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XV. 저주받은 음악

“안녕하세요, 요전에 연락드렸던… ”
“아, 얘기는 들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

사무실로 훤칠하게 생긴 남자가 들어섰다. 그 순간, 사무실에서 TV를 보던 야나기와 데스 애더의 시선이 그 남자를 향해 꽂혔다. 그 남자는, 최근 모든 멤버들이 군대를 전역하고 막 컴백을 위해 앨범 작업을 한다던 라이트닝 보이즈의 멤버, 준이었다.

“저 사람… 라이트닝 보이즈 맞지…? ”
“틀림없어. 저 사람, 라이트닝 보이즈의 준이야. ”

아이돌이 여기까진 어쩐 일인지 궁금했던 둘은, TV를 보는 척 하면서, 신경은 온통 두 사람이 나누는 얘기에게 쏠려있었다. 한참 컴백때문에 바쁠 아이돌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분명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사생팬이나 자잘한 범죄에 연루된거라면 소속사에도 법무팀이 있어서 거기서 대응할텐데, 굳이 여기까지 온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컴백 관련해서 음반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음반 작업에 차질이 생겨서 알아봤더니 프로듀서가 교통사고를 당했더라고요. 광현이가 아무래도 이것 때문인 것 같다고 해서 오게 됐습니다. ”

준은 USB를 내밀었다. 아무것도 없이 하얀 USB였지만, 미기야는 왠지 그 USB를 보는것만으로도 좋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좋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네요. ”
“아무래도 이것과 뭔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저희들은 곧 컴백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 알아보기는 힘들 것 같아서, 대신 알아봐주십사 부탁하러 왔습니다. ”
“알겠습니다. 여기 제 명함을 드릴테니,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 주세요. ”

준이 돌아가자, 미기야는 USB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안에는 알 수 없는 파일이 하나 들어있었고, 파일명은 ‘백색소음’이었다. 그 파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파일을 옮기거나 복사하거나 다른 파일을 USB 안에 넣는 것은 불가능했다.

“USB가 잠겨있는 모양이네… ”
“뭔데? 준이 주고 간 거야? ”
“네. 안에 음악 파일이 들어있긴 한데,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거기다가 USB에서 파일을 꺼내거나 다른 파일을 넣는 것도 안되고… ”
“음… ”
“백색소음이라… 곡명이 특이하긴 하네요. 그나저나 연예게쪽이면 우리쪽에서 독단적으로 조사하기는 힘들 것 같으니, 고키부리 사무실에라도 가 봐야겠네요. ”

고키부리 사무실에 들어선 미기야는 도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라이트닝 보이즈의 의뢰라니, 구미가 당겼지만 도희도 정보원을 투입하기는 애매한 상황이었는지 썩 긍정적인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도희는, 작곡가를 한 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미기야는 도희가 알려준 연락처로 연락을 해 작곡가와 만났다. 작업실이 마침 그가 있는 건물의 지하였지만, 방음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몰랐던 듯 했다. 작업실로 내려가니, 까만 후드를 입은 젊은 남자가 자신을 유피라고 소개하면서 미기야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도희씨 연락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괴담수사대의 유키나미 미기야입니다. ”
“도희씨한테 대충 듣긴 했는데, 백색소음을 지금 미기야씨가 가지고 계신건가요? ”
“네. 준이 저에게 주고 가셨어요. ”
“그렇군요… 뭐, 그래도 가지고 있는것만으로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겁니다. 백색소음을 가지고 있다가 크게 다치거나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작곡가거든요. 작곡가 전용 프로그램이 필요하기떄문에 보통 사람들은 거기 들어있는 파일, 열지도 못해요. ”
“혹시 이 멜로디에 대해 아는 게 있으십니까? 최근에도 이걸 프로듀싱하려던 작곡가가 크게 다쳤다고 들었는데… ”
“얘기가 들어질 것 같은데… 맥주 괜찮으시죠? ”
“아, 네. ”

유피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 두 캔을 가져왔다.

