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이 쇠를 좀먹듯이, 질투는 그것에 사로잡힌 영혼을 병들게 한다. -성 바실리오, <수도규칙>」
다섯 번째 실종 사건과 더불어, 두 번째로 실종된 사람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라우드가 시신이 발견된 현장을 확인하고 실종자의 집으로 갈 동안, 파이로는 뭔가 단서가 될만한 것은 없었는지 찾고 있었다.
“납치 실력만큼은 혀를 내두를 정도구만. ”
방 안은 어질러진 요 외에는 별다를 게 없었다. 둘러봐도 평범한 여대생의 방이었고, 책꽂이에 있는 것도 원서들 뿐이었다. 책상 위에는 작은 일기장이 올려져 있었고, 미처 덮지도 못했는지 일기장은 펼쳐져 있었다. 뭔가 단서가 될만한 게 있을까 싶어 파이로는 일기장을 앞페이지부터 천천히 넘겨보기 시작했다.
‘이 녀석은 또 무슨 죄를 저질러서 납치된거지? ’
어딘가에 다른 일기장이 있는건지, 첫 페이지에는 세 번째 일기장이라고 쓰여있었다. 그 뒤로는 대학교에 갓 입학해서 동아리 생활을 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동아리에 가입했고, 친구를 만났고, 수업을 들었다. 가끔 수업을 빠지고 친구들과 놀러가기도 하는 둥, 평범한 대학 생활이었다. 남자친구가 생기기 전까지는.
남자친구가 생겼다, 그리고 데이트를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시험기간에는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고, 같이 영화를 보고, 보드게임도 즐겨하고, 같이 점심식사를 먹고, 동아리 활동도 같이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두 사람의 애정에 금이 가고 말았다.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고, 그 뒤로 그녀는 남자친구와 크게 싸우고 헤어졌다. 그 과정에서 꽤나 힘들었는지, 눈물 자국때문에 종이가 울어버린 페이지도 있었다.
“여. 뭐 좀 알아냈어? ”
“이쪽은 오히려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워서 싸우고 헤어진 피해자가 아닐까 싶은데? 근데 또 모르지. 이 사람 관점에서는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운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아닐 수도 있잖아? ”
“그 부분은 신변 조사를 하다 보면 알게 되겠지. 아, 이번에도 그 가면을 쓴 남자네. 참, 납치하는 거 보면 주도면밀하다니까. 이불이 어질러진 것 말고는 없으니까… ”
“두 번째로 실종됐던 사람 발견됐다며. 그건 어떻게 됐어? ”
“시신은 발견했는데, 두 손이 없었어. 그래도 얼굴은 붙어있어서 그걸로 신원 확인은 했는데… 형사님들 얘기하는 거 들어보면 절단면이 깔끔한 게 초보는 아닌 것 같다더라. ”
“손이 없어졌다라… ”
현장을 나선 파이로는 피해자가 다녔던 대학으로 갔다. 그리고 피해자의 친구를 만난 그녀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걔, 남자친구는 있었는데 지금은 헤어졌어요. 아마 남자친구는 군대 갔을걸요? ”
“바람펴서 헤어진거야? 자기 말로는 바람펴서 헤어졌다는데, 그게 진짜 바람이 아닐 수도 있잖아. ”
“진짜 바람인거면 억울하지나 않죠.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아니었어요. ”
“음… 그럼 의부증같은 거라도 있었던거야? ”
“뭐… 둘이 결혼한 건 아니니 부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봐야죠. 아마 저보다는 동아리 사람들이 더 잘 알거예요. 걔 천문동아리였는데, 천문동아리 동아리방은 저 건물 3층이니까 한번 가 보세요. ”
“알겠어. 협조 고맙다. ”
천문동아리 동아리방을 찾아간 파이로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피해자와 남자친구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동아리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역시 뭔가 있는 모양이구만. ”
“걔, 정훈이가 여자랑 얘기만 하면 한떼거리 했거든요. 그래서 한동안 동아리방에 여자 후배가 없었어요. 정훈이랑 인사만 해도… 아니다. 눈만 마주쳐도 한떼거리 해서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었거든요. 후배들하고 인사라도 나눈 날이면 자기보다 어린 여자가 좋냐고 한떼거리 하고, 그걸 동아리 회장이 말리는 게 일상이었어요. 정훈이랑 얘기 한 번 했다가 과에 선배 남자친구 꼬시는 걸레라고 소문나서 자퇴한 후배도 있었고… ”
“선배한테도 그러던? ”
“선배한테는 후배한테처럼 뭐라고는 못 했지만, 여자 선배랑 얘기하면 표정이 확 굳는게 보였죠. ”
“전에 듣기로는, 누나랑 점심 먹고 있는데 찾아와서 어떤 년인데 남의 남자랑 밥을 먹냐고 욕했대요. 걔네 누나인 거 알고 사과하긴 했는데 그때 정훈이형한테 그 누나 한소리 들었다고 했어요. ”
“가게 가서 여직원이 응대하면 그 직원 꼬투리잡기도 했어요. 그래서 동아리 회식 가면 정훈이 주문은 항상 걔가 같이 했고요. 남자들끼리 으쌰으쌰 하려고 같이 밥 먹으러 갔다간 걔가 연락하는것때문에 식사도 제대로 못 해서 항상 정훈이는 빠져있었어요. ”
동아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는 분명 실종 사건의 피해자였지만 차라리 실종된 게 동아리나 과 사람들, 남자친구에게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그 선배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실종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훈선배, 그 선배랑 사귀면서 진짜 아무것도 못 했는데… 과가 공대라서 망정이지, 여자들 많은 과였으면 진짜 큰일났을거예요. ”
파이로가 조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라우드는 또 현장으로 나가고 없었다.
