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V-7. 반비례

평화로운 저녁 시간대였다. 금요일 저녁, 퇴근하는 사람들은 삼삼오오 치킨이나 고기를 먹으러 가기도 하고, 마트에서 맥주를 사서 집으로 가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한 명의 여자가 한강 다리 한복판에 서있었다.

“더 이상은 살아있을 이유가 없어… ”

한참동안 머뭇거리던 그녀는 다리 난간을 넘어갔다. 그리고 뛰어내리려던 찰나.

“멈춰! ”

누군가가 그녀를 붙잡았다. 있는 힘껏 그녀를 붙잡은 손길은 그녀를 난간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휴…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네… ”

그녀를 끌어당긴 것은, 요즘 먹방 네튜버중에서도 가장 핫하다는 만티코어였다. 영상을 몇 번 보긴 했지만, 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마, 만티코어…? 정말 만티코어예요? ”
“네, 만티코어입니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어요. 세상에는 아직 못 먹어본 음식도 많으니까, 포기하지 말자구요. ”
“흐어엉… 만티코어님… ”
“……? ”
“저도 만티코어님처럼 날씬해졌으면 좋겠어요… 많이 먹어도 살도 안 찌고… ”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거예요? ”

그녀는 울면서 왜 뛰어내리려고 했는지에 대해 만티코어에게 얘기했다.

뚱뚱한 몸보다도 더 고민인 건, 아무리 해도 살이 쉽게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원 푸드 다이어트도 해봤고, 운동도 해봤지만 허사였던 것이다. 거기다가 최근에 남자친구와 헤어지기까지 했다. 남자친구와 사귀게 된 계기는, 벌칙 게임에서 져서 고백을 했는데 그녀가 받아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남자도 차마 당일에 헤어지자고 하기는 뭣하니 며칠 사귀다가 적당히 헤어지기로 했고, 그렇게 결심하면서 만나는 동안 그녀가 이것저것 해주는 걸 보면서 그는 어차피 헤어질거면 뽕이나 뽑고 헤어지자고 마음먹게 되었다고 했다. 남자친구에게 쓴 돈만 얼추 일곱 자리는 될 듯 했고, 아르바이트로 하루 벌어 하루 먹던 그녀에게는 꽤나 힘든 일이었다. 어쩌다 만나도 비싼 곳에서 얻어먹기 일쑤였고, 커피 하나 남자친구에게 얻어먹어본 적이 없었다. 급기야는 돈을 빌려놓고 갚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차용증은 썼어요? ”
“차용증 얘기도 했었는데, 자기를 사랑한다면 그런거 쓸 필요 없지 않냐고 해서… ”
“빌려달라는 증거는? ”
“저한테 빌려달라고 문자 했던 건 있어요. ”
“큰 액수였어요? ”
“합하면 100만원이요… ”
“꽤나 악질이었네요. 참, 정말로 살을 뺄 용의가 있다면 좋은 데를 소개해줄게요. 윤이씨가 시도했던 방법이 문제였는지, 체질이 문제였는지 여기에서 진단도 해주고, 맞춤 솔루션도 제시해줄거예요. ”
“정말요? 하지만 돈이… ”
“서비스 전에 테스터를 모집하는 중이라 선정 절차가 있긴 한데, 비용은 들지 않으니까 한번 연락해보세요. ”

만티코어가 내민 것은 피트니스 센터의 전단지였다. 새로 오픈한 곳인지, 시설도 내부도 전부 깨끗해보였다.

“윤이씨가 여기서 이렇게 힘들어해도 남자친구는 거들떠도 안 볼거예요. 솔직히 여기서 윤이씨가 죽었으면, 오히려 돈 안 갚아도 된다고 좋아했을걸요? 그 꼴은 절대 못 보잖아요. 제가 여기 관계자랑 아는 사이니까 잘 얘기해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해드릴게요. 열심히 살 빼서 남자친구한테 복수하세요. ”
“네, 꼭 복수할게요. ”

그녀는 다음날, 전단지에 적힌 주소로 찾아갔다. 주소에 적힌 건물은 빨간 벽돌 건물이었는데, 제법 오래 된 티가 났다. 화장실에 온수가 나올까가 아니라, 양변기가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정도였다. 지하로 내려가보니, 깨끗한 유리문이 보였다. 유리문 안쪽으로는 하얀 외벽과 운동 기구가 보였지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 실례합니다… ”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
“저, 이 전단지 보고 왔는데… ”
“아, 피트니스 프로젝트에 참가하시려고요? 마침 잘 오셨습니다. 이 쪽으로 들어오세요. ”

안쪽은 여느 피트니스 센터와 같았다. 하지만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운동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한쪽에는 샤워실과 로커도 있었고, 화장실도 안쪽에 따로 있었다. 문 앞에 있던 벨을 누르자 안에서 나온 건장하게 생긴 남자는, 그녀를 안쪽 사무실로 오게 했다.