“논알콜이니까 걱정 말고 드세요. ”
“감사합니다. ”

맥주 캔을 따자, 치익 하고 김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백색소음이 예전에는 테이프, 그 다음에는 CD에 들어있었는데, 지금은 둘 다 잘 안 쓰는 추세라 USB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어요. 백색 소음과 관련된 얘기는 예전에도 꽤나 유명했었는데, 그때도 그 노래를 프로듀싱 하려던 작곡가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기도 했었어요. ”
“꽤 유서 깊은 저주군요. ”
“부상의 정도를 보자면 어느정도 공통점은 있었어요. 백색소음을 프로듀싱하려다가 죽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전에 표절 논란이 있었던 작곡가들이었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표절로 밝혀진 작곡가도 있었고요. ”
“프로듀싱하려던 작곡가가 다 크게 다치거나 죽었다면, 그 멜로디는 결국 노래로 발표되지 못한건가요? ”
“그렇죠. 크게 다쳤다…는 작곡가들도 대부분 손을 다쳐서 장비 조작을 원활하게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거든요. 그걸 이어받아서 발표하려고 했던 사람들도 다 다치거나 죽었고요. 크게 다쳤던 사람들에 의하면, 다치기 전날 꿈에서 어떤 여자가 나오더니 자기 팔을 날붙이로 찍었다고 하더라고요. 왼손잡이면 왼팔, 오른손잡이면 오른팔을요. 죽은 사람들은 일단 심장마비로 발견되긴 했고요. ”
“어떤 여자가 무언가로 팔을 찔렀다라… 혹시 그 여자분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시나요? ”
“머리가 길었고,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고 해야 하나… 짓이겨져있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있을만한 형태는 아니었대요. 80년대 뮤직비디오에나 나올 법한 의상을 입고 있었고요. ”

유피에게 백색 소음에 얽힌 사연에 대해 들은 미기야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미기야가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다른 직원들은 사무실에 있었지만 파이로는 없었다.

“뭐 좀 알아냈어? ”
“꽤 유서깊은 저주였다는 것 정도요. 그리고… 프로듀싱하려던 사람들이 크게 다치기 전에 꿈을 꿨는데, 꿈 속에서 어떤 여자가 날붙이로 팔을 찍었대요. 왼손잡이면 왼팔을, 오른손잡이면 오른팔을… ”
“음… 꽤 유서깊은 저주라면 예전에는 USB가 아닌 다른 물건이었을 수도 있겠네. ”
“처음에는 카세트 테이프였대요. ”
“그럼 그 여자 얼굴은? ”
“짓이겨져서 이목구비를 알아보기 힘들었다고 해요. 요전에 T바이오때처럼 USB를 통해서라도 뭔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잠금이 걸려있어서 그것도 힘들 것 같고… 여기에 얽힌 사연이 있다고 해도, 연예계의 어두운 면이다보니 아무래도 밝혀내기 힘들겠죠. ”
“하긴, 과거로 가서 현장을 보지 않는 이상은… ”

뭔가 원한같은 게 있다고 해도, 알아낼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안에 든 곡에 얽힌 이야기라고 해봐야, 안에 든 곡을 프로듀싱하려던 작곡가들이 대부분 죽거나 크게 다쳤다는 이야기였다. 죽거나 다치기 전에, 어떤 여자가 꿈에 나타나서 날붙이로 팔을 찍었다는 것과 함께. 그것 외에 다른 것은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그냥 이걸 안 건드리는 게 최선인 것 같아요. ”
“그렇지. 손대면 죽으니까. ”
“오너, 그 백색소음건 말인데… ”
“아, 네. ”
“표절 논란이 있었던 작곡가들은 프로듀싱하려다가 죽었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알아냈어요. ”
“네? 그걸 어떻게…? ”
“오래 전에 유명했던 연예인들 찾아가서 자잘하게 근황 인터뷰하는 네튜브 채널이 있는데, 그 채널을 통해서 예전에 작곡도 가끔 했던 가수를 만났거든요. ”
“그 분이 뭐라던가요? ”
“백색소음 노래는 주인이 따로 있는 노래인데, 노래의 주인이 데뷔를 앞두고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어요. 아마 얼굴이 짓이겨져서 알아볼 수 없었던 것도 그것때문일거예요. ”
“노래의 주인이 따로 있다고요? ”

노래의 주인이 따로 있고, 데뷔도 하기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는 라우드에게서 들은 가수의 이름을 검색했고, 교통사고 소식을 실은 옛날 신문을 찾을 수 있었다. 백색소음을 원래 부르려고 했던 가수는 녹음을 마치고 집에 가던 중, 음주운전을 하던 트럭에 치여서 사망했다. 그 때 얼굴이 짓이겨저 신원 확인이 안 되어서 지문 대조로 간신히 신원을 확인했고, 차를 운전하던 매니저는 현장에서는 살아있었지만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얘기도.

