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II-3. 긴급탈출

아침부터 아웃사이더가 고키부리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사무실에는 파이로와 도희가 있었다. 두 사람은 초등학생 정도는 되어보이는 남자아이 하나를 데리고 아웃사이더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했다.

“의뢰라는 게 이 쪽이야? 우리는 미성년자의 의뢰는 받지 않고 있는데… ”
“그건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너도 사연을 들으면 그 규칙을 예외로 하게 될 거다. ”
“예외? 그보다 이 사람은 뭐야? 아니, 자세히 보니 사람이 아니잖아… ”
“이 분은 아래층 괴담수사대에서 일하는 파이로씨예요. 탐 반델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긴 하지만, 저희도 믿을만한 분이기때문에 알려드린겁니다. ”
“괴담수사대라… 종종 활약하는 걸 듣긴 했지. 뭐, 그건 됐어. 도희씨가 우리에 대해 얘기했다는 건, 이쪽도 믿을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거니까. ”

아웃사이더는 세 사람이 앉아있는 소파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그래서, 우리 쪽에서 미성년자의 의뢰는 받지 않는다는 걸 앎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전화를 한 데다가 괴담수사대까지 여기에 있을만한 사연이 뭔지 좀 들어봤으면 하는데. ”
“이 아이, 학대당하고 있어. ”
“학대? ”

기껏해야 초등학교 고학년은 됐을거라 생각했던 남자아이는 올해로 중학교 3학년이었다. 온 몸에 상처가 가득했던 것은 부모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얻어맞았기 때문이었고, 팔과 다리에는 담뱃불로 지진 듯한 상처도 있었다.

“언제부터 이랬어? ”
“여섯살부터요… 그때는 밥을 굶기거나 오랫동안 벌을 세우는 정도였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로는 때리기도 하고…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담뱃불로 지지기도 했어요… ”
“형제는 있니? ”
“밑으로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할머니가 데려가셨어요. ”
“그럼 그 집에서 탈출시킬 건 너뿐인가… 뭐, 그런건 됐어. 자세한 건 팀 아지트에 가서 얘기를 좀 더 해봐야겠지만… 괴담수사대 대원도 같이 있었던 건 아이 신변때문에 그런거야? ”
“그게… ”
“그 부모들이 꼬투리 잡고 때리는 걸 내가 달려들어서 막았거든. 순사놈들이 독립운동가 고문할때도 그렇게 매질은 안 했을거다. ”
“…… ”

아웃사이더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지만, 금세 어딘가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통화를 마친 아웃사이더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일단 우리 쪽에서는 의뢰를 받아주기로 했어. 미성년자는 의뢰를 받아주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이 녀석은 위급한 상황이라 예외로 하려고. 너도 그 집에서 도망치고 싶을테지만, 우리 팀의 의뢰 수락을 위한 의례니까 그래도 물어는 볼게. 우리 팀의 서비스는 확실하니까, 뒤탈 없이 네 신분을 완벽하게 바꿔줄 수 있어. 대신 우리 팀의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지워질거고, 네 친구나 가족들도 더 이상 만나지 못할거야. 그럼에도 정말 우리 팀의 서비스를 이용할거야? ”
“네… 그 지옥같은 집에서 나가고 싶어요. 여동생과 못 만나는 건 싫지만… 그래도, 살아있다면 어떻게든 만날거라 생각해요. ”
“좋아. 그럼 가자. ”

아웃사이더가 아이를 데리고 아지트로 가자, 연락을 받고 있었던 메모리가 둘을 맞았다.

“어서 와. ”
“꽤 오랫동안 학대당해서 몰골이 말이 아냐. 일단 의뢰를 진행하기 전에 몸집부터 좀 키워둬야겠어. 일제강점기 순사들이 독립운동가를 고문할때도 그 지경으로 때리지는 않았을거라던데. ”
“음… 그러네. 그래도 며칠 잘 먹고 잘 쉬면 금방 몸은 괜찮아질거야. 너, 우리 팀은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미성년자가 우리 팀에 대해 알고 있을 리는 없을텐데… ”
“저를 부모님으로부터 구해주셨던 분이, 예전에 들었던 적 있다면서… ”
“그쪽에서도 우리 팀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고, 도희도 우리가 원칙상 미성년자는 받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위급한 상황이라 연락했던거야. ”
“그런가… 뭐, 도희씨가 얘기했을 정도면 그래도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뜻이겠지… 일단 며칠동안 먹으면서 얘기해보자. 우리도 미성년자 의뢰는 처음이니까. ”

며칠동안 아지트에서 지내면서, 모델러는 아이가 충분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도록 매 끼니마다 도시락이며 햄버거며, 각종 음식들을 먹였다. 그리고 어느정도 몸이 회복될 동안, 제로는 아이의 신변을 어떻게 정리할 지에 대해 아웃사이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이면 곧 고등학교 진학하지 않아? 그러면 사고라도 치지 않는 이상 전학도 안될거고… ”
“그렇겠지… 졸업까지는 마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시점에서 신변을 싹 정리하는 게 좋긴 해.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이 아이를 집으로 또 보내야 하니… ”
“이래저래 난감하군… 아직 어려서 정리할 건 없어서 편하지만, 이게 문제라니까… 그런데 그 날은 왜 맞고 있었대? ”
“본인은 취업을 하려고 마이스터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부모님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걸 원했나봐. ”
“아, 그럼 됐어.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다. 식사 끝나고 잠깐 나한테 오라고 해. ”

아이가 식사를 마치자, 제로는 아이를 불렀다.

