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동안 숙소에서 지내면서, 그는 이대로 시간이 흐르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약속한 사흘 후가 되었다. 이전처럼 아침을 먹으라고 소리지르는 사람은 없었고, 딸랑, 맑은 종소리와 함께 어느 새 문 앞에 아침식사가 놓여져 있었다.
매 끼마다 호화로운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그는 절대 물리지 않았다. 아침에는 양식 코스, 점심에는 한식 코스, 어떤 날은 지중해식 코스요리, 어떤 날은 돼지고기 오마카세… 항상 기대하는 것과 다른 색다른 고급 요리가 그의 후각과 미각을 즐겁게 해 주고 있었다. 마지막 만찬은 뭘까, 생각하면서 음식이 올려진 카트를 보니 한 층에는 커다란 접시와 뚝배기가 하나, 아래층에는 작은 접시가 여러 개 있었다.
뚝배기에 담긴 것은 복국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커다란 접시에는 복어 회가 담겨있었다. 원형으로 놓인 복어 회의 가운데에는 아는 사람들만 안다는, 모미지오로시가 담긴 작은 접시가 있었다. 뚝배기 옆에는 복국과 같이 먹을 공기밥도 있었다. 위에 올려진 작은 접시에는 복 껍질 무침과 복어 이리 튀김, 후구노코누카즈케(복어 알 절임)와 복어 간 요리가 있었다. 그 옆에 놓인 것은 따뜻하게 데워진 잔이었다. 잔 안에 복어 지느러미가 담겨진 것으로 보아, 히레사케인 듯 했다.
복어는 독이 있어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손질도 못 하고,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손질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회사 근처에는 복 요리 오마카세 집이 있었다. 맛은 있지만 가격대가 좀 있어서 가끔 법인카드로 회식하는 날 팀원들을 데리고 그 식당으로 가서 먹곤 했다.
‘복어를 손질할 줄 아는 건 물론이고 그 오마카세를 재현하다니, 실력이 뛰어난 요리사겠군. ‘
따뜻하게 덥힌 히레사케를 마시고, 식사를 시작한 그는 식당에서 처음 복어 요리를 접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요리를 한입씩 먹었다. 이제 이 게임만 끝나면 나갈 수 있다, 그는 그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이 쪽으로 오세요. ”
식사를 마친 그는 접시를 갈무리하고 방을 나왔다. 방에서 나오자, 단정한 수트를 입은 남성이 그를 어딘가로 안내했다. 안내받은 곳으로 가 보니, 화려한 무대가 있었다. 대리석을 깎아 만든 하얀 무대 위에는, 붉은 융단을 덮고 금으로 왕관 모양을 만든 의자 한 쌍이 마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의자 가운데에는 하얀 대리석 테이블이, 테이블 위에는 흑단나무로 만든 커다란 상자같은 것이 놓여있었다.
“판데모니움 로열도 어느새 엔드게임에 다다랐습니다. 지금 대회장에 들어오는 두 사람을 뜨거운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들려온다. 동시에 그의 맞은편에, 또 한 명의 남자도 보였다.
“두 참가자들은 의자에 착석해주시면 됩니다. ”
안내에 따라 의자에 앉았을 때, 커다란 상자 위로 상아와 흑요석을 가굥해 만든 체스판이 보였다. 그 위에는 체스말도 올려져 있었다. 체스말 역시 상아와 흑요석을 가공해서 만든 고급품으로, 사진으로만 봐왔던 체스판과 달리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킹과 퀸의 왕관 부분에는 각각 자수정과 에메랄드가 박혀있었다.
“이번 판데모니움 로열의 엔드게임은 코스트 체스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체스와 똑같지만 상대의 기물을 잡을 때 비용을 내야 하고, 상대의 기물을 원거리에서 잡을 수 있습니다. 물론, 원거리에서 기물을 잡을 때는 비용이 더 소요됩니다. 그럼 규칙 설명은 이쯤 하고, 엔드게임에 진출하게 된 두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
진행자가 규칙 설명을 마치자, 전광판에 맞은 편에 앉은 남자의 얼굴이 나왔다.
“첫 번째 도전자, 200번. ”
그리고 뒤이어서 나온 것은, 옆에 있던 남자가 저지른 죄였다. 그는 군기를 잡겠다고 대학 후배들을 걸핏하면 집합시킨데다가, 때린 적도 있었다. 이를 학생회와 교수에게 알렸다는 이유로, 그 후배의 동기들을 집합이라는 명목하에 부른 다음 그 후배를 심하게 때리기도 했다. 그 날 맞은 후배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가게 되었고, 그 날 맞은 후배의 부모는 당연하게도 그를 폭행죄로 고소했다.
