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V-1. 역전세계

오늘도 탈락인가, 면접장을 나서며 그는 생각했다. 열심히 준비하고, 목욕도 했는데 그 놈의 생선 비린내때문에 아무것도 되질 않는다. 어릴적부터 그놈의 생선 비린내때문에 아무것도 되질 않았다. 학교에서는 썩은 생선대가리라고 불리며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였고, 대학에서도 친구 하나 제대로 사귀지 못한 채 혼자서 학교 생활을 해야 했다.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도서관 열람실에 가서도, 눈치가 보였다.

‘언제쯤 이 냄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더라도 냄새를 약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뿐이고,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었다, 그리고, 근본적인 치료법이 원래 없는 병이라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집에 부담 주기도 싫고, 그래서 병원비라도 벌고자 했지만 그조차 되지 않는 인생이 그저 참담할 뿐이었다.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

터덜터덜 집에 도착한 그는, 저녁을 먹고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다시 이력서를 넣어보려던 그는 메일함을 확인했다.

‘부소니 제약 임상실험 환자 모집 공고’

보통 모집 공고는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에 올라오던데? 스팸메일이겠거니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는 메일을 열었다. 내용을 보니, 트리메틸아민뇨증 환자들을 추려서 그들에게 개별적으로 보내는 메일인 듯 했다. 메일에는 트리메틸아민뇨증 환자들을 위한 신약을 개발중이며, 임상 실험에 참여할 환자를 모집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메일을 돌렸다는 말과 함께, 첨부된 신청서를 작성해서 답신을 주면 바로 연락을 드리겠다고 적혀있었다. 보수도 다른 생동성이나 임상시험 아르바이트에 비해 두둑했다. 파리아의 계열사라서 그렇거나, 아니면 신약 임상시험이라서 그렇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여기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생각한 그는 신청서를 작성한 다음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다음날 바로 연락이 왔고, 임상시험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면서 임상시험을 할 동안 주의사항에 대해 설명하고 간단한 것들을 몇 가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주 토요일 오전 9시에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픽업을 위해 차량이 나갈거라는 얘기를 마치고 전화는 끊어졌다.

토요일,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짐을 챙기고 잠깐 기다리고 있으니, 곧 하얀 차가 도착했다. 하얀 차가 집 앞에서 멈춰 섰고, 안에서 새부리 가면을 쓴 사람이 나왔다.

“김윤석씨 맞으시죠? ”
“네, 제가 김윤석입니다. ”
“안녕하세요, 부소니 제약에서 왔습니다. 짐은 뒤쪽 트렁크에 실어드릴게요. ”

가면을 쓴 사람은 그의 짐을 건네받아 트렁크에 싣고, 그를 차에 태운 다음 출발했다.

“전에도 전화상으로 설명드렸지만, 트리메틸아민뇨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신약을 개발하려고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래서 개별적으로 환자분들께 연락을 드리게 된 거고요. ”
“아, 그렇군요… ”
“임상실험은 병원 한 동을 빌려서 진행할 거고, 피험자분 전담 간호사도 있을거예요. 불편하신 부분이나 필요하신 게 있다면 전담 간호사에게 말씀드리면 빠르게 처리해주실겁니다. 인터넷도 쾌적하게 터져서 안에서 게임이나 드라마 시청 등, 원하시는 건 전부 할 수 있고 공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공부를 하셔도 돼요. 병원 안에 있는 공원에서 산책을 하셔도 되고요. 대신 한 번 들어가게 되면 실험이 종료될때까지 밖으로 나가실 수는 없습니다. ”
“네, 알겠습니다. ”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허름해보이는 병원이었다. 병원 앞에는 ‘S대 부속 병원 실험동’이라는 낡은 표지판이 서 있었고, 표지판을 지나 안으로 도착한 차는 건물 앞에 멈춰섰다.

“다 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셔서 성함 말씀하시면 동의서랑 서약서, 시설 규칙을 주실거예요. 내려서 잠깐 기다리시면 짐도 꺼내드리겠습니다. ”
“네. ”

짐을 건네받은 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낡은 병원 프론트에 서 있는 직원에게 다가가 이름을 말하자, 직원은 잠시 무언가를 찾더니, 이내 볼펜과 함께 서류를 몇 장 건넸다. 동의서와 서약서를 전부 읽은 그가 서명을 마치자, 직원은 서류 두 장을 건네받고 확인한 다음 작은 파우치를 건넸다.

