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V-2. Easy come, easy go

오늘도 그는 파리아 본사의 건물을 청소하고 있었다.

그나마 청소부 일이라도 하는 덕분에 근근이 먹고 살 수 있었다. 사기를 당한 아버지가 자살하고, 그에게 남은 것은 빚뿐이었다. 자산은 거의 차압당하고 그에게 남은 것은 낡은 노트북 한 대가 고작이었다. 그나마, 파리아에서 청소부로 일하게 되었으니 이것만은 봐주면 안되겠냐고 읍소해서 겨우 지켜낸 것이었다. 낡은 노트북마저 차압하려던 빚쟁이들은 아버지의 유품이라는 그의 간절한 부탁도 부탁이었지만, 파리아라면 청소부들에게도 급여를 꽤 쳐준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그의 급여에서 최소한의 생활을 위한 비용만을 제하고 빚을 다 갚을때까지 월급에서 제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 덕분에 그는 낡은 노트북 하나만은 지켜낼 수 있었지만, 라면 하나를 반으로 나눠서 하루 두 끼를 해결해야 할 정도로 쪼들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수상한 여자가 접근했다. 자신의 이름을 ‘궁기’라고 소개한 여자는,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것 같이 유약해보였지만 어딘가 힘이 있어보이는 눈을 하고 있었다.

“당신, 가족이 사기를 당했죠? ”

그녀가 그를 보자마자 한 이야기였다.

그의 아버지가 자살한 것이 신문에 나오긴 했지만 아들에 대한 것은 나오지 않았기때문에, 사기로 자살한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 까지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그의 아버지가 자살했다는 것과 사기에 대한 것은 정말 친한 친구와 직장 사람들 말고 어느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의 아버지가 사기를 당한 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그의 질문에 그녀는, 파리아의 대표가 당신의 사연을 우연히 듣고 사연이 딱하니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고 했다.

“저는 당신을 도와주러 왔습니다. ”
“도와주러 왔다고요…? ”
“네. 당신 아버지를 죽게 만든 그 사람들이 훨씬 참담해질 수 있게 만들어줄게요. 당신이 지고 있는 빚도 전부 청산할 수 있어요. ”

청소부 일을 하면서 근근이 먹고 살아야 했던 그는, 복수에 대한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저 몸이 가루가 되도록 일해서 빚을 청산할 일만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로 제 빚을 전부 청산할 수 있는건가요? ”
“네. 빚은 아버지를 죽게 만든 그 사람들이 전부 내줄거예요. ”
“대포통장에 대포폰을 써서 그 사람들 잡기도 힘들다던데… 그 사람들을 찾아낸건가요? ”
“그 사람들을 찾아냈습니다. 빚쟁이들도 설득해서 당분간은 월급에서 제하지 않기로 했고요. 이번달 월급부터는 제대로 들어올테니, 월급이 들어오게 되면 일단 정장부터 하나 맞추세요. ”

낯선 여자의 말대로였다. 월급으로 2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 통장에 들어왔다. 그는 마트에 가서 쌀을 산 다음, 밥을 지었다. 실로 오랜만에 먹어보는 밥이었다.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 다음, 낯선 여자의 말대로 정장을 하나 맞췄다. 평소에 아끼면서 살아왔던 그에게, 정장 한 벌을 맞추는 돈은 꽤나 비싸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처음으로 맞춰보는 정장이었다.

“정장을 맞추셨으면, 그 옆에 있는 미용실로 오세요. 스타일을 바꿔야 합니다. ”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정장을 받고 옆에 있는 미용실로 오라고 했다. 정장을 받아들고 미용실로 간 그는, 머리를 자르고 포마드를 발라 멋을 냈다. 꽤 오랫동안 집에서 머리를 잘랐던데다가 샴푸는 엄두도 못 냈던 터라, 머릿결이 상해 부스스했지만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니 금방 스타일이 잡혔다.

