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3. 짐조의 깃털

괴담수사대는 F대에 도착했다. 실험실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사건 현장에 정체불명의 녹색 깃털이 떨어져 있는 것 외에는 멀끔해서 아무래도 보통 사건이 아닌 것 같다며 태훈이 미기야를 통해 연락했기 때문이었다. 독살이라는 얘기에 야나기도 오랜만에 동행하게 되었다.

“독살이면 상대적으로 현장이 꺠끗해야 정상 아냐? ”
“독을 먹고 몸부림친다거나, 토한다거나… 그런 흔적조차도 없어서 그런가보지. 녹색 깃털도 뭔가 신경쓰이고… ”
“녹색 깃털이라… ”
“아마 전에 의뢰받았던… 뭐더라? 아, 그래. 짐새… 그 녀석의 깃털이 녹색이라는 얘기를 들었거든. 뭐, 자세한 건 현장에 도착해보면 알겠지만… ”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녹색 깃털이 보였다. 어떤 새들도 가지고 있지 않을법한 진녹색 깃털은, 실험대 위에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차 한 잔이 놓여있었다.

“오셨군요. ”
“이 깃털… 뭔가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군. 그런데 이 차는 뭐야? ”
“피해자가 이 차를 마시고 사망했습니다. ”
“바로? ”
“최초로 사망자를 발견했던 게 정오쯤이었는데, 차를 마시고 화장실에 간다던 사람이 돌아오지 않아서 가 봤더니 이미 죽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
“음… ”

야나기는 차를 한모금 마셨다. 그러자 입과 목에 타는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윽, 아파… ”
“괜찮냐? ”
“입과 목이 타는 것 같아… 이거, 뭔지는 모르겠지만 유기용매 계열인가… ”

파이로는 실험실 한쪽에 있는 시약장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Medium이라고 쓰여 있는 분말들이 차례로 정렬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설탕이 있었다. 그 외에는 한천이나 Tris같이, 이렇다 할만큼 해로워보이지는 않는 시약들이 있었다.

“아, 이걸 보면 되겠군… ”

그 옆에 있는 파일철에는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시약들 목록이 쭉 적혀있었다. 파이로는 그 시약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냄새를 맡아보고, 뚜껑을 닫았다. 냄새를 맡을때마다 특유의 매캐하면서도 뭔가 맡았다간 죽을 것 같은 냄새가 느껴진다.

“그거 그렇게 냄새 맡으시면 다칩니다. ”
“어차피 죽은 사람이라 괜찮아. 그나저나 이것들은 냄새가 역하군… ”
“유기용매는 대부분 냄새가 역하지. 사자라고 해도 그런 것들은 몸에 좋지 않으니 피하도록. ”
“엉? ”

현장에 낯선 여자가 나타났다. 책이나 게임에서나 봤을법한 까마귀 가면을 쓰고, 온 몸을 두툼한 코트와 가죽 장갑으로 중무장한 여자였다. 옷 밖으로 드러난 것은 주황색인 머리 말고는 없었다. 허리에는 작은 가방을 메고 실험실 안으로 들어온 여자는, 작은 병에 차를 담았다.

“소문으로만 듣던 짐조의 독을 얻게 될 줄은 몰랐는데. ”
“짐조의 독…? 잠깐, 그럼 저 깃털이…? ”
“이 깃털? 보시다시피 짐조의 깃털이지.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인간이고, 동물이고, 식물이고 닿는대로 죽어버려. ”
“이게 짐조의 깃털이라면, 짐조가 그려진 두루마기도 어딘가에 있는 모양이군… 이 차에 짐조의 독이 들어있다면, 아마 짐조의 독은 마셨을 때 목과 입이 타는 듯한 통증을 느낄 확률이 있어. ”
“그나저나, 그쪽은 누군데 사건 현장에 드나드는거야? ”
“이 몸은 스트레인지 닥터, 괴의라고 부르지. 피해자를 되살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왔을 뿐이야. 무슨 독을 먹었는지를 알면 해독은 금방 될테니 표본 채취도 할 겸. ”
“피해자가 되살아난다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도 들을 수 있겠네요. 법적으로 효력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

자신을 괴의라 소개한 여자는 작은 병에 차를 담고, 태훈에게서 살인 사건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정체불명의 녹색 깃털을 봉투에 넣은 다음 실험대 위에 올리고, 깃털에 아무도 손 대지 말고 저대로 두라며 신신당부 했다.

“여기서 저 깃털을 맨손으로 만져도 되는 건 둘밖에 없어, 너랑 너. 그 외에는 절대 저 깃털을 맨손으로 만지면 안 돼. 아까도 말했지만, 짐조의 깃털은 닿기만 해도 죽어버리니까. 저 차도 마찬가지야. 입도 대지 말고, 저대로 밀봉해둬. ”
“아, 네… ”
“그럼 이만. 피해자가 되살아나면 데리고 오도록 하지. 아마 늦어도 사나흘이면 되살아날거야. ”

가면을 쓴 여자가 돌아가고, 파이로는 실험실에 있던 다른 학생들을 탐문수사했다. 옆 실험실까지 가서 탐문수사를 한 결과, 그녀는 차를 탄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냈다.

