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1. Gourmet

파이로와 야나기는 G구의 어느 파스타집을 찾아갔다. 의뢰도 의뢰였지만, 자연스럽게 가게의 분위기나 맛 등을 파악할 요량으로 둘이 가게 된 것이었다. 주로 한식 위주로 먹는 미기야보다 그 둘이 파스타에 조예가 깊었던 것도 있다.

“어서오세요, 파스타 전문점 구르메입니다. ”

파이로과 야나기가 두 명이라고 얘기하자, 직원은 금방 자리를 안내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은 다음 가게를 둘러보니, 가구나 조명, 인테리어를 봐서는 날 잡아서 한 번 먹으러 와야 할 것 같은 고급 식당의 느낌이었다. 곧이어 점원이 메뉴판을 가져다주자, 야나기와 파이로는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역시, 파스타는 집에서 해먹는 게 낫다니까. 밖에서 먹으려면 꽤 비싸네… ”
“우리 돈 아니니까 먹는거지. 일단 파스타집의 실력을 알아보려면 오일 파스타를 하나 먹어봐야 하니까 알리오 올리오. ”
“그럼 난 머쉬룸 크림 파스타로 시킬게, 나눠먹자. ”
“그래. 그리고 피자도 하나 시켜야지… ”

점원을 불러 메뉴를 주문하자, 메뉴판을 가져간 점원은 쟁반에 식전빵과 오이피클이 담긴 접시, 물잔 두 개를 가져온 다음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물잔에 물을 두 잔 따르자, 희미한 레몬 향이 났다. 아마 레몬수였던 모양이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가게 이곳저곳을 둘러봤지만, 별다른 건 없어보였다. 오히려 뭔가 있다면 사고가 나야 할 부엌에서조차 무언가를 볶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내 고소한 냄새가 느껴지는가 싶더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르곤졸라 피자가 꿀과 함께 나왔다.

“여기 주문하신 고르곤졸라 피자 나왔습니다. 꿀에 찍어서 드세요. ”
“감사합니다. ”

고르곤졸라 피자를 한 입 먹고 있으니, 곧 이어 다른 점원이 파스타가 든 접시를 들고 왔다.

“알리오올리오는 어느 분이신가요? ”
“이 쪽에 놓아주세요. ”
“여기 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

파이로와 야나기는 각자 주문한 파스타를 한 젓가락 먹고, 상대가 주문한 파스타도 한 젓가락 먹었다. 알리오올리오는 마늘 향이 잔뜩 밴 기름과 면의 조화가 어울렸고, 알 덴테로 삶은 면은 적당히 씹히는 느낌이 들면서 맛있었다. 버섯 크림 파스타도 기성 제품과는 달리 살짝 심심하면서도 부드러운 크림의 맛과 양송이버섯의 식감이 조화를 이루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결제를 마치고 가게를 나왔다.

“이 집 괜찮네. ”
“그러게. 고르곤졸라도 꽤 맛있는데, 사이즈도 그렇게 작지 않고… SNS 감성 가게보다는 훨씬 나은데? 파스타도 양이 꽤 많고. ”
“주문할때 보통 알 덴테로 해달라고 하면 못 알아듣고 되묻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바로 알아듣는 것부터 가점이지. 예전에 갔던 곳은 알 덴테로 해줄 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오히려 나한테 그게 뭐냐고 되묻더라. ”
“대부분은 완전히 익혀 먹으니까. ”
“그치… 대부분은 코투라나 벤 코토지… ”

파스타를 먹고 사무실로 돌아온 파이로는 미기야에게 법인 카드를 건넸다.

“딱히 별다른 건 없었어. 분명 부엌에 뭐가 있다면 조리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텐데… 그거랑 별개로 이 집 맛있으니까 다음에 한번 가 봐. ”
“라우드쪽은 어때? ”
“몇 명의 손님들에게서 제보를 받았다고 하네요. 손님들이 피해를 본 건 아니고, 조리사가 다쳐서 음식이 조금 늦게 나왔다고 서비스를 받은 적이 있었대요. ”
“다쳐서? ”
“어디를 다쳤는지는 모르겠는데, 음식을 버리고 새로 만드느라 늦었다고 해요. 그 식당은 주문 들어가면 면을 삶고, 조리하다가 이물질같은 게 들어가거나 하면 버리고 새로 하거든요. ”
“음… 음식을 버리고 새로 할 정도면 피 봤겠는데? 단순히 칼질하는 것 만으로 손가락이 잘리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 ”
“이거, 고객 말고 전에 거기서 일했던 사람들 얘기는 들은 거 없어? 아무래도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잘 알 것 같은데… ”
“방금 그 건으로 미팅 나가셨으니, 아마 오늘 저녁쯤에는 돌아올거예요. ”

잠시 후, 미팅이 금방 끝난 모양인지 라우드가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
“오셨군요. 가셨던 건 어떻게 됐나요? ”
“요리를 할 때, 특정 직원만 유독 심하게 다쳤습니다. 그 분이 이탈리아에서 요리도 공부하셨고, 현지 식당에서 꽤 오래 일도 하셨던 분인데 유독 요리할 때 손을 다치는 경우가 많았대요. ”
“숙달됐어도 칼질하다 보면 베이고 그러지 않아? 그 정도 차원의 문제가 아닌가? ”
“칼에 살짝 베이는 정도가 아니라, 손등을 깊이 찔리거나 강판에 실수로 손바닥이 갈리는 정도야. ”
“유난히 다치는 사람이 있고, 원래 다칠만한 분이 아닌데, 경미한 부상도 아니다… 확실히 뭔가 있어. 만약 그게 맞다면 나랑 야나기가 갔을 때는 그 사람이 조리를 하지 않아서 별 일 없었을지도 몰라. ”
“몇시쯤 갔는데? ”
“오후 두시? ”
“그때 그 사람은 응급실이었어. 그래서 아무 일 없었을거야. ”

오랫동안 요리를 해서 숙달된 직원이, 그렇게까지 다칠만한 부상이 아닌데 피를 흘릴 정도로 크게 다쳤다. 확실히 이상했다.

