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화락(一家火落)>
그는 여자를 따라 판데모니움 로열에 참가하기 위해 갔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승리한 그를 맞이한 것은, 만화에서나 볼 법한 검은 왕좌에 앉아있는 여자였다. 하얀 얼굴에 검은 베일을 쓴 여자는, 왕좌에 앉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번 우승자는 이 쪽이군요. 좋아요, 그대의 소원을 말해보세요. ”
“야구를 다시 하고 싶습니다. ”
“야구를? ”
도민은 그녀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전부 얘기했다. 후배의 기강을 잡겠다고 기합을 줬던 것과, 그 일로 영훈이 횡문근융해증으로 죽은 것, 그리고 그것때문에 드래프트도 무산됐고, 대학 진학도 못하게 되었다는 것까지. 그녀는 그것을 그저 듣고 있을 뿐이었다.
“기강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후배들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과도한 기합을 주는 경우가 왕왕 있죠. 행하는 자는 그것을 내리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아뇨. 그건 절대 내리사랑이 아닙니다. 들어보니 당신의 선배들이 다닐 때는 오히려 기합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했다고 하던데, 시작점이 당신은 아니겠지요. ”
“…… ”
“당신이 죽인 그 후배도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을겁니다. 그대는 다른 사람의 꿈을 내리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짓밟아놓고, 꿈을 이루려고 하는건가요? 그건 욕심 아닐까요? 당신같은 사람이 스포츠계에 있다면, 아무리 유능한 후배라고 해도 내리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잘못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 오히려 유능한 후배가 거슬려서 내리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망가뜨릴지도 모를 노릇이죠. 여기에 오는 인간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당신 역시 당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바쁘군요. ”
“그건… ”
“저주할 때, 무덤 두 개를 파라는 얘기는 알고 있나요? 저주하는 사람의 무덤과 저주받는 사람의 무덤입니다. 그대는 다른 사람을 무덤으로 보내놓고, 혼자 승승장구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군요. 어차피 이루어지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지만, 상당히 역하다고 생각해요. ”
그는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영문을 몰랐다.
“이루어지지… 못한…다고요? ”
“우승하게 되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지,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거기다가 야구를 다시 할 수 있게 된다고 한 들, 당신은 이미 죽어서 의미가 없을겁니다. 코스모, 이 사람을 데려갈 곳이 있나요? ”
“달리 없습니다. ”
“마력로도 다 차버려서, 굳이 이 인간을 받아주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 ”
그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무간지옥 3계층에서, 직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 자를 그 곳으로 데려가세요. 그대는 되살아나지는 못하겠지만, 하고싶었던 야구는 평생 할 수 있겠군요. 무형의 숲으로 데려가시면, 그를 무간지옥으로 인도해줄겁니다. ”
코스모를 따라 무형의 숲이라는 곳으로 가자, 언젠가 봤던 주카이 숲을 방불케 할 정도로 나무가 빽빽한 숲이 보였다.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검은 집이 하나 보였다. 그리고 집 앞에는, 피그말리온이 상아를 조각해 만들었다는 여자가 이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커다란 문을 하나 만든 다음 도민을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간 도민이 도착한 곳은, 비명소리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여긴… ”
“아, 네가 새로 온다는? ”
도민이 도착한 곳은, 벽과 바닥이 온통 금색인 방이었다. 방 한쪽에는 금으로 만든 금고가 있었고, 금으로 만든 책상과 각종 보석으로 화려하게 꾸민 의자가 있었다. 의자에 앉은 여자 역시 화려한 보석으로 만든 머리장식과 목걸이를 입고 있었고, 열 손가락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몸에 입은 옷도 명품옷이었다. 그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의자에서 일어선 여자는, 금발의 구불거리는 머리를 갖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끝으로 갈수록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마치 알렉산드라이트를 정성스럽게 가공한 것 같은 색이었고, 무형의 숲에서 만난 여자만큼은 아니었지만 동화 속 공주를 보는 것 같았다. 아마도, 동화 속에 나오는 갓 성인이 된 공주가 이런 느낌일까.
