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XIV. 일가화락(一家火落)

“영훈이 엄마… 오늘도 나갈거야? ”
“네… 사과를 받지 않으면, 제가 편히 눈을 못 감을 것 같아요. ”

오늘도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 위해, 아침을 대충 라면으로 때우고 몸을 움직인다.

그녀의 아들은 K 고등학교 야구부에 있었다. 선배들의 사랑의 매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기합 아래, 그녀의 아들은 횡문근융해증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가해자는 사과하지 않았고, 가해자의 부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는 학폭위를 열겠다는 얘기는 했지만 둘러대기 위해 명목상 얘기한 것이었고, 곧 드래프트 지명이 있다는 이유로 실제로는 가해 학생들을 처벌하지 않고 넘겼다.

변호사를 선임할 돈조차 없었던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아들이 당했던 일을 널리 알리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주말을 제외하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녀는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곤 했다. 정문 앞에서 시위를 하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후문에서 시위를 하자 학교에서 후문을 막아버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않으면, 편히 눈을 못 감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음? ”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남자가 있었다. 마치 드라마 속에나 나올법한 생김새의 남자는,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곁에 있던 여자에게 뭐라 귓속말을 했다. 그리고 그의 곁에 있던 여자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이 학교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
“제 아들이 야구부였는데, 기합을 받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측에서는 쉬쉬하기 바쁘고, 제 아들을 죽게 만들었던 학생은 사과도 하지 않고 있어요…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억울해서 저도 아들 뒤를 따라 갈 것 같습니다. ”

여자가 돌아가 남자에게 귓속말을 하자, 남자가 직접 그녀에게 다가갔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
“네? ”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

남자가 건넨 명함에는 ‘파리아 대표이사’라는 직함이 적혀있었다. 그녀는 명함에 적힌 직함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파리아라면 우리 나라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는 꼽힌다는 기업이다. 계열사도 꽤 많은데다가, 이번에 프로 야구 구단도 하나 인수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아들도 생전에 그 구단에서 뛰고 싶어했었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

“파리아…? 이번에 프로야구 구단을 하나 인수했었죠? ”
“어떻게 아세요? ”
“아들이 거기서 뛰고 싶어했어요… 지금은 없지만… ”
“저런… ”
“아드님을 죽게 만든 사람이 사과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쪽 아드님을 죽게 만든 것을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

그는 그녀를 돌려보낸 후, 학교로 들어섰다.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위해, 선수들의 생활기록부를 받으러 왔다가 그녀를 만났던 것이다. 야구부 담당 교사를 만나 생활기록부 파일철을 받은 그는, 파일철을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음… 이번에 드래프트 신청을 한 게, 이 학생들인가요? ”
“네. ”
“학생들이 어떻게 야구를 하는지 한 번 보고 싶은데, 볼 수 있을까요? 저희 구단에서 뛸 준비가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다른 관계자분들도 한번 보고 왔으면 좋겠다고 하셔서요. ”
“마침 곧 야구부 연습이 있으니까, 함께 가서 보시죠. ”

잠시 후, 수업이 끝났다. 그리고 곧이어 야구부 학생들이 우르르 운동장으로 몰려왔다.

“쌤, 안녕하세요. ”
“어, 얘들아. ”
“이 분은 누구세요? ”
“파리아에서 오셨는데, 너희들 연습하는 모습을 한 번 보고싶다셔서. ”

드래프트 때문이구나, 학생들도 이해한 눈치였다. 파리아가 인수한 구단은 프로야구 구단들 중에서도 성적이 좋지 않기로 유명하다보니, 아무래도 최고의 선수를 데려가고 싶은거겠지. 담당 교사의 지시에 맞게 스트레칭을 한 학생들은, 저마다 투구와 타구 훈련을 하고 있었다. 남자는 드래프트 신청을 한 학생들 위주로, 생활기록부와 함께 받은 사진을 번갈아서 보며 확인하고 있었다.

“지금 훈련하는 학생들은 전부 3학년인가요? ”
“1, 2학년들도 섞여있습니다. 드래프트 신청은 하지 않았지만, 열심히 해서 내실을 갈고 닦는 중이죠. ”
“그렇군요… ”

남자가 학생들을 유심히 볼 동안, 옆에 있던 여자는 벤치에 있던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너희들은 운동 안 하니? ”
“네. 장비가 모자라서 쉬고 있었어요. ”
“그렇구나… 여기 도영훈이라는 학생이 있다고 들었는데… 안 보이네. 오늘은 훈련 쉬나봐. ”
“도영훈…? 누나, 영훈이랑 아는 사이예요? ”
“먼 친척이야. 오촌쯤 될까… 어릴 적에 가족 행사에서 몇 번 본 적은 있는데, 요즘 통 얼굴을 못 봤거든. 이 학교 야구부라는 얘기를 듣고 오는 김에 얼굴이나 좀 볼까 했는데, 오늘은 없나보네… ”
“저, 그게… ”