그 날, 중상을 입을 정도로 맞았으면 후배가 갖고 있던 핸드폰도 부서졌으니 증거가 없을거라고 코웃음쳤던 그였지만, 그 날 부서졌던 핸드폰에서 그 후배가 맞을 때의 영상을 복원한데다 다른 후배의 증언도 있어서 그는 체포되었다. 언론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던데다가 나라에서 은팔찌까지 준 마당에, 학교에서는 그를 좌시하지 않았고 결국 출학조치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가 출학조치 되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던 듯 했다.
“아, 200번은 출학되었다는 사실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이어서 두 번째 도전자는 7번입니다. ”
그의 얼굴과 함께, 그가 저지른 죄 역시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그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석사 학위를 마친 다음, 교수님의 추천으로 I기업 연구소에 팀장급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전임자는 외국 지사로 이직하게 되었다며 남아있는 동안 최대한 인수인계를 해 주겠다고 했고, 그도 인수인계 기간 동안 물어볼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물어보았다. 그 뒤, 전임자가 떠난 후 그는 팀장으로서 업무를 시작했다.
임원급과 달리, 팀원들은 그를 싫어했다. 업무량에 비해 무능하다며 비꼬기 일쑤인데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데도 무능한 주제에 장례식은 왜 가냐며 힐난했다. 그의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속속들이 그만두었고, 신입사원이 들어오고,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그렇다고 해도 임원들이 이 사태에 대해 알 리는 만무했다. 임원들은 보통, 아랫사람들의 고충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본인의 안위만을 신경쓰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신입사원들이 금방 그만둘때도 그들은 입버릇처럼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다’고 말하기 일쑤였다.
‘요즘 애들은 끈기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임원들이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된 것은, 언론사에서 기사를 접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퇴사했던 사람이, 모든 것을 잃을 각오로, 그 동안 모아왔던 괴롭힘의 증거들을 전부 언론사에 제보했다. 각종 신문사는 물론이고 시사 프로그램에, 자신이 모아온 증거 외에도 전에 일했던 사람들의 증거까지 전부 제보하자, 언론사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기사가 나오고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3부작으로 방영될 정도였다.
이 일로 인해, 그는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게 되었다. 물론, 그가 몸담았던 직장에서 쫓겨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아랫사람을 괴롭히는 걸로도 모자라 회사를 좋지 않은 이유로 언론에 나오게 한 그를, 회사에서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모두 그놈들이 무능했던 탓이야, 그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퇴사하던 그 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 감상은 이쯤에서 마치고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
감상에 빠져있던 두 사람은 진행자의 박수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이윽고 게임이 시작되자, 두 사람에게 구슬 20개가 주어졌다.
“200번, 네가 백이야. 그럼, 시작. ”
맞은 편에 있던 남자가 폰을 이동시키자, 그 역시 폰을 하나 집어들어 움직였다. 상아로 만들어진 폰은 내려놓을 때 나는 소리도 묵직한 반면, 흑요석으로 만든 폰은 자칫 잘못하면 내려놓다가 흠집이라도 날 것 같았다.
‘와, 이거 잘못하면 깨지겠는데… ‘
초반이라 그런지, 아직까지는 서로 폰을 하나씩 옮길 뿐이었다. 그리고 서로의 폰이 대각선에서 만나는 순간이, 본격적인 게임의 시작이다.
“200번이 하나 잡았어. ”
동시에 그의 옆에 놓여있던 구슬 하나가 맞은 편으로 이동했다. 그럼, 이제 슬슬 본게임이니 시작해볼까.
“7번이 하나 잡았어. ”
그는 잃었던 구슬을 다시 가져왔다. 서로 말을 하나씩 잃은 시점에서, 슬슬 나이트를 움직여 길을 내 볼까. 그는 나이트를 집어들어 옮겼다. 그렇게 서로 말을 옮기기를 몇 번.
“200번, 지금 룩으로 나이트를 잡을 수 있어. 이동해서 잡을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잡을래? ”
“이 자리에서 잡겠습니다. ”
“좋아. ”
그의 나이트와 룩의 거리는 다섯 칸이었다. 그의 구슬 하나가 맞은편으로 이동함과 동시에, 맞은편에서 다섯 개의 구슬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는, 그 순간 생각했다. 맞은 편에 있는 사람도, 나도 체스를 잘 하는 편은 아니다. 구슬도 승패에 관건이 될 것 같으니 기물을 잡을때마다 하나씩 얻는 모양인데, 어차피 구슬을 잃을거라면 이 사람이 최대한 먼 거리에 있는 말을 잡도록 유도한 다음, 구슬을 전부 잃게 해서 이기자.
