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빨리 오라니까. ”
“글쎄, 됐다는데 왜 그래? ”
“너 임마, 폐인처럼 지내는 게 하루 이틀이냐? 회사에서도 너 좀비같다고 그래. ”
사무실 밖에서 한 차례 실랑이가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사무실 문이 열리고 두 남자가 들어왔다. 한 쪽을 끌고 들어온 남자와 달리 끌려오다시피 한 남자는, 흡사 시귀와도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오전 11시에 예약한 현재형이라고 합니다. ”
“아, 왔구만. 뒤에 있는 게 그 친구? ”
“네. 여자친구랑도 헤어지고, 완전히 좀비가 됐다니까요. ”
“이 정도면 시귀라고 해도 믿겠는데…? 모든 시귀가 이런 몰골인 건 아니지만… 아무튼 앉아. ”
두 남자를 앉게 하고 파이로는 매실 주스를 내 왔다.
“이 녀석, 어쩌다 이렇게 된 거냐? ”
“대만 여행을 다녀오기 전까지는 멀쩡했는데, 여행을 다녀온 후로 여자친구랑 깨지고… 회사에서도 일이 손에 안 잡힌다고 일은 하는둥 마는둥에… 어떤 여자가 보인다고 했어요. ”
“여자…? ”
“네. ”
재형의 말대로, 친구의 옆에는 여자가 한 명 있었다. 하얀 옷을 입고 짧은 보브컷을 한 여자였다.
“대만 여행을 갔다 온 후로 그랬다라… 어이, 거기 좀비씨. ”
“예? ”
“대만에 여행갔을 때 붉은 봉투를 만진 적 있어? ”
“붉은 봉투요? ”
“어, 말 그대로 붉은 봉투. ”
“네… 길바닥에 떨어져 있길래 누가 떨어트린건가 하고… ”
“안에 돈이랑 머리카락, 그리고 손톱이 들어있었지? 그거 말고 또 뭔가 들어있었을거야. ”
“맞아요, 누가 돈봉투를 흘린 줄 알고 열었는데… 돈 조금이랑, 머리카락… 손틉… 그리고 뭐라고 쓴 종이가 들어있었는데… ”
“축하한다, 영혼결혼식을 올리고 왔다. ”
“…예? ”
“중국에서는 미혼으로 사망한 사람의 머리카락과 손톱, 그리고 약간의 돈과 사주가 적힌 종이를 붉은 봉투에 넣거나 붉은 스카프로 싸서 작은 꾸러미를 만든 다음, 그걸 줍는 사람과 강제로 영혼결혼식을 시키는 풍습이 있어. 내지인들은 그 풍습에 대해 알고 있으니 상관 없지만, 여행을 왔던 외국인들이 너처럼 종종 당하곤 하지. 아마 니 옆에 있는 여자가 그 봉투 속 머리카락과 손톱의 주인이었을거야. ”
영혼결혼식이라니, 맙소사. 같이 왔던 친구는 안그래도 좀비같던 몰골에 얼굴까지 사색이 되었다.
“지금도 이 여자가 있긴 하지만, 이 여자때문에 니가 여친이랑 헤어진 게 맞는지 단정지을 수는 없어. 그래도 너를 해하려고 붙어있는 건 아닌 모양인데. 만약 널 해할 목적이었으면 니 친구가 널 여기까지 데리고 오지도 못했을거고. 깨졌다는 여자친구도 그 여자를 봤대? ”
“네… 여행을 갔다가 선물도 줄 겸 집으로 잠깐 오라고 했는데, 오자마자 대뜸 저보고 대만에 여행갔다더니 바람 피고 왔냐고 물어서… 그것때문에 싸울 뻔 했었어요. 재형이가 중재해줘서 망정이지… 그 뒤로도 집에 놀러올 때마다 여자가 나타나서 뭐라고 했다고는 하는데… ”
“뭐라고 했다던? ”
“그게… 중국어라 잘 모르겠다고… ”
“음… 그래, 뭐… 언어가 다르면 그럴 수 있지… 그나저나 깨진 여자친구한테도 보였다라… 너도 여자가 보이냐? ”
“아뇨. ”
파이로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사무실로 키츠네가 왔다. 마치 좀비같은 몰골로 앉아있는 남자와 그 옆에 있는 여자를 본 키츠네는, 사무실에 괴이가 들어온건가 하고 생각했다.