“판데모니움 로열의 승리자… 그럼 이미 죽었네? 후배를 기합줘서 횡문근…아무튼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야구가 다시 하고 싶어서 참가했다… 좋아, 여기 있으면 하고 싶은 야구를 평생 하게 될거야. ”
“정말요? ”
“그럼. 여기~ ”
여자가 누군가를 부르자, 잠시 후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아까 판데모니움 통해서 보고받았다는 신입이야. 고문실로 안내해줘. ”
“아, 네. ”
도민은 남자를 따라 고문실로 가고 있었다.
“뭐… 네가 뭘 하다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필 와도 이 계층으로 오냐… ”
“……? ”
“이 계층 관리자, 엄청 깐깐하거든. 화장실 가는 것도 보고하고 가야 할 정도로 말이지… 그래서 쉴 수가 없어. 나야 죄짓고 여기 임시로 끌려온거라 계약직이지만, 너는 판데모니움 로열에서 우승했으면 평생직장이겠네. 환생은 글러먹었을테니… 그래도 야구가 하고 싶었다면 그건 그거대로 잘 된 거 아냐? 니가 하고싶다던 야구, 여기서 평생 하게 될 테니까. ”
고문실에 도착한 남자는, 거대한 철문을 열었다.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는 피투성이가 된 채 나무 기둥여 묶여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 앞으로 최소 4~50만년은 더 있어야 할것 같은데… 뭐라던가, 퍽치기 상습범이랬나? ”
“…..! ”
“죄목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넌 여기서 계속 저 사람한테 데드볼 던지면 돼. 공은 일단 열 바구니정도 있는데, 내가 저 쪽에서 네가 던진 공을 주워서 빈 바구니에 채워줄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
그의 옆에는, 피가 묻은 야구공이 가득 든 바구니가 있었다.
“그래도 야구선수였으면 구속은 빠르겠네. 그럼, 시작한다. ”
<역전세계>
윤석은 부소니 제약에서 새로 만든 신약 덕분에 몸에서 나던 냄새가 나지 않게 되었다. 그 덕분에 자신감도 되찾고, 일자리도 되찾고, 여자친구와도 만나게 되었다. 여자친구는 그의 과거를 알고 있었고, 그가 약을 계속 먹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때문에 여행을 가게 되면 약 먹을 시간을 챙겨주곤 했다.
“자기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게 돼서 다행이야. 예전에는, 내가 제대로 된 연애는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
“새삼스럽긴… 그 동안 고생했으니까, 지금부터라도 행복해져야지. ”
청첩장을 돌리러 동창회에 갔을 때, 그는 그를 괴롭혔던 패거리들의 소식을 들었다. 그들도 부소니 제약에서 만든 신약을 먹을 수’는’ 있었지만, 약값이 너무 비싼데다가 보험처리가 안 돼서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생선 비린내때문에 아르바이트도 구하지 못 하는데다가, 부모님도 약값을 벌려면 등골 빠지게 일해야 했다.
“윤석이를 힘들게 했던 만큼, 자기들이 힘들게 됐네. 이게 인과응보냐? ”
“그런가? ”
“근데 신약이 그렇게 비싸? 윤석이 넌 약값 어떻게 하냐? ”
“얘 파리아에서 개발자로 일하잖아. 파리아에서 먼저 제의가 왔었대. ”
“진짜? 와, 부럽다. ”
결혼식을 올린 윤석은 부모님과 아내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의 부모님은 한사코 같이 살기를 거절했지만, 낡은 집에서 혼자 살기 적적할거라면서 그녀가 함께 살자고 했다고 한다. 좋은 아내를 만났다며 사람들도 부러워했다. 아이가 생겼을 때, 그는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받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아이는 괜찮았다.