“차를 탄 사람은 이 실험실에서 인턴으로 있는 학생이였어. 그 외에 이렇다 할 건 없지만. ”
“음… ”
“짐조의 깃털은 극독 중의 극독… 아마 차를 우린 물에 짐조의 깃털을 담갔었던 모양이지. 일단 이 사건과는 별개로 짐조에 대해 좀 더 조사해 볼 필요가 있겠어. 이만 돌아가자. ”
“알겠습니다. 고키부리 사무실에도 얘기해둘까요? ”
“그래야겠지. 일단 라우드한테 짐조에 대해 조사 좀 부탁하고. ”

미기야가 라우드에게 전화해 짐조에 대해 조사를 부탁할 동안, 파이로는 도희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살인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서 짐조의 깃털을 발견했다는 것과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것, 그리고 까마귀 가면을 쓴 여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얘기했다.

“까마귀 가면을 쓴 여자요? ”
“어. 자기를 스트레인지 닥터라고 하던데… 피해자를 되살리려면 독 표본이 필요하다면서 차를 조금 가져갔지. ”
“그 분이 움직이시다니… 하긴, 짐조의 독이 그렇게 흔한 물건은 아니니까요. ”
“뭐야, 아는 사람이야? ”
“정확히는, 인간이 아니라 마물이예요. 판데모니움에서도 몇 안되는 개인 공간을 가지고 있는 분이죠. 스트레인지 닥터 닷컴도 운영하고 계세요. 과장 좀 더 보태자면, 그 분은 말기 암으로 죽어가던 사람도 하루아침에 낫게 할 수 있고 반대로 멀쩡하던 사람을 하루아침에 말기 암 환자로 만들 수도 있죠. 그나저나, 이 사건에 대해 추적하다 보면 짐조의 두루마리가 어디에 있는 지도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
“그렇긴 하겠지… 일단 범인이 잡히면. 짐조의 깃털을 썼다는 건, 범인이 짐조의 깃털을 입수하기 쉬운 곳에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니… ”

며칠 후, F대에서 만났던 가면을 쓴 여자가 도착했다. 역시나 까마귀 가면을 쓴 채로, 두툼한 코드와 가죽장갑으로 무장한 채였다. 그녀의 뒤로 아직 몸 상태가 좋지 않아보이는지 링거를 꽂은 여자가 따라서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괴담수사대입니다. ”
“여, 전에 한 번 봤었지? ”
“아, 당신은… 그때 그 분이시군요. …뒤에 계신 분은 누구십니까? ”
“접때 가져간 표본 덕분에 살렸지. 일단 일상적인 활동을 하는 데 문제는 없지만 당분간은 상태를 좀 지켜봐야 해. 무리했다간 다시 명계로 갈 지도 모르거든. ”

가면을 쓴 여자는 태훈에게 피해자를 되살렸으니 진술을 들으려면 괴담수사대로 오라고 전했다. 그리고 파이로에게 고키부리 사무실에서도 오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파이로는 도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도희는 흔쾌히 사무실로 내려왔다. 도희가 사무실로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태훈도 후배와 함께 괴담수사대로 도착했다.

“사무실에 손님이 이렇게 많이 오는 건 처음이군… ”
“일단 소파로 모시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얘기가 길어질 듯 하니… 저 쪽으로 앉으시죠. 마실 거 드릴까요? ”
“나나 이쪽은 됐어. ”
“시원한 물이면 됩니다. ”
“저희도 물로 주세요. ”

사람들이 소파에 앉자, 까마귀 가면을 쓴 여자는 얘기를 시작했다.

“그 뒤로 깃털을 만지거나 차를 마신 사람은 없었지? ”
“네. 없었습니다. 깃털과 차는 증거품으로 가져왔거든요. ”
“다행이군… ”
“피해자분, 당시 상황이 기억 나십니까? 쓰러지기 전도 좋고, 차를 마실 때의 상황도 좋습니다. 어떤 것이든 기억나는대로 얘기해보세요. ”
“의식이 흐려지기 전에, 목과 입이 타는 듯한 통증을 느꼈어요. 그래서 토하러 갔다가 그대로 의식이 흐려졌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이었어요. 사흘정도 의식이 없었다고 했고… 차는 지연이가 타둔거라고 했던 것 같아요. 걔가 평소에는 그럴 애가 아닌데, 그 날은 제가 차를 좀 마셨다고 하니까 ‘언니 것도 아닌데 왜 멋대로 마시냐’며 불같이 화를 내더라고요. ”
“음…? 가만… 그러고보니… 그 지연이라는 분이랑 사이가 안 좋은 분이 계시죠? ”
“맞아요. 실험실에 박사과정이신 분이 계신데, 그 분이랑 유독 사이가 안 좋았어요. ”
“그 박사과정 하시는 분도 성격이 그렇게 모난 분은 아니었어요. 다른분들하고는 잘 지내는데, 유독 지연이라는 분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렇죠? ”
“네. 무슨 물과 기름마냥… 교수님도 처음에는 중재해보려고 하셨다가 포기했어요. ”
“그 차의 주인이 누구인 지 알 것 같네요.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는 크게 묻지마 살인이거나,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피해자가 차를 마시자 불같이 화를 냈다. 거기다가 유난히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이 있다. 도희는 거기서 ‘가해자가 차를 먹이려던 사람이 박사였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터라, 죽이기 위해 짐조의 깃털을 담근 물에 차를 우렸을 것이고, 박사에게 먹일 작정이었던 차를 피해자가 먹었기때문에 불같이 화를 냈던 것이다.

