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2. 사고다발지역

괴담수사대는 K시 근처의 어느 휴게소에 나와있었다. 며칠 전에 이 근처가 사고다발지역이라며 의뢰가 들어와서 조사차 나오게 된 것이었다. 수사대 건물이 있는 장소와는 꽤 멀었기때문에, 수사대원들이 차에서 전부 잠들 수는 없어서 휴게소 인근에 숙소를 하나 잡아두고 휴게소로 나온 상태였다. K시 근교에 있는 휴게소라 그런지 꽤 규모가 작은 휴게소였던지라, 시설도 그렇게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사고다발지역이 이 근처였지? 어디야? ”
“여기서 나가서 K시로 가는 길목이래요. ”
“음… 숙소 잡으러 갈 때는 뭔가 딱히 본 건 없었는데… ”
“일단 저 쪽에 줄 서있는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죠. 저번에 그 일처럼 특정한 사람만 대상일지도 모르고… ”
“그러지. ”

휴게소 한쪽에는 전기차 충전소가 있었고, 사람들은 전기차를 충전하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충전소 쪽으로 다가간 미기야는 전기차를 충전하고 있던 여자에게 다가갔다.

“저, 실례합니다. ”
“아, 네? 무슨 일이시죠? ”
“저는 괴담수사대에서 나왔습니다. 이 근처에 사고다발지역이 있다고 해서 조사중인데, 혹시 관련된 얘기를 들으셨거나 무언가를 목격하신 적이 있나요? ”
“글쎄요… 저는 여기는 초행길이라 잘 모르겠는데… 제 친구도 이쪽을 종종 지나다니는데, 딱히 본 건 없었어요. ”
“그렇군요… ”
“아마 저기, 트럭을 충전하고 계시는 분들께 여쭤보는게 도움이 될거예요. 전기트럭을 충전하려면 반드시 여기를 들러야 해서, 화물 나르시는 분들이 많이 보인다고 들었거든요. ”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

여자에게 감사인사를 건넨 미기야는, 그 옆에서 트럭을 충전하고 있는 중년 남성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
“응? 무슨 일 있수? ”
“저는 괴담수사대에서 나왔습니다. 이 근처에 사고다발지역이 있다고 해서 조사중인데, 혹시 관련된 얘기를 들으셨거나 무언가를 목격하신 적이 있나 해서요. ”
“사고다발지역…? 아, 맞아. 이 휴게소에서 K시로 가는 길에 하나 있어요. 목격자를 찾습니다 현수막이 걸려있는 곳인데, 밤에 그 곳으로 운전해서 가다 보면 좀 젊어보이는 여자가 하나 보여요. ”
“젊은 여자가요? 혹시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 나세요? ”
“기억 나다마다요… 나도 지나가다가 한번 봤거든. 머리는 이렇게 길어서 풀어헤쳤고, 하얀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어요. 맨발로 터벅터벅 현수막 주변을 걷고 있길래 차를 세우고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더니 대답을 안 하더라고. 그러길래 몇번 더 불렀더니 이 쪽을 보는데, 눈구멍이 텅 비어서 거기서 피를 줄줄 흘리는거예요. ”
“별다른 해코지같은 건 안 당하셨나요…? ”
“해코지고 뭐고, 제 얼굴을 보더니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 자리에서 사라졌습니다. 아마 그 여자때문에 놀라서 교통사고가 나는 것 같은데, 그래서 요즘 화물 운반하는 사람들은 낮에 가서 하룻밤 잤으면 잤지, 밤에 K시는 가급적이면 안 가려고 해요. 왔다갔다 하다가 그 여자 보면 또 사고나고, 사고나면 차 수리해야 해서 일을 쉬어야 하거든… ”

미기야는 휴게소에서 전기 트럭을 충전하는 사람들에게 사고다발지역에 대해 물어봤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흰 옷을 입은, 눈이 없는 여자를 보았고 여자가 운전자를 보더니 ‘너는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사라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흰 옷을 입은 여자가, 운전자 얼굴을 보더니 아니라고 하면서 사라졌다고? ”
“네. 그 여자때문에 놀라서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거였어요. 요즘 사고가 줄어든 건 그 여자가 사라졌거나, 아니면 그것때문에 밤에는 K시로 안 가서 그럴지도 몰라요. ”
“음… 일단 그 현수막부터 좀 봐야겠다. ”
“시간도 늦었으니, 들어가면서 한번 보죠. ”

휴게소를 나와 조금 달리다보면, 어두운 밤 홀로 나부끼는 하얀 현수막이 보였다. 미기야가 현수막이 있는 곳에 차를 대자, 파이로는 차에서 내려 현수막을 확인했다. 어두워서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핸드폰 플래시를 켜면 어찌어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플래시를 켜고 현수막을 비추자, 붉은 글씨로 ‘목격자를 찾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게 보였다.