“다행이야, 이 고통을 아이한테 대물림하지 않아도 돼서… ”
빚을 전부 다 갚은 그는, 한동안 파리아에서 청소 일을 했다. 원래 아버지가 빚을 지지 않았다면, 대학원에 가서 계속 공부할 생각이었던 그는 이제라도 대학원에 가기 위해 학비를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총각, 열심히 하는 게 보기 좋구만. ”
“아닙니다. 열심히 해서 대학원 학비 벌어야죠. ”
“대학원? 뭐 공부하고 싶은데? ”
“저, 인공지능쪽으로 더 공부해보고 싶어서요… 아버지가 사기당하는 일만 없었어도, 아마 지금쯤 박사까지는 했을텐데… 그래서 이제라도 해보려고요. ”
“응원할게. ”
한참 열심히 청소를 하던 그는, 회장의 호출을 받고 회장의 방으로 갔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실 생각이 있으시다고… ”
“네, 그래서 학비를 모으려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
“혹시 외국 대학원도 생각이 있으시다면, 일본 도쿄대에서 인공지능을 전공하시는 교수님께서 대학원생을 구하고 계시니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
“정말요? ”
“네. 만약 생각이 있으시다면 일본어를 공부하는 비용과 학비, 생활비까지 전부 지원해드리겠습니다. ”
“도쿄대라… 저, 가고싶어요. 언젠가 일본에 가고싶어서 일본어도 혼자 공부했었어요. ”
그는 파리아 회장의 도움으로, 도쿄대 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버지, 저 다녀올게요. ”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묘소에 들렀던 그는, 사기꾼들이 죽은 것과 빚을 전부 갚은 것, 그리고 파리아 회장의 도움으로 도쿄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다.
-잘 다녀와라. 아들, 넌 할 수 있어. 내 아들이잖냐.
어째서인지, 그는 아버지가 하늘에서 응원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머지않아>
존스홉킨스 의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원효는 카투사로 복무하게 되었다. 담당 교수에게 털어놓았을 때, 담당 교수는 의무라고는 해도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게 멋지다며, 흔쾌히 다녀와도 된다고 했다. 다녀올 동안 자리는 그대로 두겠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카투사 복무를 마치고 실험실로 돌아간 그는, 박사과정을 밟았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졸업할때쯤, 박사 학위 졸업식이고 하니 부모님도 오시는 게 좋겠다며, 두 분의 비행기값은 내주겠다는 교수의 제안으로 그는 부모님을 미국으로 초청했다.
“우리가 살면서 미국을 다 가보는구나… ”
“그러게요. ”
“우리 아들, 얼마나 컸나 봐야죠. ”
“밥은 잘 먹고 지내는지 걱정이네요… ”
원효는 여자친구와 함께 공항에 도착한 부모님을 마중나갔다.
“엄마! 아빠! 여기예요! ”
“원효야! ”
“아이고, 우리 아들! 왜 이렇게 말랐어? ”
“이 아가씨는 누구냐? ”
“여자친구. 미셸, 인사해. 우리 부모님이야. ”
“안녕하세요, 미셸입니다. 원효 여자친구입니다. ”
“반가워요, 원효 엄마예요. 이쪽은 원효 아빠고요. ”
처음으로 미국땅을 밟은 두 사람은, 원효의 졸업식에 참석했다. 그 때 지도교수를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원효의 도움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도교수는 원효만한 학생도 없었다며, 우리 실험실에서 유일한 장학생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졸업식을 한 후, 원효는 몇년동안 포스트 닥터 과정을 밟은 다음 여자친구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대학 병원에서 교수직 제의를 받아, 그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한 원효는, 오랜만에 단을 만나 청첩장을 돌렸다.
“와, 원효 그럼 이제 교수님 되는거야? ”
“그래, 인마. ”
“이야, 축하한다. 결혼도 축하해. 나도 와이프랑 같이 갈게. 여자친구분도 미인이십니다. ”
“고맙다. ”
“감사해요. ”
<완벽한 배드엔딩>
철옹성같던 부장은, 동성간 성추행에 스토킹 행위가 겹쳐 무간지옥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구둣발에 채여 아픈 것도 잠시, 다른 직원이 그를 고문실로 데려갔다.
