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괴담수사대인가요? ”
“그렇다만. ”
미기야가 잠깐 외근을 나가고, 파이로가 사무실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 사무실에 들어선 것은 중학교 1~2학년은 되어 보이는 어린 남학생이었다. 남색의 니트 베스트 한쪽에는 파란 바탕에 하얀 글씨로 ‘한진우’라는 이름이 쓰여진 명찰이 붙어있었고, 베스트 안에는 남색 타이를 메고, 남색 교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 책 좀 어떻게 해 주세요. 돈은 어떻게든 용돈을 모아서 드릴게요… ”
“문제집? ”
남학생이 내민 것은, 서점의 참고서 코너에 탑처럼 쌓여 있는 개념서였다. 중학생은 물론이고 고등학생들도 잠잘 때나 밥먹을 때 외에는 손에서 떼지 않는 필독서로 알려져 있는 그책은, 영어 문법과 단어를 효과적으로 외우는 법이 적혀 있었다.
파이로는 책을 받아들고 페이지를 넘겼다. 책 군데군데 낙서가 가득했고, 메모같은 것도 보였다. 포스트잇으로 붙인 메모도 있었고, 책에 적혀있는 메모도 있었다. 하지만 정상적인 메모라고는 할 수 없었다. 구해줘, 살려줘, 이제 끝이야. 중학생이 개념서에, 그것도 붉은 펜으로 쓸 법한 단어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단어의 밑에는 수정테이프로 덮어씌운 흔적도 있었다.
평범한 문제집이겠거니, 하고 책을 펼쳤던 파이로의 표정이 굳었다.
“이 책, 어디서 난 거야? ”
“어머니가 헌책방에서 구해오신건데… ”
“이거, 네가 쓴 거 아니지? ”
“네… 계속 보이는데 뭔가 소름끼쳐서 수정테이프로 지웠는데, 지워도 지워도 계속 나와요. ”
“이거 말고 별다른 건 없었지? ”
“가끔 자려고 하면 누군가 옆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요. 너도 가자면서… 중간고사 공부때문에 밤새고 있었는데 갑자기 창문으로 끌려갈뻔 한 적도 있었는데, 형이 도와줘서 살았어요. ”
“이 책, 지금 바로 해결해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일단 서점으로 가자, 똑같은 책으로 한권 더 사줄게. ”
파이로는 서점으로 가, 남학생이 건넸던 책과 똑같은 책을 산 다음 책 표지 안에 미기야의 연락처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리고 주말쯤 집으로 한번 찾아가겠다는 말과 함께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는 당부를 남기고 남학생을 보냈댜.
“이런 게 잘도 팔리고 있었군… ”
주말, 파이로는 미기야와 함께 이전에 찾아왔던 남학생의 집을 찾았다. 오래되어보이는 외관에, 낡은 철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남학생이 나왔다.
“괴담수사대에서 왔어. 네가 진우니? ”
“네. ”
“부모님은 안에 계셔? 잠깐 들어가도 될까? ”
“아버지는 나가셨고, 엄마는 안에 계세요. 들어오세요. ”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 진우는 물 세 잔을 내 왔다.
“이 누나 통해서 얘기는 들었어. 책에서 괴현상이 생겼었다고 했지? ”
“네. 새 책을 받고 나서는 없어졌는데, 괴담수사대에 찾아가기 전까지는 누가 계속 속삭이는 소리도 들리고… 이상한 낙서도 보였어요. 수정테이프로 지웠는데도 계속 나와서… ”
“이 책, 혹시 어디서 샀다는 얘기는 못 들었니? ”
“어머니가 동네 헌책방에서 구해오신 거라고 하셨어요. ”
“동네 헌책방? 혹시 이 동네에 헌책방이 있니? ”
“저 쪽으로 가면 있을거예요. 참고서에 낙서가 되어있는 것도 있고, 오래된 것도 있긴 한데 그래도 꽤 싸게 구할 수 있어요. ”
미기야가 진우와 얘기를 나눌 동안, 파이로는 집을 둘러보고 있었다. 전등과 콘센트, 집 안에 있는 집기류까지 새 것으로 보이는 물건은 없었다. 세 사람이 앉아있는 밥상과, 밥상 앞에 있는 방석, 그리고 물잔까지. 살림살이가 많이 낡아보이는 것 외에는 별다를 게 없는 집이었다.