“일단 급하니까 이동하면서 설명 드릴게요. 당신은 이제부터 미국의 Y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자산관리사를 연기하게 될 거예요. ”
“제가요? ”
“네. 파리아의 대표도 당신에게 자산 관리를 받고 있는, 해외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자산관리사를 연기해주시면 됩니다. ”

그녀는 사기꾼들의 재산 규모를 파악했다는 말과 함께, 지금부터 그들에게 접근해서 안전하게 투자하면서 더 큰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겠다며 꼬드길거라는 얘기를 했다. 그녀 역시 그와 함께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자산관리사를 연기할 것이고, 주요 업무는 그녀가 하지만 최종 결재를 그가 해 주는 역할이라 재무지식같은 건 없어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곧이어 택시가 어느 건물 앞에 도착했다. 승강기를 타고 꽤 허름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몇 명인가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일전에 연락했던 자산관리사라며 두 사람을 소개했다.

“자산관리사…? 여기는 어쩐 일입니까? ”
“지금 J 은행과 거래하고 계시죠? 은행에서 최근에 큰 돈이 들어와서 VIP가 되셨다며 특별히 부탁하셨습니다. ”
“은행에서요? ”
“그거 잘못하면 다 잃는 거 아니예요? ”
“미심쩍으시겠지만, 저희 회사에서 파리아의 자산 관리사 역도 하고 있습니다. ”
“파리아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 아냐? 거기서도 자산 관리를 맡긴다면 보통은 아닌 것 같은데? ”

그와 함께 간 여자는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심쩍어하던 사람들도, 파리아에서 자산 관리를 맡긴다는 얘기를 듣고 그녀에게 홀린듯 팜플렛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저마다 어떻게 맡겨야 할지, 얼마나 맡길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일부만 맡기자는 의견도 있었고, 전 재산을 맡기자는 의견도 있었다. 사람들이 왈가왈부할 동안, 그녀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투자는 여윳돈으로 하라는 얘기도 있지 않느냐며 여러분들이 생각하시기에 여윳돈이라고 생각되는 만큼만 맡기시면 된다는 얘기를 꺼냈다.

“보통은 여윳돈으로 절반정도는 생각하지 않아? 일단 절반정도 맡겨보고, 잘 되면 더 맡겨보자. ”
“그러지, 그럼. ”

사람들은 가진 돈의 절반을 그녀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가진 돈의 절반이라고 해도, 아홉자리는 족히 되는 돈이었다. 아마도, 그의 아버지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사기를 쳤던 모양이다. 그녀는 필요한 서류와 명함을 건네고, 그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

“이 정도만 해도 아버지가 진 빚은 바로 탕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일단 전부 잃었다고 하면 나머지 돈도 맡기지 않을 수 있으니, 최대한 그들이 납득할 수 있을만큼의 돈으로 빚을 탕감할거예요. ”
“더 이상 못 맡기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죠…? ”
“저에게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

그녀는 사람들에게서 받은 돈 일부로 그의 빚을 탕감했다. 빚이 반정도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꽤나 큰 금액이었다. 빚쟁이들은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성실하게 살아와서 복을 받는 것 같다며, 빚을 다 갚고 나면 아버지 묘소에라도 가 보라며 고급 양주 한 병을 건넸다.

며칠 후, 그녀에게 돈을 건넸던 사람이 전화를 했다. 왜 돈이 비는건지 쏘아붙이듯 물어보는 사람에게 그녀는 최근 가상화폐 시장이 떠오르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지금은 어떤 가상화폐에 투자해서 돈이 빠져나간 것이며, 이 가상화폐를 어느 유명인이 인터넷을 통해 언급해서 가치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전화를 했던 사람은 그녀의 말을 듣고 납득했다.