“그 죽은 사람이 본인 스타일이야? ”
“……예? ”
“괜찮아, 괜찮아. 편하게 얘기해도 돼. 여기는 동성애자라고 해서 벌을 더 주거나 그런 건 없거든. 나도 그쪽이고. ”
“…… 네, 사실은… ”
“뭐, 그래… 네가 살아왔던 시대상도 그렇겠지만, 아웃팅이 쉬운 일은 아니지. 단단히 각오해야 할 수 있는 일이야. ”
고문실에 도착한 남자는, 커다란 철문을 열었다. 그를 데려온 남자도 그렇고, 고문실을 정리하고 있던 남자도, 꽤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작업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지만, 자칫 잘못하면 근육때문에 소매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 사람? ”
“어. 관리자님 말로는, 일단 10만년동안 알아서 갖고 놀라셨어. ”
“10만년밖에? 이 계층 기본 형벌이 몇백만년 아니었어? ”
“관리자님도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남은 기간동안 어떻게 할 지는, 10만년 후에 생각해보자고. 이쪽이 멀쩡하다면 말이지. ”
그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동안, 고문실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 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물건들이 보였다. 양초나 채찍같은 물건도 놓여있었고, 수갑도 있었다.
“뭐… 나같은 쪽이 취향이라면야, 10만년정도는 금방 가겠지… 그.렇.지? ”
이야기를 마친 남자는, 맛있는 먹잇감을 본 듯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그럼, 먼저 10만년동안 즐겨볼까… ”
<금의환향>
그는 전 여자친구의 파혼 소식을 들었다. 애초에 결혼식에 그를 불렀던 목적부터 불순했던 그녀는, 술김에 이럴 줄 알았으면 그와 결혼했다고 주사를 부려 결국 파혼당했다. 돈만 밝히는 여자의 전형적인 최후였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새로운 사무실을 청소하고, 다른 직원들과 같이 짐을 옮기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팀장님, 전화 왔어요. ”
한숨 돌릴 무렵, 전화가 와서 확인해보니 전 여자친구였다. 아차, 번호를 차단하는 걸 잊었군. 그는 전화를 끊고 번호를 차단해버렸다.
“누구예요? ”
“전여친. ”
시큰둥하게 전화를 끊은 그는, 사무실 청소를 마저 하고 컴퓨터를 자리에 설치했다.
“뭐 도와줄 거 없어? 이쪽은 다 끝났는데. ”
“이쪽도 거의 다 끝났어요. ”
“참, 오늘은 수고했다고 회장님이 법카로 회식 하라고 하셨어. 내일 일해야되니까 술은 자제합시다들. ”
“네. ”
그는 나중에야 전여친이 그에게 다시 연락했던 이유를 알게 됐다. 파리아에서 영업부 팀장으로 승진한데다, 포르쉐 카이엔을 타고 다니는 그가 훨씬 가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다시 연락했지만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던데다 약혼까지 한, 그리고 그녀에게 정이란 정은 다 털린 그가 연락을 받아줄 리 없었다.
“그럼 전여친은 그 뒤로 소식이 끊긴거예요? ”
“차단했으니까 모르죠. 대학 동기들한테 건너건너 들은게 다예요. ”
“근데 그 여자도 웃기네. 버스 환승도 그거보단 느릴거같은데요? 태세 전환이 여반장이네 아주. ”
“그러게. 그러다가 큰코다칠텐데… ”
“큰코는 이미 한번 다친 것 같은데, 또 다칠 큰코가 있을까요? ”
“솔직히 앞으로도 남자 돈 보고 만날 것 같은데, 대학 동기면 팀장님 또래 아니예요? 돈 많은 남자들은 어린 여자를 찾지, 팀장님 또래 여자들은 쳐다보지도 않을걸요? 거기다가, 그런 사람들이 결혼할 짝 찾을때는 오히려 더 재게 돼요. 잘못하면 돈 펑펑 쓰고 낭비해서 파산할 수도 있으니… ”
<천대와 우대 사이>
경오와 희연이 결혼할 때에도, 혼주석에는 경오의 아버지와 고모가 있었다. 친척들도 그의 사정을 알음알음 알고 있었기에, 지금이라도 이혼한 게 천만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다. 희연의 부모님은 처음에 반대했었지만, 경오의 어머니가 경오에게 했던 학대에 가까운 짓들과 희연에게 했던 것들을 듣고는 오히려 경오를 다독였다. 아무리 선생이라고 해도 도가 지나치다며, 고생 많았다며 그래도 혼주석을 비우면 뒷말이 나올 수 있으니 아버지쪽 친척이라도 앉히라는 말을 했다.