진우의 집을 나선 두 사람은 진우가 알려준 헌책방을 찾아가, 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헌책방 주인도, 두 사람의 얘기를 듣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믹스 커피를 한 모근 들이킨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이 책의 주인은 몇달 전에 자살했수. ”
“자살…이요? ”
“예. 여기 쌓여있는 문제집들도 그 학생건데, 아무래도 죽은 사람이 쓰던거기도 하고 찝찝해서 그냥 두고 있었지… 원래 이것도 팔지 않으려고 했던 건데, 하도 사정사정해서 반값에 팔아넘긴거외다. ”
헌책방 주인이 가리킨 곳에는 커다란 상자가 있었고, 상자 속에는 문제집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혹시 이 책을 쓰던 사람이 왜 자살했는지 들은 건 있으세요? ”
“있다마다. 살아생전에 부모가 쥐잡듯이 잡아서 항상 죽어가는 몰골이었거든… 거의 산송장 보는 줄 알았지.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아마 기말고사 끝나고 성적표 나올 때였던걸로 기억해요. 그 날따라 이상하게 표정이 안 좋았거든… ”
“성적표라… ”
“그 뒤로 한동안 안보이더니, 그 집 부모가 와서 문제집 처분하고 간거유. 문제집도 거의 던져두다시피 두고, 돈도 안 받고 휙 가버리더만… ”
“…… ”
“괴담수사대라고 했수? 그럼, 이 문제집들도 가져가시구려. 자살한 학생이 쓰던 물건이라 찝찝해서 팔기는 뭣하고, 전부 태워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수다. ”
미기야와 파이로가 상자를 하나씩 나눠 들자, 헌책방 주인은 상자에 같이 들어있던 것이라며 작은 다이어리 하나도 얹어주었다. 두 사람은 책방 주인에게 인사를 건네고, 무거운 책 더미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럴거면 카트를 하나 사는 게 낫지 않냐… ”
“다른 분들이라도 부를 걸 그랬나봐요. ”
“부른다고 금방 올 것도 아닌데, 뭘… 여기가 좀 머냐. ”
사무실로 돌아온 파이로는 책 더미를 내려놓고, 헌책방 주인이 얹어 줬던 다이어리를 읽었다. 다이어리에 적혀있는 것들은 온통 공부에 관련된 것이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외에는 문제집 풀기나 학원 가기, 인터넷 강의 듣기가 전부였다. 한창 뛰어 놀 나이인 중학생의 스케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수위였다.
‘이 정도면 멀쩡히 살아있는 것도 기적이겠군. ‘
살인적인 일정도 일정이었지만, 다이어리의 주인은 거의 정서적으로도 메말라가고 있었다. 한창 뛰어놀고 밝게 웃어야 할 나이에 공부를 강요당하면서, 제대로 잠도 자지 못 하고 친구와 놀지도 못 했다. 아직 미성년자인 학생이 이 지옥에서 탈출하는 법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난 뒤에야 단장의 고통을 느끼면서 뒤늦게 후회한다.
“뭐예요? ”
“문제집 주인이 쓰던 다이어리. 보고 있다 보면, 죽은 이유가 납득이 가게 되던데. ”
“…… ”
“자식을 무슨 게임 도전과제 취급하는 부모들도 있고, 자기가 못 이룬 꿈을 자식들이 이뤘으면 하는 부모도 있지. 팔팔하면 자기네들이 할 것이지, 애꿎은 자식만 잡고 앉아있는 꼴이란…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이럴 겨를도 없었는데, 요즘은 아주 배가 불렀어. ”
“파이로씨가 한참 살아계셨을 때는 어땠길래 그러세요? ”
“그때는 일제강점기였어. 한글은 몰래 쓰고 있었지만, 일단 대외적으로는 순사놈들때문에 일본어를 써야 했지. 이름도 일본식으로 죄다 바꾸라고 하는 통에 난리였었고… 공부고 나바리고, 그 때는 중학생 나이 되면 혼인부터 했었어. 그래야 위안소 안 끌려가지. 그 때 말자 그거 끌려가려던 거 내가 그놈들 돌팔매로 쫓아내서 겨우 구해줬는데… ”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파이로의 입장에서,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간 부모는 한심한 부류였다. 그녀는 한글 대신 일본어를 써야 했고, 이름도 강제로 일본식으로 바꿔야 했으며, 배움이고 뭐고 중학생이 되면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도록 다들 시집장가를 보내던 시절이었다. 그녀의 친구도 그 시절에 태어나고 자랐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있어서 몰래 한글을 배워왔었고, 전쟁이 끝난 후 늦은 나이에 대학교를 들어가 만학도로 살았다.