그녀는 꽤 수완이 좋아서, 투자하는 타이밍을 알고 있었다. 주식이나 채권을 언제 매각해야 하는지 알고 적당한 타이밍에 빠져서, 꽤 많은 수익을 내자 사기꾼들은 그녀에게 점점 더 많은 돈을 맡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돈으로 그의 빚을 전부 탕감해주고도 꽤 많은 돈을 상환 명목으로 그에게 주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받아도 되나요? ”
“이 돈이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시면, 아버지가 생전에 빌려줬던 돈을 돌려받은거라고 하시면 됩니다. 이자까지 쳐서 받았다고 하면 아마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거예요. ”

소주가 고급 양주가 되고, 승용차가 함부로 긁기라도 하면 몇억이나 나갈 법한 외제차가 되었다. 급기야는 그런 외제차가 한 대에서 여러 대가 되었다. 그리고 사기꾼들이 자각하기 못하는 동안, 그들이 큰 돈을 만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갔다. 소주에 마른 오징어를 먹던 사람이 고급 양주에 비싼 치즈를 먹고, 외제차를 여러 대 타고 다니면서.

“제가 할 일은 다 끝났어요. 조만간 뉴스를 보시면 알 수 있을거예요. ”
“…네? 뉴스를요? ”
“네. 당신 아버지를 죽게 만든 대가를 곧 지불할거예요. ”
“……? ”

며칠 후, 그는 평소처럼 출근했다. 건물 청소를 위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준비를 하던 그는, 동료들이 나누는 얘기를 들었다.

“뉴스 봤어? F시 야산에서 사람 죽은 거 발견됐대. ”
“야산에서? ”
“왜 죽었대? ”
“아직 그것까지는 모르는데, 죽은 사람들이 사람들 등쳐먹던 놈들인 거 보면 피해자들이 원한 갖고 죽였나봐. ”
“F시면 카지노 있는 데 아냐? 도박하다가 죽었나? ”
“그럴지도 모르지. ”

그의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던 사기꾼들이 야산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녀에게 이 사실을 얘기하자, 그녀는 당연한 일이라고 얘기했다.

“그 사람들, 며칠 전에 저에게 맡겼던 돈을 전부 찾은 다음 F시로 갔습니다. ”
“F시로요…? 사람들이 거기는 카지노가 있는 곳이라면서 도박하면서 죽은 거 아니냐고 하던데… ”
“맞아요. ”
“……! ”

사람이 살면서 피해야 할 것들이 몇 개 있고, 그 중 하나가 도박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도 곧 이번만, 이번만을 외치면서 빠져들게 되는 것이 도박이었다. F시로 갔던 그들도 그랬다. 처음에는 가볍게 한 게임만 해보려던 그들은, 도철이 이끄는 사기도박단의 타겟이 되었다.

처음에 가볍게 해 볼 요량으로 몇백 정도를 걸었을때는 손쉽게 돈을 따게 된다. 그러면 점점 한 게임에 거는 돈이 커진다. 처음 몇 판 정도는 손쉽게 돈을 따게 되지만, 그 뒤로는 점점 잃게 된다. 그들은 처음에 걸었던 돈만이라도 따야지, 라는 마음으로 곧 큰 돈을 걸게 되었다. 그들이 끌고 다니던 으리으리한 차들을 담보로 잡고, 큰 돈을 빌렸다. 고급 양주를 마실 돈조차도 남아있지 않아 소주에 마른 오징어를 먹어야 했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들의 눈앞에 있는 목표는, 본전치기뿐이였다.

먹고 자는것도 잊으면서 그들은 본전이라도 찾기 위해 사람들을 등쳐먹어가며 얻었던 것들을 모조리 지불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면, 담보로 맡길 차가 없었다. 가지고 있던 고급 양주까지 탈탈 털어가며 돈을 빌려 도박을 한 결과, 그들에게 남은 것은 천문학적인 빚이었다.

사람들을 등쳐먹어가며 얻은 돈으로 호위호식하던 그들은, 곧 도박으로 많은 빚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천문학적인 빚을 감당하지 못한 그들은, 야밤에 산에서 목을 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마치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낯선 여자는 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멀리 떠나게 돼서 앞으로는 연락이 힘들 것 같다는 말과 함께 그를 떠났다.

“그 정도로 나를 넘어서려 하다니, 어불성설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