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5. 종(終)

미야시 가 당주의 속심수에 당한 검은 뱀은 마을 사람을 하나 공격하고 미쳐 날뛰나, 파이로와 미기야에 의해 저지당하고 신사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물이 됐던 슈우는 죽음을 맞이 하고, 일행은 검은 뱀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뱀이 도망친 신사로 향하게 된다.

“카나, 넌 뒤로 돌아가서 녀석이 도망칠 것 같으면 신사 뒤에서 담배 냄새를 풍겨. 내가 신호를 줄게. ”
“네. ”
“그 자식, 기필코 태워버리겠어… ”

신사에 도착하니, 검은 뱀이 몸을 회복이라도 하려는 듯 웅크리고 있었다. 그 뒤로 카나가 들어가 풍선을 만들어 두고 있었고, 키츠네는 대롱 여우를 꺼냈다. 여우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신사를 중심으로 한바퀴 빙글 돌자, 땅이 금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이 녀석, 보통 내기는 아닌 것 같네. 땅의 힘을 가지고 있다더니… ”
“그러게. …기껏 도망친다는 게 여기였냐? 역시, 네놈은… ”
“네녀석들… 대체 여기는 어떻게 온 거지? ”
“말했잖냐, 나도 네놈과 같은 부류라고. 그리고 가짜일지언정 형태는 토지신인데 니가 여기 말고 갈 데가 더 있나? ”
“치잇… ”

뱀이 또아리를 틀고 뒤로 물러나자, 파이로는 카나를 불렀다. 카나가 미리 불어서 막아 둔 풍선의 입구를 열자, 뒤에서부터 담배 냄새가 풍겨나오기 시작했다. 뒤로 도망치려던 뱀은 궁지에 몰렸다.

“또 도망칠까봐 미리 손을 써뒀지. 이제 저승에서 편히 쉬도록 할까? ”
“네놈들…! ”

뱀이 또아리를 틀고 몸통을 곧게 세우자, 상반신이 여자의 형태로 변했다. 그녀는 이성을 잃고 독기를 뿜었지만, 그럴 떄마다 독기는 무언가에 막혀 퍼지지 못 하고 뱀의 주변에 안개처럼 축적될 뿐이었다.

“어라, 결계를 만든 건가…? ”
“그런 모양이예요. 녀석이 힘을 쓰지 못 하고 있어요. ”
“대체 무슨 짓을…! ”
“요 녀석, 꽤 대단한 녀석이네? 결계를 만들 줄 알다니… ”

키츠네가 대견하다는 듯 턱을 쓰다듬어주자, 여우는 기분이 좋은지 키츠네의 팔을 타고 움직였다.

“그냥 얌전히 저승으로 가면 될 것을, 헛수고 너무 한다. ”
“그러게요. ”

미기야가 지면에 돌로 무언가를 쓰고 주문을 외우자,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더니 비가 왔다. 그리고 천둥번개가 치자, 안개처럼 뱀을 감싼 독기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이 번개는, 신도 맞추는 번개라고 합니다만. ”
“크윽! 네놈들… 대체 날 방해하는 이유가 뭐냐? ”
“무고한 인간들을 죽였기 때문이지. 네놈 역시 무고하게 죽었겠지만, 하등 상관 없는 자에게까지 복수를 하다니… 끔찍하게도 나와 닮았군. ”

이번에는 반드시 보내버리겠다는 듯, 그녀는 검은 뱀을 놓치지 않을 기세로 다가갔다. 독기가 발 밑에 어렸지만 그녀는 이미 죽은 몸이라 효과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그 때도 이런 날씨를 만들었었지, 그리고 이 녀석이 쓰러졌었고. ”

말을 마친 파이로는 미기야를 바라보고 말했다.

“어이. 이번에는 영력 빵빵하냐? ”
“네, 괜찮습니다. ”
“좋아. ”

파이로는 푸른 불꽃을 만들어 가위에 옮겨붙였다. 순식간에 불꽃이 번진 가윗날을, 그녀는 뱀에게 들이댔다. 그리고 동시에 뱀이 미기야를 향해 덤벼들었다.

“술자를 방해하면 술식은 흐트러지는 법이지! 네놈들은 제법이었지만 이 몸을 방해하려면 백만 년은 더 걸려! ”
“그렇게 둘 수는 없죠. ”

파이로가 뱀을 향해 날을 휘두름과 동시에 쿠로키가 부채를 펴 뱀을 향해 한 번 부쳤다. 그러자 순식간에 칼날과도 같은 바람이 생기더니, 파이로가 일으킨 불꽃에 가 닿았다. 순식간에 칼날로 푸른 불꽃이 옮겨붙었다.

“으아악!! 뜨거워! 아파! ”
“인간이라면 어떻게 해 보겠죠? 하지만 저는 구.미.호.랍니다~ 후훗, 당신 같은 요괴도 아닌 원한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죠. ”
“카마이타치라니… ”
“지금이예요, 파이로 씨! 녀석을 태워버리세요! ”
“오케이. ”
“에에잇, 다음에 만나면 이빚을 갚아주마! ”
“곱게 좀 죽어라. 불태울 혼도 없어보이는구만… ”

다시 한 번 쿠로키가 카마이타치를 일으키자, 파이로는 푸른 불길을 만들었다. 뱀의 몸에 불이 옮겨붙자 뜨거운지 이리저리 요동치더니, 이내 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니까 애초에 곱게 한 방에 갔으면 이럴 일이 없지. ”
“후우… 아무튼, 끝난 건가요? ”
“네, 끝입니다. ”

결계가 사라진 후 검은 뱀이 있었던 곳을 둘러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황폐했던 곳이 원래대로 돌아왔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머지 않아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마을로 내려간 일행은 미야시 가로 향했다. 별로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파이로는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당주에게 물을 심산이었다.