“목격자를 찾습니다… ”
“여기서 뺑소니 사고가 있었나봐. 사고가 있었던 건 몇달 전… 얼추 두어달은 됐겠네. 그러면 영상 확인은 힘들겠고… ”
“그러게… 일단 내일 형사님께 연락해서 한번 알아보자. ”

현수막을 확인한 파이로가 차로 갔을 때, 미기야는 사색이 되어 있었다.

“야, 너 왜그래? 뭐 봤냐? ”
“파이로씨가 내리자마자 하얀 여자가 이 쪽으로 다가왔어요… ”
“하얀 여자? ”
“네… 저를 보자마자 현수막을 가리키고 사라졌어요… ”
“일단 진정하고… 라우드, 너 면허 있냐? ”
“응. ”
“숙소까지 운전 좀 해줘. 얘 이 상태로 운전하다간 사고나겠다. 현수막 관련된 얘기는 숙소에 가서 해 줄게. ”
“어. 오너, 뒤로 가세요. ”

사색이 된 미기야 대신 라우드가 숙소까지 차를 운전해서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편의점에 들른 파이로는 캔막걸리 한 병과 주전부리 몇 개를 사들고 숙소로 갔다.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주전부리들을 꺼낸 그녀는, 같이 사 온 술을 하나씩 건넸다.

“니네 둘꺼는 그냥 사이다다. 이건 야나기, 이건 현. ”
“배고팠는데, 잘됐어요. ”
“그럼 이제 브리핑을 시작해봅시다. 현수막에는 목격자를 찾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던 걸 보면 아마 이 근처에서 뺑소니 사고가 있었던 게 분명해. ”
“뺑소니 사고? ”
“응. 뺑소니 사고 목격자를 찾고 있었거든. 여기는 국도변이라 CCTV같은 것도 없을테고… 사고가 일어난 시간대가 새벽이라 목격자 찾기도 힘들거야. 일단 의뢰자한테 연락해서 이 근처에서 뺑소니 사건이 있었는지랑 피해자 신원 알아봐. ”
“네. ”
“아까 그 여자 봤다고 했지? 몇 살 정도 돼보였어? ”
“음… 얼추 3~40대정도요. ”
“좋아, 일단 나는 세베루스씨에게 연락해서 알아보도록 할게. ”
“네. ”

주전부리를 다 먹은 파이로와 야나기, 현은 방으로 돌아가 씻고 잘 준비를 했다. 잠들기 전, 파이로는 세베루스에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K시 근처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3~40대쯤 되는 여자가 있는지 물었다.

“K시 근처… 교통사고… 3~40대로 추려도 꽤 많아요. ”
“혹시 사인을 좀 세부적으로 볼 수 없나요? 그 유령이 뺑소니 사고로 죽었는데… ”
“뺑소니 사고요? 뺑소니… 뺑소니라… 아, 여기 있어요. 아마 거기에 있다면 명계에 없다는 얘기인데… 사망처리가 되었는데 명계에 등록이 안 된 건 이 사람뿐이네요. 처리 되는대로 보내드릴게요. ”
“네, 알겠습니다. ”

다음날, 미기야는 의뢰자였던 형사에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K시 근처에서 뺑소니 사고가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형사는 두달 전쯤 뺑소니 사고가 있었고, 피해자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는 것과 새벽 시간대에 발생한 사고라 목격자가 없어서 범인을 잡지 못 했다는 것을 전했다.

“뭐래? ”
“사고가 있었대요. 새벽 시간대라 목격자가 없어서 범인은 아직 오리무중이고, 피해자는 현장에서 즉사했다고… ”
“그 피해자가 혹시 30대 중반이야? 어제 세베루스씨가 추려서 보내주긴 했는데… K시 근처에서 최근에 뺑소니로 죽었고 명계에서 소재불명인 건 이 사람 뿐이래. ”
“아… 맞아요, 이 사람. 뭔가 큰 차에 받혀서 죽은 것 같다고 했었는데… ”
“잠깐만. 어제 휴게소에서 얘기를 나눠봤을 때, 화물차를 몰았던 사람들이 전부 그 여자를 봤다고 했지? 다른 차를 몰던 사람들은 못 봤다고 했었고… ”
“네. 승용차나 SUV를 몰던 사람들은 밤에 지나가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더라고요. ”
“그렇다면 확실해. 화물차에 치여 죽은거야. 그래서 밤에 화물차를 몰고 지나가면 이 사람이 자신을 친 그 사람인지 보기 위해서 나타나는거고… 니 앞에 나타나서 현수막을 가리켰던 건, 아마 자기가 뺑소니 사고로 죽었으니 도와달라고 나타난거겠지. ”
“하지만, 경찰도 목격자가 없어서 못 잡은 범인을 무슨 수로 잡죠? 몇달 전이면 그 사람이 받혔던 흔적도 다 수리가 끝났을텐데… ”
“아니, 우리는 범인 잡는 게 일이 아니잖아. 뺑소니 사고로 죽은 피해자가 유령이 되어서, 자신을 죽인 사람을 찾고 있다. 그래서 사고다발지역이 됐다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끝인거지. ”
“그런가요… ”