“이건 오늘 쓰실 생필품이예요. 이건 치약, 이건 샴푸, 이건 헤어 컨디셔너, 이건 바디워시, 이건 폼 클렌저예요. 내일부터 임상시험이 끝날때까지는 매일 아침식사와 함께 지급될거예요. ”
“감사합니다. ”
“잠깐 저 쪽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모든 참여자들이 도착하고 나서 설명을 듣고 지내게 될 방으로 안내해드릴겁니다. 짐은 무거울테니 저희가 잠깐 맡아드릴게요. ”

이윽고 모든 참여자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아까 그를 태우고 왔던 새부리 가면을 쓴 사람이 모든 참여자들을 한데 모았다.

“이번 임상시험에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번 임상시험에 사용할 트리메틸아민뇨증 치료제를 연구중인 SD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문진과 검사를 통해 중상이 약한지, 심한지와 선천적인지, 간 기능 이상인지 여부에 따라 그룹이 나뉠거예요. 임상시험은 2주동안 진행될거고, 그 동안 제가 주는 약을 먹으면 됩니다. 약을 어떻게 먹는지는 약을 받을 때 전담 간호사들이 설명해줄거예요. 약을 먹으면서 몸에 어떤 변화가 생겼거나, 이상이 생기는 경우 즉시 전담 간호사에게 보고하여 주시면 됩니다. ”

설명을 듣고, 사람들은 검사실로 이동했다. 그 뒤로는, 몇 가지 질문과 검사를 통해 증상의 경도와 원인에 따라 그룹이 나뉘어졌고 그는 병실로 안내받았다. 그의 짐은 그가 누워있을 병실에 놓여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식사 후 이 약을 드시면 돼요. ”
“혹시 약을 먹으면서 따로 먹으면 안되는 게 있나요? ”
“그런 건 따로 없습니다. 대신 복약만 꼬박꼬박 해 주시면 돼요. ”

병실에 도착해 침대에 놓인 환자복으로 갈아입자, 전담 간호사가 약을 건넸다. 마치 오메가-3 정제를 보는 듯 길쭉하면서도 뭔가 말랑하고, 투명한 알약이었다.

“잠시 후에는 점심 식사가 들어올 예정이니까, 약은 저녁에 드시면 돼요. 그리고 내일부터는 일지를 적어주시면 돼요. 일지에 접속하는 법이랑 어떻게 적는지도 가르쳐드릴게요. ”
“아, 네. ”
‘생각보다 깐깐하네, 역시 대기업이라 그런가… ‘

임상시험을 하는 동안, 그는 아침저녁을 약을 먹고 몸에 변화가 생겼는지를 일지로 남기는 일을 계속 했다. 신기하게도, 약을 먹기 시작하자 몸에서 특유의 생선 비린내가 사라졌다. 첫 날 방 안을 가득 채웠던 생선 비린내도 전체적으로 사라진 듯 했다. 체취가 나지 않는다는 건 이런거구나,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임상시험 마지막 날.

“지금까지 수고하셨습니다. 투약 결과와 여러분의 일지를 종합해보면, 이 약은 주기적으로 복용하면 꽤 효과가 있는 모양이네요. 임상시험 결과를 토대로 빠른 시일 내로 출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보수는 다음 주 월요일에 바로 입금될 것입니다. ”

임상시험을 마친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
“이 녀석아, 그런 일이 있었으면 말을 했어야지. 부작용때문에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
“그래도 무사히 돌아왔으면 된거죠. 어서 오너라. ”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다녀왔을텐데, 어째서인지 그의 부모님은 그가 임상시험에 참여했던 사실을 알고 계셨다.

엄마의 말로는, 그가 임상시험을 받을 동안 부소니 제약에서 전화가 와서 이 사실을 얘기했다고 한다. 임상시험에 참여해서 잘 지내고 있는 것, 약의 부작용은 없었고 체취가 없어져서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는 말과 함께 부소니 제약에서 해당 임상시험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신약이 발매되면 평생 먹을 수 있도록 비용 지원을 해 주기로 했다는 말까지 전했다. 또한 아들이 코딩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보이니, 파리아에서 개발자 커리큘럼을 지원해주고 해당 커리큘럼을 완수하면 바로 채용까지 하겠다는 말도 전했다.