그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의 말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나이트를 잡고 나면, 그 뒤에 있는 폰을 잡은 다음에야 룩을 움직일 수 있다. 맞은 편에 있는 사람 입장에서도, 맞은 편의 폰을 잡은 다음에 반드시 룩을 잡을것이다. 최대한 멀리 있는 말을 잡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는 가운데에 있던 폰으로 상대의 폰을 잡았다.
“7번, 하나 잡았네. 200번, 지금 룩으로 폰을 잡을 수 있어. 이동해서 잡을래, 아니면 그 자리에서 잡을래? ”
“이 자리에서 잡겠습니다. ”
그의 옆에 쌓였던 구슬 하나가 이동함과 동시에, 맞은 편에서 여섯개의 구슬이 빠져나갔다. 좋아, 다음에는 분명 룩을 잡겠지. 양쪽 룩의 앞이 빈 것을 확인한 그는, 다음 폰을 잡기 위해 말을 옮겼다. 그리고 그의 맞은 편에 앉은 사람은 비어있는 룩을 잡겠다고 선언했다.
“아… ”
“구슬이 모자라. ”
“자, 잠깐만, 저 다시 할게요! ”
체크메이트까지 갈 것도 없이, 게임은 싱겁게 끝났다. 그가 룩을 잡기 위해 필요한 구슬은 일곱 개, 하지만 구슬은 네 개밖에 없었다.
“유감이네. 한번 정해진 건 무를 수 없어. ”
진행자는 냉정하게 맞은 편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마이크를 들었다.
“이렇게 해서 엔드게임의 승리자는 7번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판데모니움 로열을 즐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진행자는 그를 향해 일어나라는 손짓을 보였다. 맞은 편에 앉아있던 남자는, 의자에 고정된 채로 체스판과 함께 무대 밑으로 천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계속해서 한번만 무르면 안되겠냐고 애원하던 그는, 끝까지 애원하는 눈이었다. 생각보다 허망하게 이길 줄 그도 몰랐지만, 맞은 편의 남자도 자기가 이렇게 허망하게 질 줄은 몰랐겠지.
“축하해, 네가 이번 게임의 승리자야. 그리고 널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계신 분이 있어. ”
“저를…? ”
“따라와. ”
진행자의 뒤를 따라, 대리석으로 만든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발소리가 울리는 느낌이 든다. 분명 계단을 올라왔었는데, 그는 어느새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계단은 검은 대리석을 정성스럽게 깎아 가공해 이어붙였다. 옆에 있는 난간도, 검은 대리석으로 만든 것이었다.
계단을 내려오자, 돔 같기도 하고, 예배당 같기도 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창문에는 황도 12궁을 나타내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었고, 스테인드글라스를 따라 비추는 형형색색의 빛이 대리석으로 만든 바닥에 희미하게 보였다.
-우승자가 결정되었구나.
어디선가 들었던 목소리였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그것은 분명 미궁 스테이지를 진행하기 전에 들었던 목소리였다. 목소리의 주인이 나타남과 동시에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켜지자 내부는 순식간에 환해졌다.
“이번 시즌의 우승자는 이 쪽인가? ”
“네. ”
그리고 그의 눈앞에 보인 것은, 검은 옥좌 위에 앉아있는 그녀였다. 온통 검은색인 의자의 등받이 부분에는 화려한 장식이 되어 있었고, 장식 군데군데 자수정이 박혀있었다. 옥좌의 팔걸이에도, 화려한 장식 끝에 자수정이 장식되어 있었다. 옥좌에 앉아있는 그녀는, 마치 어릴 적 극장에서 봤던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법한 모습이었다.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진행자는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내 진행자는 그녀를 보고 얼어붙은것처럼 서 있던 그를 다그쳤다.
“성녀님께 결례를 저지르지 마라. ”
“내버려 둬, 어차피 이쪽은 너랑 다르니까. ”
진행자를 만류한 그녀는, 옥좌에 앉아 그를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미궁 스테이지에서 본 기억이 있군요. 그리고 그 후로도 생존해서, 여기까지 왔고 말이죠. ”
“여, 여긴… ”
“이 곳은 나락의 대공동, 내가 지내는 곳이자 우승을 거머쥔 그대가 와 있는 곳입니다. ”
“…… ”
“그대가 이 게임에 참가할 때 들었던 조건이 있겠지요? 우승하면,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
“아, 네… ”
“그대의 소원을 말해보세요. ”
전에 대회장에서 만났을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차분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그 역시 그녀에게 압도된 것 같았다.