“말자 걔, 예전에 명계 갔다가 만났더니 환갑인가 먹고 만학도 돼서 대학 졸업장 땄더만… ”
“멋지네요. ”
“내가 봐도 대단해. 걔는 어릴때부터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있었거든… 진짜 못 다 이룬 꿈이 있으면 걔마냥 자기가 노력해서 이뤄야지, 애꿎은 자식들을 잡고 있는 꼴이 얼마나 한심하냐? ”
“그건 그래요. …그나저나 이 책의 주인은 명계에 도착했을까요? ”
“애꿎은 사람 옆에 붙어서 길동무 삼으려고 했던 걸 보면, 아마 여기 붙어있는 모양인데? 뭐, 그건 명계에 물어보면 알겠지. 아니면 위쪽에 맡겨보던가… 아, 이름은 문제집에 쓰여 있네. ”
다음날, 파이로는 헌책방 근처에 있는 중학교를 찾아가 교문을 지키고 있는 선생에게 문제집에 적혀있던 학생을 아느냐고 물었다. 이름을 듣자마자 사색이 되었던 선생님은, 파이로에게 교문 지도가 끝나면 얘기하자며 학생들을 안으로 들였다.
등교시간이 어느정도 지나고, 교문을 닫은 선생은 파이로와 함께 교정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근우는 제가 몇달 전까지만 해도 담임으로 맡았던 학생이었습니다. 참 공부도 잘 하고, 쳥소나 주번 일도 성실하게 했던 학생이었죠.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고… ”
“몇달 전까지 담임이었다는 건… ”
“지금은 이 세상에 없으니까요. ”
“…… ”
“진로상담을 할 때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던 학생이었는데, 부모님의 반대가 꽤 심했습니다. 외국어고등학교에 보내야 한다면서… 미술 선생님께 듣기로는 미술 대회에 출품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는데, 부모님이 못 나가게 막았다고 했습니다. ”
“…… 부모로서 실격이군요. ”
선생은 근우가 하늘에서는 그리고 싶은 그림을 실컷 그리면서 편히 쉬었으면 한다 말을 남기고, 쓴웃음을 지었다.
학교를 나와 사무실로 돌아가던 파이로는 화방에 들렀다. 그리고 물어물어 미대생들이 많이 쓸 법한 미술 도구를 사 왔다. 사무실에 돌아온 그녀는 제단처럼 쌓여 있는 문제집 위에 미술 도구를 올리고, 그 위에 혼불을 붙였다.
“담임선생도 안녕을 바라는데, 니가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쓰냐. 되먹지 못한 부모 만나서 고생한만큼, 다음생에 편히 하고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 ”
문제집에 쓰여져 있던 이름과 낙서들이 혼불에 타서 없어지고 있었다. 낙서가 희미하게 사라져가더니, 이윽고 혼불에 책과 미술 도구가 타서 재 하나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때, 파이로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
‘여, 나다. 시트로넬. ‘
“니가 웬일이냐? ”
‘H구 정근우 학생, 알아? ‘
“어, 사정이 생겨서 그 학생이 쓰던 물건을 이 쪽에서 처분했어. 그건 왜? ”
‘다른 건 모르겠고, 지금 빨리 이 쪽으로 와. ‘
“어딘 줄 알고 오래. ”
‘주소 보내줄테니까, 아무튼. ‘
시트로넬의 연락을 받고 간 파이로가 본 것은,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트로넬과 사건 현장에 둘러져 있던 테이프였다. 갓 도착한 형사들은 사건을 감식하고 있었고, 형사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집에 살던 부부가 죽었다고 한다.
“이게 무슨… ”
“보는 그대로야.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어버렸거든. ”
“눈앞에서? ”
“애초에 단죄할 목적으로 간 게 맞긴 하지만,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뭔가 와서 둘을 죽이고 사라졌어. 너한테 연락하기 5분쯤 전에. ”
“5분 전이면… 쓰던 문제집에 혼불 붙여서 태울 떈데? 그 무언가가 혹시 중학생 정도 되는 남자였어? ”
“어. ”
“…… ”
성불하기를 바라면서 원한이 깃든 물건을 혼불로 태웠더니, 오히려 원한을 해방한 꼴이 되어서 멀쩡한 사람 두 명이 죽었다.
“그 녀석, 어디로 갔는지 알아? ”
“두 사람을 죽이고는 이제 만족했다는 듯 사라졌어. 아마 명계로 갔을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