“프로젝트에는 왜 참가하게 된 건가요? ”
“지금까지 살을 빼려고 여러가지를 해 봤지만, 전혀 효과도 없었고… 저를 개차반처럼 취급한 남자친구에게, 꼭 예뻐져서 복수하고 싶어요. ”
“남자친구라… 아,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
“소윤이라고 합니다. ”
“만티코어씨가 얘기하셨던 분인가보네요. 이 프로젝트에 지원하셔서 꾸준히 제가 추천해드리는 방법대로만 하면 남자친구분에게 복수하실 수 있습니다. 일단 이 서류 작성해주시고… ”

윤이가 카드를 작성하자, 남자는 까만 카드와 하얀 카드를 하나씩 내밀었다.

“이 프로젝트는 파리아의 지원을 받아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부대비용에 대한 우려가 많으신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간동안 파리아에서 참여 비용과 생활비를 지원해주니까 안심하세요. 이 카드에는 한달 생활비 200만원이 들어있고, 이 카드는 로커를 사용할 때 태그하시면 로커가 열릴거예요. ”

카드 두 개를 건네받은 그녀는, 지갑에 카드를 넣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하긴 했지만, 아르바이트와 병행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던 그녀는 파리아에서 프로젝트 참여자를 지원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안심했다. 거기다가 부모님과 같이 살아서 다달이 나가는 비용도 꽤 적었던 그녀에게 한달에 200이면 꽤 많은 돈이었다.

“그럼 이 쪽으로 오셔서 인바디 측정하실게요. ”

인바디를 측정하고 나서, 건장한 남자는 그녀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그리고 그녀의 대답을 들은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원 푸드 다이어트는 생각보다 도움이 안될거예요. 그렇다고 살을 뺀다고 무작정 샐러드만 먹는것도 거부감이 있으시죠? ”
“아무래도 그렇죠… 치킨, 피자… 이런건 맛있으니까요. 샐러드는 마냥 풀때기만 있고… ”
“하하, 요즘은 샐러드라고 해도 안에 고기나 계란같은 것도 들어가 있어요. 견과류가 들어가 있는 샐러드도 있고요. 이것도 제가 점심으로 먹는 샐러드인데, 보시면 야채 뿐 아니라 계란 자른 것과 닭가슴살이 들어가있죠. 드레싱도 다양해요. ”
“아… ”
“삼시세끼를 전부 샐러드로 드시는게 부담되신다면, 점심 한 끼를 샐러드로 드시는것부터 시작해보세요. 최소한 주무시기 두 시간 전에는 아무것도 드시면 안되고요. ”

피트니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부모님도 그녀를 응원하고 있었다. 부모님 역시 그녀가 남자친구에게 수모를 당했던 일을 알고 있었고, 그 전부터 다이어트때문에 고통받는 걸 봐왔다. 그러던 찰나에 피트니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부모님도 이번 한번만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도와주려고 했었다. 파리아에서 생활비를 지원했다는 얘기를 들은 부모님은, 대신 먹을거라도 신경써줘야 한다며 그녀가 먹을 샐러드를 알아보고 있었다.

“어쩌지…? ”
“왜 그래? ”
“나가야 하는데, 옷이 흘러내려서… ”

진행하는 동안은 몰랐지만, 어느 순간 그녀의 옷이 헐렁해져서 맞지 않아 옷을 전부 새로 구매해야 할 판이었다. 방학을 마치고, 개강 시즌이라 학교에 갔던 그녀를 본 친구들은 전부 깜짝 놀랐다. 잘못하면 굴려야 할 것 같던 윤이가 맞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 친구도 있었다.

“방학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통나무가 이쑤시개가 돼서 나타난거야? ”
“나, 이번에 파리아에서 하는 피트니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든. ”
“정말? 와, 대단한데? 그럼 열심히 해서 뺀거야? ”
“응. 식단도 하고… 운동도 하고… 하고 나면 피곤한데, 저번주에 옷을 입으려고 보니까 다 흘러내리는 거 있지. ”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처음에는 뚱뚱했던 윤이는 탄탄한 근육이 잡혀있는 몸매가 되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글래머는 아니었지만, 슬림하면서도 단단한 몸을 가지게 되었다. 살이 빠지면서 자신감도 생겼던 그녀는, 같이 프로젝트를 하던 사람과 친해졌다.

“오늘부로 프로젝트는 마지막이네요… 아쉬워요. ”
“저는 오히려 보람찹니다. 처음에 오셨을때랑 달리 자신감도 넘쳐나고, 예뻐지셨어요. ”
“정말요? 감사합니다~ ”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윤이씨가 계속 이용하고 싶으시면 여기 오셔도 돼요. 윤이씨같은 분이 오셔야 다음에 프로젝트 하시는 분들도 자극받고 열심히 하시죠. 참, 윤이씨 이번 학기가 막학기라고 하셨죠? ”
“아, 네. 이번학기 끝나고 졸업해요. ”
“파리아 회장님께서 윤이씨를 스포츠 브랜드 모델로 기용하고 싶다고 하셨대요. 윤이씨가 정신없이 운동하고 계셔서 저한테 말씀 좀 전해달라고 하셨는데, 여기 명함 주고 가셨으니까 관심 있으면 연락해보세요. ”