“그렇다는 건… 처음부터 죽일 작정이었다는거 아냐? ”
“그런 셈이죠. 짐조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피해자분께서 차를 마셨다는 걸 알고 불같이 화를 낼 정도면 적어도 짐조의 깃털이 맹독성이라는 건 알고 있을겁니다. ”
“그 시점에서 살인미수 아닌가? 아니… 피해자가 되살아나긴 했지만 어쨌든 죽었던거면 살인죄지… ”
“일단 피해자 증언도 있었으니 추가로 조사하러 가 봐야겠습니다. 다음에 또 진척이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

태훈과 후배는 먼저 돌아갔다.

“남은 건, 가해자가 그 깃털을 어디서 입수했느냐인데… ”
“그거라면, 정보원을 통해서 가해자의 집에 짐조의 두루마리가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가해자가 본인 입으로 말했거든요. ”
“본인 입으로? ”
“가족 중에 골동품 수집이 취미인 사람이 있어서, 짐조가 그려진 두루마리를 산 모양이예요. 깃털도 거기서 얻은 모양이고… 일단 가해자의 신원은 제가 알고 있으니, 따로 의뢰자에게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 녀석, 순순히 체포될 지 의문이네. 뭐, 고키부리 사무실에서 모은 증거 정도면 체포 안 하고는 못 배기겠지만… ”
“법적으로 효력이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피해자 증언도 있었고… 나도 탐문조사 하면서 그 실험실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서 물어보면 박사랑 가해자랑 싸우곤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 가해자 친구가 옆 실험실에 있어서 가끔 놀러오는데, 놀러와서 박사 욕을 엄청나게 한다나… 그 친구도 내심 지쳤다고 하더만. ”

파이로는 빈 물잔들을 쟁반 위에 올렸다.

“그런데 둘이 왜 싸우게 된 거야? 처음부터 사이가 안 좋지는 않았을 거 아냐. ”
“들어오자마자 그랬던 것 같은데… 박사님이 박테리아를 배양해야 해서 인큐베이터를 밤새 켜놔야 한다고 말씀하고 급한 일이 있어서 가셨거든요. 그런데 지연이가 그걸 실수로 꺼버렸어요. 그 다음날 출근하신 박사님은 당연히 불같이 화내셨죠, 그게 자기 논문이 걸린 일이니… ”
“논문도 중요하긴 하지… 그래도 사과했으면 좀 봐주지. ”
“지연이가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왜 자기한테 얘기 안 했냐고, 그렇게 중요한거면 신경 좀 쓰지 그랬냐고 말대꾸 했었어요. ”
“이야… ”
“저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뻔뻔하다고 생각할 정도여서 그 때 교수님한테 엄청 혼났었거든요. 처음에 박사님한테 뭐라고 하시던 교수님도 전말 다 듣고 나서는 지연이 따로 불러서 혼내시고, 박사님하고도 따로 말씀 나누셨어요. ”

며칠 후, 몸이 다 나은 피해자가 다시 실험실로 출근했을 때 책상 한쪽이 비어있었다.

“규연이 왔어? 몸은 좀 괜찮아? ”
“밤새거나 무리하면 안되긴 한데, 이제 괜찮아요. ”
“다행이네… ”
“그런데, 저 자리는… 지연이 나간거예요? ”
“지연이? 나가다마다… 나흘 전엔가 형사님 왔다가고, 교수님 완전 극대노하셔서 경찰 돌아가자마자 지연이 내보내버렸어. 그 뒤로 체포됐다던데. ”
“체포요? ”
“어. 네가 마셨던 그 차, 지연이가 박사님 죽이려고 독극물 섞은거라며? 그래서 그 때 그렇게 화를 냈던거였구만… 걔가 왜 그랬는지 이제 납득이 된다. ”

한편, 계룡산의 어느 도원. 긴 머리의 남자는 고키부리 사무실을 통해 짐조의 두루마리가 있는 위치를 보고받고, 두루마리를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두루마리를 말아서 봉한 다음, 도원 안쪽에 안치했다.

“겨우 회수했군요. 짐조의 두루마리… 짐조의 깃털은 위험하기때문에 함부로 노출되어서는 아니 되는 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