“두 사람, 행복하게 살아라. ”
“네. ”
“네. ”
“결혼 축하한다. ”
선생은, 집에서 쫓겨나고 갈 곳을 잃었다. 낡은 반지하 월셋방을 겨우 구했지만, 교직에서도 잘린데다가 가족들과도 절연당했다. 한평생을 교직에 몸담았던 그녀에게, 요즘 취업할 때 필요하다는 오피스나 토익같은 것도 없었고, 그걸 공부할 돈도 없었으니 결국 선택지는 일용직 일이나 가사도우미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나이가 들 수록 체력때문에 한계가 오자, 그녀는 결국 폐지를 주워 팔면서 하루하루 먹고 살게 됐다.
그럴 동안, 경오와 희연은 슬하에 자식을 둘 두었다. 경오의 아버지는 손주들을 가끔 돌봐주기도 하고, 글씨 쓰는 법도 직접 가르쳤다. 아무래도 악필인 두 사람보다는, 가끔 취미로 서예를 하기도 하는 경오의 아버지에게 맡기고 싶다는 두 사람의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희연씨가 만든 인공지능을 일본에서도 써 보고 싶다고 했어요. ”
“일본에서요? ”
“일본이랑 중국은 한자를 사용하는데, 그럼 그 부분도 학습이 되어야 하는건가요? ”
요즘 희연은, 팀원과 함께 개발한 인공지능으로 글씨체를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일본에서도 사용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연구중이다. 일본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그녀의 인공지능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그녀의 인공지능을 사용해 많은 사람들이 글씨체를 만들어보고 있었다. 처음 시연했을때는 미심쩍어하던 사람들도, 자신의 손글씨를 이용한 결과물을 받고 나서는 귀엽다며 만족했다.
“이거 하나만큼은 그 선생님 덕이었던 것 같기도… 아닌가, 회장님 덕분인가? ”
<반비례>
피트니스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윤이를 보며, 많은 사람들도 그녀처럼 되고 싶어했다. 피트니스 프로젝트를 이용하기 위해 문의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트레이너도 눈코뜰 새 없이 바빴다. 스케줄때문에 바쁠 때도 있었지만, 윤이는 그래도 시간이 날 때마다 체육관에 들러 운동을 하곤 했다.
“휴, 힘들었어… ”
“저, 소윤이씨 맞죠…? ”
운동을 마치고 로커를 정리하는데, 그녀에게 어떤 여자가 말을 걸었다. 과거의 자신을 보듯, 잘못하면 굴러갈 것 같은 몸에 소심해보이는 목소리였다.
“네, 제가 소윤이예요. ”
“저, 저도 언니처럼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모르겠어요… ”
“음… 혹시 여기서 하는 피트니스 프로젝트에 참가하셨나요? ”
“네. 참가 신청해서 다음주부터 시작해요. ”
“그러셨군요… ”
윤이는 자신이 어떻게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는지와, 어떤 운동을 했고 식단을 어떻게 했는지를 그녀에게 얘기해줬다.
“멋져요! 저도 저를 뚱뚱하다고 비웃으면서 차버린 그 남자에게 복수하고 싶은데… 잘 될까요? ”
“제가 볼 때 효영씨는, 살에 얼굴이 파묻혀서 그렇지 살 빼면 정말 미인상이예요. 왜 요즘 서구적인 외모로 유멸한 배우 있죠? 딱 그 분의 얼굴이 보여요. ”
“정말요? ”
“그럼요. 효영씨도 자신을 믿고 한번 해보세요. 저는 전 남자친구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임했거든요. ”
몇달 후, 윤이는 평소처럼 피트니스 센터에 들렀다.
“윤이씨! ”
누군가가 윤이를 불렀다. 돌아보니, TV에서 봤던 배우가 서 있었다. 그녀는 윤이를 보더니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저 효영이예요. ”
“아, 효영씨! 너무 달라져서 몰라봤어요. ”
“윤이씨에게 얘기 듣고, 꼭 예뻐져서 그 남자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임했어요. ”
“그 남자는 어떻게 됐어요? ”
“저를 보자마자 번호를 따려고 하길래, 똑같이 차줬어요. 진짜 속이 너무 시원한 거 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