벤치에 앉아있던 학생들은, 옆 벤치에 있는 담임 교사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녀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학생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오늘 저 분이 야구부원들을 위해 저녁을 살 거야. 그 때 누나가 너희들만 따로 빼 줄테니까 얘기해줘. 선생님 눈치 안 봐도 되게끔 해줄게. ”
“네. ”

고된 훈련을 마친 학생들은 마무리 운동을 하고, 배트를 정리했다. 그리고 벤치에 있던 담임 교사가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자, 자, 얘들아. 오늘은 이 분이 너희들 먹으라고 치킨을 사 왔다. ”
“와- ”
“감사합니다! ”

곧이어 배달시킨 치킨이 도착하자, 남자는 아이들과 함께 치킨 박스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 옆에서 여자는 비닐봉지를 풀고 치킨 박스를 꺼내고 있었다.

“어, 콜라가 모자라네… ”
“제가 사오겠습니다. 콜라가 많이 부족한가요? ”
“대여섯병은 있어야겠는데? ”

여자는 콜라가 많이 필요해 혼자 들고 오기 어려울 것 같다며, 벤치에 앉아있었던 학생들을 가리키며 오늘은 거의 벤치에 앉아 있었으니 다른 학생에 비해 체력 소모도 덜할거라는 구실을 붙여 두 명을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담임교사가 흔쾌히 수락하자, 그녀는 두 명을 데리고 콜라를 사기 위해 나섰다. 교문에서 몇 발짝 떨어져서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되자, 학생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누나, 영훈이… 죽었어요. ”
“영훈이가? 왜? ”
“선배가 영훈이한테 기합을 너무 많이 줘서요. 그래서 걔네 엄마가 매일 정문 앞에 와서 시위하고, 수위아저씨나 선생님이 쫓아내는 소리가 들리는 게 일상이예요. ”
“횡문근융해증으로 죽었다고 들었는데, 학교에서도 곧 드래프트 있다고 쉬쉬하고 넘어가려고 해서 선생님 앞에서는 영훈이의 영자도 꺼내면 안돼요. 몇몇은 한번만 더 영훈이 얘기 하면 야구부에서 쫓아내고 다시는 야구도 못 하게 만들겠다고 협박도 받았어요. ”
“그랬구나… 그럼 그 선배라는 사람도 오늘 운동장에서 뛰었겠네? ”
“네. 아마 구단에서 보러 왔다고 해서 평소보다 더 열심히 했을걸요? 그 형, 학교에서도 거의 유망주로 밀어주는 학생이라 아마 오늘 안 뛴다고 했으면 선생님이 어떻게든 설득해서 뛰게 만드셨을거고… ”

여자가 학생들과 함께 콜라를 들고 돌아오자, 남자는 두 명의 학생에게도 치긴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다음 스케줄이 있어 같이 못 먹게 되어서 아쉽다는 말과 함께, 열심히 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여자와 함께 교문을 나섰다.

“어떤 사람이 가해자였어? ”
“이름은 듣지 못했는데, 학생들 말로는 드래프트때문에 왔다고 해서 특히 열심히 했던 학생이 있었다고 하네요. 학교에서도 밀어주는 학생이라고… ”
“학교에서도 밀어준다라… 그럼 이 학생이었나보네. 송 비서, 죽은 학생 어머님께 연락해서 받을 수 있는 증거라는 증거는 전부 받아와. ”
“네. ”

며칠 후, K 고등학교 야구부는 신문 기사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파리아에서 이번에 인수한 구단 파리아 아일랜드에서 K 고등학교 출신 선수를 지명했다는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굴지의 대기업에서 인수한 구단이고,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기때문에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명문고의 학생들을 지명할거라는 사람들의 예측을 그는 완전히 깨버렸다.

“윤도민, 파리아 아일랜드에서 너를 지명하겠다고 했어. ”
“저를요? ”
“응. 이번에 갓 인수한 구단이고 프로 성적도 별로 좋지는 않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니가 가서 성적을 확 끌어올려주면 거기서 니가 에이스를 차지할 수 있다는 얘기기도 해. 그리고, 구단에 지원도 아낌없이 해준다고 했고… ”
“어디를 가든, 제가 잘 하면 되는거잖아요? ”

당연하게도, 학교 입장에서는 엄청난 영광이었다. 보통 프로 선수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K 고등학교에서 드래프트 신청을 잘 하지 않고, 하게 되더라도 잘 지명되지도 않았다. 그래서 대학을 진학한 다음 대학 드래프트를 노리거나, 3학년으로 올라가기 전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기 일쑤였다. 몇년째 계속 이렇다보니, 학교 입장에서도 면이 안 서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야구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며칠 전에 실제로 학생들이 운동하는 것을 보러 왔던데다가, 학교에서 밀어주는 선수를 지명까지 하다니! 학교 입장에서는 현수막이라도 걸고 싶은 심정이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명을 철회한다고요? ”

그러나 며칠 후, K 고등학교 야구부는 다른 의미로 신문 기사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게 되었다. 파리아 아일랜드에서 지명을 취소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후배에게 과도하게 기합을 줘서 죽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학교폭력을 저질러도 선수 생활에 지장이 생기는 마당에 그로 인해 사망자가 나왔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사안이었다. 거기다가 생활기록부에는 그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도 않았다.