‘설마 데뷔하지 못해서 원혼이 쌓여있는건가…? ‘
“뭐여, 퇴근 안 했냐? ”
“아, 뭐 좀 알아볼 게 있어서요. ”
“뭔데? 그 백색소음? ”
“네. 파이로씨, 혹시 이 사람 아세요? ”
“이때 난 소사체였는데… 아마 세베루스씨한테 물어보면 알지도 모르겠다. 이따가 한번 물어볼테니, 일단 퇴근부터 하셔. 슬슬 차 끊기겠어. ”

그리고 다음날, 미기야가 파이로에게 전해들은 얘기는 신문에 나온 것과 전혀 다른 얘기였다. 어찌나 충격적이었는지 그는 하마터면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 했다.

“그 USB에 있는 거, 노래 주인의 원혼이 맞아. 녹음을 마치고 데뷔하기 전에 죽었어. ”
“그건 알죠.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는데… ”
“아냐, 살해당했어. ”
“예? ”
“도로변에서 죽인 다음, 안면을 짓이겨서 신원 확인을 못 하게 만들고 폐차 직전인 차를 사서 교통사고인 척 위장한거지. 그 도로는 예전에도 화물차가 자주 다니다보니 트럭에 치여서 죽었나보다, 한거고. ”
“그럼 매니저는요? ”
“매니저랑 죽인 사람이 공범인데, 막판에 싸워서 홧김에 매니저도 중상을 입은거지. ”
“허… ”

USB에 있는 원혼은 살해당했다. 그것도 데뷔하기 전에.

“그럼 이 노래의 주인이 자기이기떄문에 프로듀싱을 못 하게 하는걸까요? ”
“그건 당사자가 아닌 이상 모르지. ”
“죽인 사람은 벌을 받았을까요…? ”
“너도 알텐데, 10년 전에 뺑소니 논란 터져서 방송에서 갑자기 사라졌던 여가수. 지금도 방송에서는 안보이고 쥐죽은것처럼 지내잖아. 연예인들 근황 취재하는 네튜버도 그 사람은 욕으로 댓글이 도배될까봐 취재 안 한다고 했던. ”
“……! ”

예전에는 입담도 걸출하고 노래도 재미있어서 가끔 토크쇼에서 보였던 여가수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잘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 이유가 뺑소니 논란이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그 뒤로는 쥐죽은듯 산다는 얘기만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접했다.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오전에 K시에서 T시로 가는 국도변에서 변사체가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얼굴이 짓이겨저서 신원을 알아볼 수 없었으나… ”
“……! ”

교통사고 뉴스가 나옴과 동시에, 책상 위에 놓였던 USB가 있던 자리에 쪽지가 하나 생겼다. 쪽지에는 ‘이 곡은 JINU에게 맡겨주세요. 그 애라면 잘 해낼겁니다. ‘라고 쓰여있었다. 준에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전한 미기야는, USB를 돌려주면서 프로듀싱을 지누에게 맡겨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지누에게요…? ”
“네. 오늘 아침에 교통사고 뉴스가 나오더니, 이런 쪽지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
“아… ”
“그 노래에는 이름도 알리지 못 하고, 재능이 걸출했던 탓에 살해당한 가수의 한이 담겨져 있어. 프로듀싱 하기 전에, 무덤에 찾아가서 명복 정도는 빌어주라고. 아마 지누에게 맡겨달라고 부탁한 이상, 지누를 죽이거나 하지는 않을거야. ”
“그… 사실, 죽은 사람이 지누의 이모쪽 친척이라고 들었습니다. ”
“…네? 이모쪽 친척이요? ”
“네. 저도 자세한 얘기는 모르고, 가수 데뷔하다가 사고로 죽었다고만 알고 있었어요… 그 이름, 확실히 지누가 예전에 얘기했던 적 있어요. ”
“마지막으로, 곡을 자기 조카에게 맡기고 싶었던건가… ”

며칠 후, 라이트닝 보이즈의 컴백 무대가 있었다. 타이틀곡 백색소음은 발표하자마자 유명세를 타서, 거리마다 백색소음을 틀 정도였다. 원래 라이트닝 보이즈는 유명하긴 했어도 해외 팬들은 소수였지만, 이 노래가 기회가 되어 해외 팬도 늘어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