“시신 발견됐냐? ”
“네. 그나저나 조사 갔던 건 어떻게 됐나요? ”
“뭔가… 의부증에 제대로 걸린 여자친구였어. 남자친구도 그랬을 지는 모르지만, 오죽하면 차라리 실종돼서 잘 됐다는 얘기까지 나오더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단 여자랑 얘기만 나누면 난리란 난리는 다 피워대는 통에 남자쪽에서 힘들었나봐. 분명 헤어지자고 했을 때 집착도 엄청났을거야. 아마 완전히 떼어내려고 법의 힘을 빌렸을 수도 있고… ”
“음… ”
“시신은 어떻게, 뭐 또 잘린 부분이 있어? ”
“이번에는 혀였다고 합니다. 절단면이 깨끗하게 잘려나갔대요. ”
“이걸로 다섯번째구만. 일곱가지 죄를 저지른 자가 제물이라면, 이제 앞으로 두 명인가… ”
네번째, 다섯번째 실종자도 어떻게 발견될 지 모를 노릇이었다. 지금까지 실종자들이 전부 시신으로 발견됐던 걸 보면, 아마 나머지 두 명도 어딘가가 잘려나간 시신으로 발견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실종되게 될 두 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뭔가 그 녀석, 죽어도 싼 녀석을 일부러 골라서 타겟으로 정하는 거 아닐까? ”
“죽어도 싼 녀석이요? ”
“그렇잖아. 일곱가지 죄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도 어느 정도를 넘어가면 죄를 저지르는거잖아. 질투를 원동력삼아 열심히 해서 더 발전할 수도 있는거고, 스포츠 경기에서 MVP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경기에 임해서 팀을 승리로 이끌 수도 있는거지만 그게 지나쳐서 사람을 상처입히거나, 죽이기도 하는거잖아. ”
“듣고 보니 그렇네요. ”
“그리고 갓 태어난 아이가 아닌 이상 누구나 살면서 자잘한 죄는 짓게 마련이야. 그러니까 집 근처에 사는 사람 일곱명을 죽여도 된다는 말이지. 근데 제아무리 달의 악마를 만나기 위한 거라고 해도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면 본인도 양심에 찔릴 것 같으니까 은팔찌 각이 나온,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고른 게 아닐까 싶어. 그리고 이미 은팔찌 각이 나왔다면 자기 합리화도 될 거 아냐. 저 놈은 죽어도 싼 놈이니까 괜찮다, 이런 식으로. ”
“……! ”
“단죄자도 녀석을 찾고 있는 것 같으니, 어쨌든 위치는 금방 특정되겠지. ”
네 번째 실종자가 발생했을 무렵, 파이로는 오랜만에 시트로넬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시트로넬은 이번에 발생한 실종 사건을 괴담수사대에서 맡지 않았냐며, 범인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다면 얘기해달라고 했다. 파이로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시트로넬은 인간이 인간을 죽임으로서 단죄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자신의 일을 빼앗은 범인을 찾아 단죄해야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녀석, 달의 악마를 만나기 위해 제물이 될 인간을 모으고 있던데. ”
“달의 악마? ”
“어. 일곱가지 죄를 지은 자의 신체부위를 모아 의식을 치르면, 달의 악마를 만날 수 있다나… ”
“그런가… 그렇다면 그 녀석이 사는 곳만 알아내면 의식 장소는 금방 찾을 수 있겠네. 실종은 몇 명이나 됐어? ”
“네 명. ”
“앞으로 세 명인가… ”
시트로넬 역시 달의 악마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인지, 앞으로 세 명이라는 혼잣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질투로 타오르는 두 눈을, 그릇에 담아 올릴지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