사망한 학생의 진단서와 기합때문에 다쳤던 상처에 대한 증거, 도민의 담임선생님을 어떤 기자가 인터뷰한 녹취본과 함께 사건은 일파만파 퍼져갔다. 담임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담임선생님은 생활기록부에 기록하려고 했었는데 학교 차원에서 기록조차 못 하게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도민의 행위는 물론, 학교측의 대응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군대도 안 갔다 온 것들이 꼭 군기를 잡는다’며 비판했다.

도민을 지명했던 그는 생활기록부에 이 사실이 기록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을 꼬투리잡으며, 자신의 구단에서는 과도한 훈련으로 인한 혹사나 선배의 갑질같이 불미스러운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고, 이런 일이 이번에 밝혀진 것 외에도 여러 건이 있을 지 모른다는 이유를 들어 앞으로 K 고등학교 출신 선수들은 받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학교 입장에서 영광이었던 것과 반대로, 학교의 위상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학교로 많은 학부모들의 항의전화가 이어졌고, 야구부에 소속되었던 학생들은 줄줄이 전학을 가게 되었다. K 고등학교 출신으로 현재 프로 팀에 뛰고 있는 선수가 몇 명 있었지만, 그들은 ‘우리때는 오히려 선배가 후배한테 이런 짓을 하지 않았고, 다른 학교에서도 기합이 없어서 부러워했다’고 일축했다.

파리아 아일랜드에서 지명했다가 지명을 철회한 도민은, 다른 구단에서도 지명받지 못했다. 신문을 통해 다른 구단의 관계자들도 확인한 모양인지, 다른 구단의 관계자들도 하나같이 ‘학교에서도 후배를 죽게 만들 정도로 기합을 준 사람이, 과연 구단에서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을까요?’라며 거절했다. 3학년이라 전학도 불가능했던 그는 대학에 들어가 대학 드리프트를 노려보려고 했지만 어떤 학교에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학생을 과도한 기합으로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사람을 받아줄 곳은 당연하게도 없었다.

“세상에, 저 집 아들이 글쎄 후배를… ”
“나도 신문 봤어. ”
“학교측에서도 쉬쉬하고, 가해자도 사과 안 했대. ”
“축망받는 선수라고 쉬쉬하는건가? ”

도민의 가정은 부유해서 강남의 비싼 아파트에서 살면서, 매일 아버지가 차로 학교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아파트 사람들의 눈 밖에도 나버렸다. 반상회에 끼워주지 않는 것은 물론, 문 앞에 ‘살인자 가족’, ‘뻔뻔하다’ 등이 쓰여진 포스트잇이 붙어있기도 했다. 도민의 아버지는 회사에서 잘리지는 않았지만, 그 역시 회사에서 임원으로 있으면서 저질렀던 각종 악행들이 드러나 평사원으로 강등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히도, 도민의 아버지는, 아들만큼 유명해지지는 않아서 어찌저찌 입에 풀칠 할 정도는 되었다.

도민의 엄마는 아들이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친구들을 만나면 항상 아들이 곧 프로 선수가 될 거라고, 이번에 파리아 아일랜드에서 지명이 들어왔다고 자랑을 하면서 이죽거리곤 했지만 물거품이 되자 충격으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지금은 정신병원에 갇혀있으며,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 해 아파트를 팔고 단칸방으로 이사를 갔다. 도민도 일자리를 구해보려고 했지만 얼굴이 너무 유명해진 탓에, 후배를 기합 줘서 죽게 만들 정도면 나중에 회사에서도 후배를 괴롭힐 지 모른다며 아무도 써 주지 않았다.

도민은 그제서야 영훈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을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다.

“아, 여기 있었네요. ”
“……? ”

오늘도 면접에서 미역국을 먹고 터덜터덜 돌아가던 도민의 앞에, 수수께끼의 여자가 나타났다. 너덜너덜해보이는 날개에 붕대를 감은 여자는, 드디어 찾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 누구세요? ”
“야구, 다시 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도와줄게요. ”
“누구신데 그런 말씀을… ”
“절 따라오면 야구를 다시 할 수 있을거예요. 물론, 게임에서 우승하기만 하면요. ”

뭐라 말할 새도 없이, 여자는 도민을 데리고 어딘가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