“이제 괴이 의뢰도 받아주냐… 엉? 인간이잖아? ”
“몰골이 좀비같긴 하지만, 인간이다… 그나저나 너 중국어 좀 하냐? ”
“어, 어릴 적에 중국에서 지낸 적이 있어서 좀 하지. ”
“잘 됐다. 통역 좀 해줘. ”
“통역? ”
파이로는 키츠네에게 남자의 옆에 있는 여자와 붉은 봉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거 아직도 있나보네. 아마 공안들도 찝찝해서 처리 잘 안 해줄텐데… 그 봉투, 나도 중국서 지낼 때 몇 번 보긴 했어. 안에 뭐가 들어있나 보려고 했더니 누나가 그런 흉험한 물건에 손 대는 거 아니라면서 말렸었지만… 진짜 흉험한 물건이었네, 그거… ”
“죽은 사람이랑 강제로 연을 맺는다는 것도 최악이지… 애초에 산 사람은 그럴 의지가 없었는데. ”
“어떻게 보면 최악이지. 그래서, 뭘 물어봐줄까? ”
“여자친구랑 헤어진 게 니 짓이 맞는지랑, 뭐라고 얘기한건지. ”
키츠네는 남자의 옆에 서 있던 여자에게 무어라 말을 건넸다. 그리고 여자가 또다시 무어라 말을 하자, 키츠네는 그것을 파이로에게 다시 전했다. 그리고 그 얘기를 전부 들은 파이로는, 목이 탔는지 매실 주스를 한 잔 다 비운 다음 얘기를 꺼냈다.
“어이, 좀비씨. 그 여자한테 물어본 결과를 말해주자면… 넌 잘 헤어진 게 맞다. ”
“…… ”
“내가 남 일이라고 막말하는 것 같지? 근데 그게 아니거든… 너는 멘탈이 파사삭 부서져서 몰랐겠지만. ”
“그 여자가… 진짜로 얘 헤어지게 한 거 맞아요? ”
“어,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래. 근데 그 여자친구는 어디서 만났냐? ”
“사내연애로 만났는데, 헤어지고 나서 여자쪽에서 이직했대요. ”
“허… 뭐, 그래. 앞으로 만날일만 없다면 그걸로 일단 된 것 같다. 그 여자가 얘에 대해 안좋게 얘기하려던 것도 이 여자가 다 막아줬고. ”
파이로는 매실 주스를 한 잔 가득 따랐다. 그리고 매실 주스를 쭉 들이킨 다음, 얘기를 이어갔다.
“이 여자는 너를 영혼결혼식으로 맺어진 반려자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너한테 해코지하려고 데려온 건 아냐. 오히려 이 여자는 네가 오래 살아서, 최대한 자기랑 늦게 만났으면 한대. ”
“그럼 여자친구랑은 왜 갈라놓은거예요? 그리고 헤어진 여자친구한테는 뭐라고 했대요? ”
“너, 여자친구랑 헤어지기 전에 점집 간 적 있어? ”
“네, 예전에 신년 운세 보러… ”
“점집에서 문전박대 당했지? ”
“그걸 어떻게 아세요? ”
좀비같은 몰골을 한 남자는 파이로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실제로, 그가 여자친구와 신년 운세를 보기 위해 용하다는 점집에 갔을 때 무당이 여자쪽을 가리키면서 ‘저런 것을 여기에 들일 수는 없다’며 문전박대를 했었다.