윤이는 트레이너에게서 명함을 건네받고,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연락했다. 전화기 너머로 자신을 파리아 소속 스포츠 브랜드 담당자라고 소개한 사람은, 건강하고 탄탄한 몸이 브랜드와 딱인 것 같아 모델 제의를 하려고 연락했다며, 지금 구직중인지를 물었다. 그녀가 다음 학기에 졸업하는 학생이라고 대답하자, 그러면 방학중에 한번 봤으면 한다는 말을 전했다. 얼떨결에 면접 스케줄을 잡은 그녀는, 집에 돌아와 이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당연히 부모님은 믿지 않았지만, 명함을 보여주자 두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그럼 우리 딸, 모델 되는거야? ”
“에이, 그건 가 봐야 알지. ”

교양 수업을 마치고 가방을 정리하던 그녀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그녀를 개차반 취급했던 전 남자친구였다.

“……! ”
“건너건너 소식 듣긴 했는데, 진짜 많이 변했네. ”
“어떻게 건너건너 들었네? 내 친구들은 다 너랑 손절했을텐데. ”
“윤이야, 우리 다시 사귀자. 못해봤던 데이트도 다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나 너랑 사귀면 할 거, 버킷 리스트로 한가득 적어놨어. ”

대뜸 다시 사귀자고 말하는 전 남자친구를, 그녀는 벌레 보듯 보고 있었다.

“너, 내가 뚱뚱했을 때 벌칙 게임으로 고백했다가 마지못해 사귀는거라고 하지 않았어? 그리고, 나한테 빌린 돈 100만원은 언제 갚을건데? 나, 그때 니가 했던 문자 다 가지고 있어. ”
“그, 그건… ”
“더 좋은 여자 만나서 찼으면서 이제 와서 다시 사귀자고? 니 여친은 너 이러고 다니는 거 알아? ”
“…… ”
“윤이~ 점심 먹… 뭐야, 얘랑 같은 수업 들어? ”
“어, 소율아. ”
“이런 놈 신경쓰지 말고, 가자. ”
“응. ”

전 남자친구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자, 윤이는 그를 뒤로 하고 친구와 함께 강의실을 나섰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얘가 안 나와서 강의실로 갔더니, 글쎄 얘 전남친이 말 걸고 있더라. ”
“진짜? 뭐랬는데? ”
“다시 사귀자고. 버킷 리스트 한가득 적어놨다고 하길래, 나한테 빌린 돈 100만원 언제 갚을거냐니까 아무 소리 못 하던데? ”
“와, 걔도 철판 오지게 깔았네. 하긴, 그런 썩은 마인드니까 여친한테 차이지. ”
“걔 차였어? ”
“저번주에? ”
“저번주에 차였다고? ”
“말도 마, 여자친구가 걔 차버렸어. 정확히는 바람나서 차버린거지만. ”
“나랑 사귈때도 바람피우더니 자기가 당했네. ”
“걔가 너한테 100만원 떼먹었지? 걔 전여친한테 500만원 떼먹혔댄다. 명품 가방인가 사준다고… ”
“이거 완전히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거 아냐? ”

방학이 되자, 윤이는 명함에 적혀있던 사무실로 찾아갔다. 관계자는 실제로 보니 브랜드 모델로 딱인 것 같다며, 바로 계약하자며 계약서를 건넸다. 연봉은 그녀가 지금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벌었던 돈보다 훨씬 많았고, 부모님도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계약을 마친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 왔어. ”
“어떻게 됐어? ”
“엄마, 아빠. 이제 일 안나가도 돼. 나, 거기랑 계약하고 왔는데, 엄마랑 아빠 일 안 해도 돼. ”
“모델 된거야? 이거 경사났네! ”
“이건 축하해야지! ”

신상품을 입고 촬영한 화보가 나오자, 그녀는 더더욱 화제였다. 탄탄한 몸도 탄탄한 몸이지만, 과거에는 뚱뚱했던 그녀가 전 남자친구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환골탈태를 해버렸으니 당연했다. 트레이너의 말로는, 그녀를 보고 자극받아서 피트니스 프로젝트에 신청하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했다.

“정말요? 그거 잘 됐네요. ”
“전부 윤이씨 덕분이예요. 사람들이 다들 윤이씨처럼 되고 싶다고 찾아오고 계세요. ”

환골탈태한 윤이가 모델로 활약할 동안, 친구를 통해 이따금 전 남자친구의 소식이 들려왔다. 여자친구에게 뜯겨버린 500만원은 대학생 형편에 은행 대출이 안 돼서 사금융의 손을 빌렸는데,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서 이자만 1000만원은 족히 된다고 했다. 그도 그녀에게 빌린 돈을 갚지 않았고, 그의 전 여자친구 역시 그랬다. 그녀는 100만원이 무색할 만큼 많이 벌고 있었지만, 그는 반대로 빚이 빚을 낳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