식에 착각남이었거든. 참고로 말해두자면, 아까 그 여자가 입었던건 치마가 아니라 치마바지다. 겉으로는 치마같이 보여도 안쪽은 바지라는거지. ”
“그런 옷이 있어요? ”
“야나기도 몇 벌 갖고있어. 그게 그래보여도 활동하기에 편하다나… 아무튼, 니 의뢰는 기각이야. ”

파이로는 여자쪽을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니 멘탈도 참 대단하다. 뭐, 그거랑은 별개로… 이 자식, 죽이던 살리던 이제 니 자유니까 알아서 해.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팝콘 튀겨놓고 구경하다 죽이는 걸 추천한다. 고키부리 사무실에서 행동 들어가면, 얘 말 그대로 인생 개차반 되는거거든. ”

남자는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이 사무실을 나서야 했다.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머리 위로 화분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화분을 피하다가 오토바이에 치여서 죽을 뻔 했다. 겨우겨우 회사로 돌아온 그는 어찌됐건 일은 해야 했기에 일을 시작했다. 괴담수사대에 방문한 것은 반차를 쓰고 간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점심도 따로 먹고 들어갔다.

“재식씨, 인사팀에서 찾으세요. ”
“인사팀에서요? ”

인사팀에서 찾는다는 말에 무슨 일일까 불안해하면서 간 그를 맞아준 건 인사팀 팀장이었다. 팀장은 재식에게 1년동안 고생했다는 말로 운을 떼면서, 경주에 지사가 하나 있는데 그 쪽으로 발령가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잘리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그 제안을 수락했고, 며칠 후 경주 지사로 발령을 받고 내려갔다.

‘이제 본사에서 짤릴까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겠는데? 다행이다. ‘

하지만 그는 몰랐다. 경주 지사가 그 회사 재직자들에게는 아무것도 할 게 없는데 사무실에 나와야 하기 때문에 소위 ‘무덤’으로 불리는 곳이라는 것과, 이제 그녀가 그를 죽이려고 무슨 짓을 해도 걱정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발령받고 출근한 김재식이라고 합니다. ”
“아, 어서 와요. 얘기는 들었어요. 그래도 본사에서 꽤 실력 있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어쩌다 이런 곳으로 오셨대… ”
“…네? ”
“여기는 사실상 한직이예요. 하는 일은 없지만 출근은 해야 하다 보니, 여기로 발령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금방 관둬버리고 말아요. 왜 거, 휴게실 앞에 책상 갖다 두고 거기서 일하라고 하는 것처럼… 여기도 그런 곳이거든. ”

인사팀에서도 고키부리 사무실을 통해 접했기때문에 알고 있었다. 회식이 있은 후 사망한 직원과, 그 직원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하지만 그런 걸 빌미로 해고하기에는 회사측에서 대외적으로 손해보는 게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한직으로 발령을 보낸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버티다가 결국 제 발로 그만두게 마련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