“그 여자, 낙태를 했었으니까. 그 때 죽은 아기 귀신이 붙어있었던 모양이야. 그 무당도 그 귀신들을 봤던거지. ”
“잠깐만…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요? ”
“그런거 다 오픈하면 니가 안 만나줄지도 모르는데 초장부터 오픈하겠냐? 원래 인간 대 인간으로 거래나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불리한 패는 안 꺼내는 법이야. 무덤까지 가져가든가 결혼하고 나서 얘기하든가 했을걸? ”
“그런… ”
“너는 귀신이 안 보이는 모양이지만, 네 옆에 붙어있는 여자는 유령이니까 동류인 귀신들이 보였을 거야. 그래서 여자친구가 집에 올 때마다 ‘발 밑에 있는 그 아기는 몇개월이야?’라고 물었던거고. ”
“몇 개월…? ”
“뱃속에서 제대로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지만, 원한을 품고 마치 살아있는 아기인 양 자랐던거지. 거기다가 단순히 그런 과거를 가지고 있었던 걸로도 모자라서, 너 말고도 만나는 남자가 또 있었고. 아마 그 상대 남자도 지금은 이직했을걸? ”
“맞아, 그러고보니…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인사팀 과장님 한 분도 이직했는데 그것떄문에 소문이 돌았었어요. 되게 도망치듯 이직하는 것 같다고… ”
“그 놈일 확률이 높아. 뭐, 그런 건 고키부리 사무실에 조사해보면 알겠지만… ”
좀비같은 몰골을 한 남자는 할 말을 잃었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에게 붙어있던 여자가 여자친구에게 해코지를 해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여자친구가 양다리를 걸친데다가 낙태를 했던 과거까지 있었다. 오히려 그에게 붙어있던 여자는, 그를 그런 여자와 만나게 할 수 없어서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했던 것이었다.
“뱃속에서 자라는 아이를 죽인데다가 너를 기만하고 다른 남자랑 양다리까지 걸친 사람이면, 나라 팔아먹은 원수가 아닌 이상에야 뜯어 말리는 게 보통이지. 사실 낙태를 했다는 것 자체로 무조건 욕할 수는 없지만… ”
“그래도 해코지를 하려고 붙어있는 건 아니라니 다행이네요… 전 지금까지 그 여자가 해코지를 해서 이렇게 된 줄 알았는데… ”
“넌 집에 가면 그 여자한테 꽃이라도 하나 줘라. 이 일과는 별개로 그 여자, 아마 우리 쪽으로 한 번 오긴 올 거다. 일단 니가 해야 할 일은 그 여자 연락처고 뭐고 싹 다 차단하고 니 갈 길 가는거야. 마음 독하게 먹고. ”
“네… ”
파이로는 남자 둘을 돌려보내고 고키부리 사무실로 갔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면서, 별도로 그 여자의 행방을 찾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도희는 안그래도 의뢰가 들어온 게 있어서 그 여자에 대해 조사중이었다는 말과 함께, 의뢰주가 좀 특이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했다.
“의뢰주가 특이하다고…? ”
“의뢰주가 인간이 아니었어요. ”
“혹시, 하얀 옷을 입고 머리가 여기까지 오는 여자였어? ”
“아뇨.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분이었어요. 전에도 한 번 뵌 적은 있었던 것 같은데… 아아, 맞다. 아마 그 분일거예요. ”
“검은 코트…? ”
도희는 검은 코트의 남자를 이전에도 만난 적이 있었다는 말과 함께,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에 대해 얘기했다. 검은 코트의 남자가 크로울러라는 이름으로 의뢰를 했으며, 그 의뢰를 하게 된 것은 천 마리의 새끼를 품은 검은 산양의 부탁이라는 것도 함께.
“천 마리의 새끼를 품은 검은 산양… 슈브 니구라스… 그렇다면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는, 아마도 니알라토텝이겠군… ”
“네, 맞아요. 슈브 니구라스가 니알라토텝을 통해서 의뢰를 하다니… 아마도 낙태를 한 죄때문이려나요. ”
“글쎄, 그건 당사자만이 알겠지… ”
한편, 검은 코트의 남자는 도희로부터 보고를 받고 슈브 니구라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새끼양들 가운데에 앉아 있던 슈브 니구라스는 검은 코트의 남자가 가져 온 서류를 찬찬히 넘겨보고는, 곧 검은 코트의 남자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무언가는 검은 비단으로 만든 주머니였고, 안에는 검은 환약 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호오, 당신답지 않은 벌이군요. ”
“그 아이는, 자신이 잉태하고 있던 축복을 원하지 않았던 아이라는 이유로 지웠어. 원하지 않는 아이였으면 애초에 생기지 않도록 준비를 잘 했어야 하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지… 그런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되지 못 하는 슬픔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
“당신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이아 슈브 니구라스. ”
검은 코트의 남자는 검은 비단주머니를 받아들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