“당주는 어디에 있지? ”
“누, 누구십니까요? ”

그녀가 대문을 쾅, 열고 들어가자 하인인듯 한 남자와 슈우와 같은 얼굴을 한 남자가 있었다. 아마도 저 녀석이 케이타이리라. 그녀는 하인을 뿌리치고 카케루를 잡아먹을 듯 돌진해 순식간에 가위를 목에 들이댔다.

“네놈이 카케루냐? ”
“캑, 캑… 누구시오? 누구신데 나를 이렇게 함부로 대한단 말이오? 나는 아무도 해할 수 없는 미야시 가의 장남이란 말이오! ”
“됐고, 니 애비는 어디 있냐? 얼마나 뻔뻔한 놈인지 얼굴 좀 보자. ”
“여봐라, 사람을 불러라! ”

파이로는 달려가려는 하인의 앞에 푸른 불길을 일으켰다. 하인이 움찔하며 물러나자, 그녀는 카케루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았다.

“이 몸은 이 마을 사람이 아니니, 니네 집 지위가 어떻건 내 알 바 아냐. 여기서 목 잘리고 니 아비와 함꼐 저승으로 갈래, 아니면 곱게 얘기하고 끝낼래? ”
“!!”
“입 다물고 곱게 가자. 네놈들 족치는 건 일도 아니지만, 책임을 물어야 하니 그러지 못 할 뿐이니까. ”
“여봐라, 가서 아버님을 모셔와라. ”
“네. ”

하인이 집 안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집 안에서 당주가 나왔다. 케이타와 비슷한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한 당주는, 푸른 비단 기모노를 입고 한쪽에 칼을 차고 있었다.

“나를 찾는 자가 누구냐? 내 아들을 놓고 나와 얘기하게. ”
“네놈이 검은 뱀을 속여 마을 사람들을 죽일 뻔 했던 놈이구만. 아들이나 아비나 똑같군 그래? 우리가 검은 뱀을 물리치지 않았더라면 네놈도 결국 죽을 운명이었겠지만, 저지른 짓을 봐서는 죽어 마땅하지. ”
“그대는 누구인데 나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가? ”
“이 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마을의 토지신인 뱀공주를 떠나게 하기 위해 죄 없는 목숨을 여럿 죽여 피를 묻혔으며, 네놈의 아들이 벌 받는 걸 피하겠다고 신을 속여 마을 사람들을 죽이려 했으며, 그 대리인은 신을 속이는 것 여부에 상관 없이 네놈의 손에 죽을 운명이었지. ”
“여봐라, 당장 이 녀석을…! ”

주변에서 무장한 하인들이 몰려오자, 그녀는 죄중을 한 번 노려봤다. 그러자 하인들이 움찔했다.

“뭣들 하는게냐! 어서 저 녀석을…! ”

그리고 그녀는 순식간에 마루를 뛰어올라 당주의 목에 가위를 들이댔다.

“곱게 끝내기는 글렀군. 저승에서 부자가 사이좋게 지내거라. ”
“히익- 왜, 왜이러시오! 사, 살려주시오! ”
“인간의 피를 손에 몯힌 인간이,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을거라 생각하느냐? 나같이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자라면 그렇겠지만 네놈은 그 예외에 길 수 없다. 왜냐하면 네놈 역시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지. ”

파이로는 당주의 입에 무언가를 넣고 삼키게 했다. 그것은 아까 검은 뱀이 만들어 낸 독이었다.

“네놈이 족인 자들의 원한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느껴봐. 인간의 피를 손에 묻힌 자는, 편히 죽을 수도 없는 법이니까. 그 독은 해독할 수 없다. 네놈의 아들이 했던 짓 그대로, 온몸이 하나하나 잘려나가는 고통을 느끼면서 죽어버려. 후회하고 참회해도 늦은 마당에 뻔뻔한 걸 보면, 얼굴 밑에 불판 깔고 고기 구워도 되겠네. ”

그리고 그녀는 카케루에게도 같은 독을 먹였다.

“이제 네놈들이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신용은 없어. 마을 사람들도 네놈들의 진실을 알게 됐다. 네놈들을 죽이려고 오는 걸 뜯어말렸지. 그 인간들마저 죄를 짓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가자. ”

미야시 가를 나온 파이로는 마을을 한 번 둘러봤다. 버석버석 갈라진 땅에는 핏자국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 외에 남은 것은 없었다. 그래도, 이것으로 더 이상 땅이 황폐화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신사가 있던 곳으로 간 파이로는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슈우의 무덤을 찾아갔다. 카나 역시 슈우의 무덤에 인사를 하고, 파이로 일행과 동행했다.

“카나 씨는 이제 마을에 안 돌아올 작정이예요? ”
“네. 더는 있을 이유가 없어서요. 뭐, 그래도 가끔 슈우의 무덤에 인사 정도는 하러 올 거예요… ”
“그렇군요… 아마노테씨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
“글쎄요… 뱀공주님이 돌아가지 않겠다면, 저도 굳이 마을로 다시 갈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

일행은 앞으로의 일을 얘기하며 도쿄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몇 번이나 버스를 타고 가야 시내로 갈 수 있을까, 긴 여정이 될 것이다.

“키요히메님께 보고는 드리고 가야 하지 않을까요? ”
“그래야지. 그나저나 오랜만에 힘좀 썼더니 고기가 당기는군… ”
“고기 좋죠! 도착하면 야키니쿠 먹어요~ ”
“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