엄마는, 그 얘기를 듣고 너무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전화를 끊고 한참동안 울었다고 했다. 아들이 지난 시간동안 썩은 생선대가리라고 불리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고생했던 것, 취업전선에 뛰어들고자 했으나 실패해서 낙심했던 것을 여러번 봐 왔던데다가 그리 넉넉한 형편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파리아같은 대기업은, 그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개발자 커리큘럼…? 그거 진짜였어…? ”
“그래… 너희 엄마가 전화를 끊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

커리큘럼은 그가 임상시험을 진행할 동안 미리 신청해둬서, 그는 다음주부터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임상시험 보수도 꽤 두둑했고, 금방 출시된 신약 덕분에 그의 몸에서는 더 이상 생선 냄새가 나지 않게 되었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문제는 있었지만, 아침 저녁으로 약만 먹으면 되고 식단 관리를 별도로 할 필요도 없었다.

개발자 공부를 하면서, 그는 중학교 동창이었던 친구를 만났다.

“어, 김윤석? 너 맞지? 썩은 생선으로 불렸던… ”
“어, 마, 맞아… ”
“어…? 지금은 괜찮은데? 냄새가 하나도 안 나네. ”
“최근에 부소니 제약에서 나온 신약을 먹었더니, 신기하게도 몸에서 냄새가 하나도 안 나더라. ”
“와, 성공했네 김윤석. ”

오랜만에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그는, 같은 반 친구들 얘기를 들었다.

“그 왜 있잖아, 너 하교할때마다 집까지 따라가면서 괴롭혔던 애들. ”
“아, 기억 나. 고등학교는 다른 데로 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학교로 전학왔더라… ”
“그거 원래 다니던데서 애들 때려서 그렇게 된거라는 얘기가 있더라. 학교에서도 너 괴롭혔던것까지는 몰라서 안 받아줬나봐. ”
“뭐, 그렇겠지… ”

그를 괴롭혔던 사람들과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돼서 좋아했으나, 그 사람들이 같은 고등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또 괴롭힘 당할 게 뻔했던 그는 담임 선생님에게 이를 얘기하고 자퇴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 그를 담임선생님은 만류하며, 그의 손을 꼭 잡으면서 최대한 그들과 접촉하지 않게 어떻게든 해 줄테니 3학년까지 마치고 졸업을 했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선생님과 했던 약속을 지켰다. 선생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생부에 얘기해서 그를 괴롭혔던 무리가 같은 반이 되지 않도록 했고, 교실 외적으로도 그 무리들과 최대한 안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실제로 그를 괴롭혔던 무리들은, 졸업할 때 졸업앨범을 받고 나서야 그와 같은 학교에 있었다는 것을 알 정도였다. 그는 담임선생님 덕분에 무사히 고등학교 3학년까지 마치고 졸업하여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진짜 참된 선생님이네. 보통은 묵살했을텐데… ”
“맞아, 진짜 은사님이셔. 지금도 가끔 찾아뵙고 인사드려. ”

졸업한 후로는 그를 괴롭혔던 무리에 대한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그 역시 대학을 어디로 가든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신경 쓸 겨를도 없었지만.

“걔네들 지금은 뭐 하고 지낼지 궁금하네. ”
“아, 그… ”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의 표정이 굳었다.

“걔네, 대학 졸업하고 갑자기 히키코모리 됐다더라. ”
“왜? ”
“그게… ”

대학교에 들어간 후로도 간간이 연락하던 친구의 말로는, 대학 다니면서는 하루도 안 빠지고 술을 마시러 다니던 애들이 졸업하고 나서는 술약속이 있어서 불러도 온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안 나왔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여자가 없어서 그런거 아니냐고 했지만, 그런 거 절대 아니라면서. 하루이틀이면 바빠서 그러겠거니 하겠는데 계속 이런 일이 생기자 친구가 물어봤더니, 그제서야 ‘몸에서 생선 냄새가 나서 밖을 나갈 수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생선 냄새…? ”
“너 예전에 그랬던것처럼, 걔들도 그런가봐. ”

어째서인지 몸에서 생선 비린내가 나기 시작했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온 몸을 씻어봤지만 냄새는 가시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병원을 가봤더니, 잦은 음주로 인해 간이 망가져서 트리메틸아민뇨증이 왔다고 했다. 아직 완전한 치료법이 없어서, 평생 생선 냄새를 풍기면서 관리를 해야 하는 병이라면서, 부소니 제약에서 체취를 없애는 약이 나왔지만 건강보험이 안 돼서 꽤 부담될거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그들이 괴롭혔던 그가 그랬듯이 몸에서 생선 냄새를 풍기면서 집 안에 갇혀지내게 되었다. 그가 떨쳐냈던 생선 비린내가 옮겨가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그놈의 생선 비린내’라고 했던 것처럼, 이제는 그들이 ‘그놈의 생선 비린내’라고 하며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