미기야는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 형사님, 괴담수사대입니다. ”
“아, 네. ”
“K시 근처에서 뻉소니 사고로 죽은 피해자가, 자신을 죽인 사람을 찾기 위해 나타나서 사람들을 놀래키는 것 같아요. ”
“자신을 죽인 사람을 찾기 위해서요? ”
“네. 아마 짧은 순간이지만 자신을 치였던 사람의 얼굴을 봤을 수도 있으니까요. 피해자를 발견했을 때 커다란 차에 받힌 것 같았다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K시 근처에서 밤에 지나가는 차는 대부분 화물차고요. ”
“맞습니다. 뭔가 커다란 차에 받힌 것 같았다고 했었죠… 그럼 그게 화물차에 치여서 그렇게 된 거였군요. 알겠습니다. ”

점심을 먹고 수사대원들이 돌아가는 길이었다. 평소같았으면 진작 지나갔어야 하는 길이 오늘따라 정체가 심했다. 차들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와중에, 현수막이 있는 곳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고 났나? ”
“이상하네요. 낮에는 그 여자를 봤다는 사람이 없었을텐데…? ”
“잠깐만, 일단 갓길에 세워봐. ”
“네? ”
“빨리. ”
“아, 네. ”

미기야가 갓길에 차를 세우자, 파이로는 사건 현장으로 갔다. 그리고 뒤따라 간 미기야가 본 것은, 교통사고 현장이었다.

“헉? ”

현수막이 걸려있는 곳 앞에는 트럭 한 대가 서 있었다. 하지만 트럭의 상태는 이상하리만치 처참했다. 이 곳이 사고다발지역인 이유는, 밤에 트럭을 몰다가 뺑소니 사고로 죽은 유령을 본 운전 기사들이 놀라서 멈췄다가 현수막이 묶여있는 전봇대에 살짝 부딪혀서 전조등이 부서지는 정도였다. 혹은 뒤로 차를 몰다가 부딪히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지금 두 사람이 보고 있는 것처럼 트럭이 찌그러질 정도가 될만한 곳이 아니었다.

흰색 트럭은 무언가로 압축한것처럼 찌그러져 있었고, 운전자는 트럭 뒤에 실려있던 철근이 머리를 관통해 이미 죽은 상태였다. 어디로, 몇 개가 관통했는지는 이미 죽었기때문에 중요하지 않았다. 상체는 철근에 꿰찔리고 하체는 트럭이 우그러지면서 그 사이에 끼어서, 사고를 수습하는 것 조차 힘들어보였다.

“이거… 영상을 보긴 봐야되는데, 라우드가 보면 토할 것 같은데… ”
“100% 토할겁니다… ”
“이게 어떻게… 미기야씨! ”
“마 형사님! ”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
“저도 모르겠습니다.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가다가 보니 이미 사고가 일어나서… ”

K시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흰 트럭 하나가 처참하게 찌그러지고 운전자가 처참하게 죽는 사고를 끝으로, 더 이상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세베루스의 연락을 받아보니, 소재 불명이었던 뺑소니 사고 사망자가 명계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파이로가 돌아가는 길에 봤던 사고 현장을 얘기하자, 세베루스는 그 사람도 지금 명계에 왔고, 막 재판을 마쳤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뺑소니… 정확히는 음주 뺑소니죠. 혈중 알콜 농도… 그런건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겉으로 보기에도 꽤나 취해보였나봐요. K시로 가는 길에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가, 사고가 나서 서 있는 차를 미처 보지 못 하고 여자를 치었어요. 그리고 여자를 친 것도 알고 있었지만, 음주운전을 했다는 게 걸리게 되면 생계가 위험해지니까 도망친거예요. ”
“그럼 사고는… 설마, 피해자가 죽인건가요? ”
“피해자가 죽였다… 네, 반은 그렇게 보셔도 되겠네요. ”
“반은…? ”
“파이로씨, 음주운전만큼이나 위험한 게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
“졸음운전이요. ”
“사실 졸음운전 말고도, 숙취운전이라는 게 있어요. ”
“숙취운전이요? ”
“네. 술을 마시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 이제 술이 깼다 생각해서 운전대를 잡는거죠. 인간들은 거기서 술이 다 깼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술이 깨지 않았기때문에 음주운전과 마찬가지로 위험해요. ”

다음 순간, 세베루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숙취 운전으로 그 근처를 지나다가, 피해자의 원혼을 만나서 죽게 된 거예요. 원혼을 보자마자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늦어버린거죠. 하필이면 새벽에 비가 와서 도로가 젖어버리는 바람에, 도로가 미끄러웠으니까요. ”
“……! ”
“아마 이 정도로 악재에 악재가 겹쳐서 죽는 건 드물겁니다. 피해자의 원한이 만들어낸 악재의 연속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