“그 식당, 9시 반이 마지막 오더거든? 마감 하기 전에 우리가 한번 가자. 뭔가 이상해서 그래. ”
“일단 연락해볼게요. ”

미기야가 식당 주인에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식당 주인은 오늘은 평소보다 30분 일찍 마감할테니 9시에 와달라고 했다. 그리고 저녁 9시에 맞춰 가게에 도착하자, 아직 식사중인 몇몇 손님들을 제외하면 가게는 텅 비어있었다. 손님들이 식사를 마무리할동안, 파이로는 부엌으로 갔다.

“자주 다치는 사람이 사용하는 용구가 따로 있어? 그 정도 경력이면 자기 칼 세트 하나는 들고 있을 것 같은데. ”
“저 쪽에 있습니다. ”

부엌 한쪽에 금속제 케이스가 있었다. 마치 007 가방같이 생긴 케이스에는 Lee라고 쓰여진 라벨이 붙어있었다. 파이로가 케이스를 열고 안을 보자, 크기가 제각각인 칼들이 들어있었다. 칼들은 크기별로 일사불란하게 정렬되어 있었고, 한쪽에는 치즈강판이 들어있었다.

“이게 치즈강판인가보네. 이것들은 다 칼이고… ”
“무슨 칼이 이렇게 많아? ”
“생선 손질용, 고기 손질용, 야채 손질용… 생각보다 칼은 용도에 따라 적합한 형태가 달라. ”

칼과 치즈강판에서는 오늘도 몇 번 사용한 흔적이 보였다. 몇 개의 칼은 물기가 마르긴 했지만, 주인이 다쳐서 완벽하게 말리지는 못한 탓인지 물자국이 남아있었다.

“혹시 다른 칼로 조리했을때도 다쳤어? ”
“그 분이 저 칼 외에는 안 쓰겠다고 고집을 부리셔서요… 그런데 다른 조리사가 그 칼을 잠깐 빌렸을 때는 별 일 없었어요. ”
“다른 사람이 썼을때는 별 일 없다라… ”

겉보기에는 전문가용 칼세트 같았지만, 파이로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 여기에는 무언가가 있고, 이 무언가가 주인을 다치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주인은 이 칼이 아니면 쓰지 않았다.

“뭔가 사연이 있는 물건 같은데, 어디서 얻었다 뭐 그런 얘기는 안 했지? ”
“저희는 신입이라 잘… 아, 형식이라면 알 수도 있겠네요. 형식이가 여기서는 셰프님이랑 제일 오래 일해서… ”
“그래? ”

파이로가 형식과 이야기를 나눌 동안, 라우드는 케이스에 손을 얹고 영상을 확인했다.

“힉- ”

손을 얹자마자 보인 것은, 칼의 주인이 요리를 하다 다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실수로 칼을 잘못 다뤄서 다친 게 아니라, 칼에 있는 무언가가 의도적으로 그를 다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도 설마…? ”
“왜 그러세요? ”
“다쳤다는 게… 실수로 잘못 다뤄서 다친 게 아니었어요. 여기에 확실히 무언가가 있고, 그 무언가가 의도적으로 다치게 만든거였어요. ”
“어, 그 칼에 확실히 뭔가 있지? ”
“파이로씨! ”
“일단 태우자. ”

파이로는 칼이 든 케이스에 혼불을 확 붙였다. 금속제 케이스이기 때문에 탈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케이스는 혼불이 붙자마자 산화제라도 뿌린것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
“원한관계는 저승 가서 청산해라. ”

혼불이 사그라들자, 케이스에 또 다른 라벨이 보였다. 꽤 낡고, 누군가 떼려고 시도한 티가 제법 났던 라벨에는 ‘Cho’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 ”
“이거, 원래 당신 칼 아니었지? ”
“…… ”

파이로의 질문에 한참동안 입을 닫고 있던 셰프가 입을 열었다.

“실은, 이탈리아에서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의 칼입니다. ”
“친구 맞긴 해? 타지에서 죽은 친구가, 친구를 다치게 하러 여기까지 따라온다고? 괴담수사대에서 꽤 오랫동안 일했지만 그런 적은 단 한번도 없었어. ”
“…… ”
“뭐가 있었는지는 내 알 바 아니고, 이제 태워버려서 이 칼을 쓴다고 해도 자주 다치거나 하지는 않아. 하지만, 이승에서 더 이상 다칠 일이 없는거지 저승에 가게 되면 그 동안의 업보를 다 청산받을거다. ”

괴담수사대는 식당을 나와 퇴근했다. 집이 있는 현과 라우드, 미기야는 각자 집으로 돌아갔고 파이로와 야나기만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
“저 칼의 원래 주인은 이탈리아에서 같이 요리 공부를 하던 친구였어. 똑같이 미슐랭 5스타 식당을 지망하고 있었고, 하필 그 사람이 가고 싶었던 식당에 칼의 원래 주인이 내정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일부러 떨어지게 만들었고. 그 뒤로 상심한 친구는 자살했고, 현 주인은 지망하는 식당으로 들어가게 된 거지. ”
“그럼 칼은 어떻게 받게 된 건데? ”
“내막을 모르는 부모님이, 한국으로 현 주인이 건너오자 잘 써달라고 준 모양이더라. 같이 일한 사람도 죽은 친구의 유품이라는 것 까지만 알고 있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