“제 인생을 망친 사람이 누구인지 찾고싶습니다. 찾아서, 똑같이 돌려주고 싶습니다. ”
“그대의 인생을? ”
그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보던 고해성사라는 게 이런 기분일까, 그녀에게 모든 것을 얘기하면서 한편으로는 개운해지는 느낌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점점 압도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렇군요. 과연. ”
그가 모든 이야기를 마쳤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대를 그 곳에 추천해 준 자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겠지요? ”
“저를 추천해 준… 교수님 말씀이십니까…? ”
그녀는 그 뒤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를 I기업에 추천해주었던 교수님은, 사건이 일어난 후로 I기업의 임원에게 통화해 사과했다. I기업 임원은 오히려 그 사람이 유독 문제였던 거니 너무 신경쓰지 말라며, 그 쪽 연구실 출신이라는 것도 알려져서 같이 곤란한 찰나 아니냐며 교수를 위로했다.
실험실에서는 가끔 무리할 때가 있었지만 좋은 연구원이었기때문에, 교수도 그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 거기다가, 대학원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그런 일을 겪고도 시원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단순히 사회에 퍼진 것 뿐 아니라, 그에 대한 것은 같은 과는 물론 같은 단과대에도 퍼질 지경이었다. 한동안 실험실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까 염려도 했지만, 오히려 그가 졸업해서 나갔다는 얘기가 퍼지자 대학원에 관심이 있다는 학생들도 속속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한, I기업의 임원은 교수 추천이기 때문에 형식상으로만 면접을 봤던 이전과 달리 제대로 면접을 보면서 사람 됨됨이를 판단하게 되었다. 그가 그만두면서 공석이 된 자리는 전임자가 다시 돌아와서 맡게 되었고, 돌아온 전임자 역시 그의 만행을 듣고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한마디로, 그는 이제 ‘없는 편이 더 나은’ 사람이 된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입으로 지은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체감하지 못하셨을겁니다. 금방 잠잠해지고 말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그대의 생각보다 이 일은 심각한 사안이었습니다. ”
“…… ”
“그대는 그대가 지금까지 지었던 죄를 퍼트린 사람을 찾고 있는 모양이지만, 틀렸습니다. 그대의 인생을 망친 것은 그대입니다. 그러니, 찾을 필요가 없지요. 거울을 들어보면, 답이 나오니까요. 똑같이 돌려 줄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그대는 그대의 입으로 지은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체감하셨으니까요. ”
“자, 잠깐만요. 그럼 소원을 다른 걸로… ”
“한 가지 덧붙이는 걸 잊었군요. 소원을 ‘들어’주는 것과 ‘이루어’주는 것은 다릅니다. 그대들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는 걸 이루어주는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지만, 여기서는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지 ‘이루어’준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애초에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요, 그대는 이미 죽은 몸인데? ”
“!!”
지금까지 다른 참가자들도, 우승하면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가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기서 이겨서, 그를 회사에서 쫓겨나게 만든 누군가를 찾아 복수해주고 싶었다.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게 만들고, 내가 가지고 있었던 지위까지 잃게 만든 누군가를 찾아서. 그리고 꼭 그 소원을 이루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조차 할 수 없었다.
“고해성사는 여기까지인가요? ”
“…… ”
그는 할 말을 잃었다. 소원을 이뤄준다는 게 아니라, 그냥 들어준다는거였다니. 사람들의 죽음을 목도한 결과가 고해성사라니. 이럴 수는 없었다. 거기다가 그는 물론 다른 참가자들까지, 이미 죽은 몸이라 설령 우승한다고 해도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마력로는 다 차서 저 자를 굳이 넣고 싶은 생각은 없네요. 코스모, 혹시 저 자를 원하는 마물이 따로 있었나요? ”
“레이븐씨가 빚을 징수할 시간이라고 하셨습니다. ”
“알겠습니다, 징벌의 공간으로 인도해드리죠. ”
진행자의 손에 이끌려 그가 도착한 곳은, 까마귀들이 있는 공간이었다. 곳곳에서 까마귀가 사람을 쪼고 있었고, 쪼이는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미 쪼일대로 쪼여서 만신창이가 된 사람도 있었다. 까마귀는 진행자와 그를 보고 까악까악 울기 시작했다.
“레이븐씨, 게임이 끝나서 채무자를 데려왔습니다. ”
“아, 응. ”
진행자는 그를 검은 깃털로 만든 드레스를 입은 여자에게 인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