“너, 마이스터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지? 어느 쪽으로 지망하고 있어? ”
“전기과에 진학하고 싶어요. 그 집에서 하루라도 빨리 나가려면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
“그렇군… 원서를 쓴 거야? ”
“원서는 아직 못 썼어요. 아직 결정 단계라… 그것때문에 담임 선생님이 부모님한테 전화하셨어요. 인문계에 가도 될 성적인데 굳이 마이스터고에 진학하려고 한다고… ”
“그래서 복날 개 맞듯이 맞다가 우리 팀에 오게 된 거구만… 일단, 그냥 빨리 취업하고 싶어서 마이스터고에 진학하는거라면 굳이 그렇게 안 해도 돼. 여기서 신변을 정리하게 되면 어느 학교로 진학하더라도 네 부모님은 너를 찾을 수 없거든. 그거랑 상관 없이 마이스터고에 진학하고 싶은 거라면, 그것도 그거대로 상관 없고. 네 부모님을 만날까봐 불안한거면, 아예 다른 지역에 있는 마이스터고로 보내줄 수도 있거든. ”
“실은… 처음에는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혼자 이것저것 알아보면서 공부하다보니까 그쪽에 흥미가 생겼어요. 그래서 마이스터고에 진학해서 더 배우고 싶었고요. ”
“좋아, 그럼 됐어. 기말고사는 언제 끝나? ”
“다음주에 끝나요. ”
“다음주라… 알겠어. ”

아이가 기말고사를 볼 동안, 아웃사이더는 태형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원서를 쓸 수 있게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도희를 통해 어느정도 들어서 알고 있었던 태형은 흔쾌히 이를 승낙했고, 아이의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면담을 마쳤다.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담임 선생님도 아이가 그쪽에 흥미가 있어서 더 배우고 싶어한다는 얘기와 나중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신이 일하는 사업체를 물려줄거라는 얘기를 듣고는 원서를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태형은, 아이의 부모님이 지금 일때문에 바빠서 연락이 잘 안 될거라고 자신에게 부탁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기말고사를 마친 아이가 겨울 방학을 나고 졸업식을 맞은 당일, 혹시 아이의 부모가 찾아올지도 몰라 졸업식 당일은 태형이 동행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의 부모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고 아이는 무사히 졸업식을 마쳤다. 그리고 동시에, 제로는 아이의 신변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마이스터고에 진학한다는 것과, 전기에 흥미가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학대받았던 기억 역시 없어졌다.

새로운 신분을 받은 아이는 태형과 함께 팀 반델의 아지트를 나가, 잠깐이지만 함께 지낼 보호자를 찾았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전기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실습도 착실히 진행해 실력을 쌓아나갔다. 3학년을 마칠 무렵에는 아이의 실력을 눈여겨 본 회사에서, 졸업하면 바로 취업할 수 없겠느냐는 제의도 받았다. 조건도 꽤 괜찮았던데다가 숙식도 제공되는 회사여서, 주변 사람들도 모두 아이를 축하해주었다. 신변을 바꾸기 전에 여동생이었던 아이는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아이를 돌봐주던 사람들이 정식으로 입양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전에 그 아이, 동생하고는 다시 만났나보더라. ”
“만날 사람이면 어떻게든 만나게 되는 법이니까. 그래서, 아이를 학대했던 부모는 어떻게 됐어? ”
“천 마리의 새끼를 품은 검은 산양이 진노했다, 이거면 되겠지? ”
“천 마리의 새끼를 품은 검은 산양이라… 그 분이 진노했다면 안 봐도 비디오겠지. 그래서 그렇게 기분이 좋았던거로군? ”
“지금까지 이 팀에서 봐왔던 결말 중에서, 가히 최고의 결말이라고 해 두지. ”

천 마리의 새끼를 품은 검은 산양은, 자신이 품고 낳은 아이를 학대한 부모를 용서할 수 없었다. 이는 모든 생명의 어머니로서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두 사람에게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정도의 형벌을 내렸다.

“왜, 인간 돼지라고 알아? 중국의 여태후가 했다는. ”
“들어봤어.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 ”
“두 사람이 그렇게 됐다니까? ”
“……! ”

과오를 저지른 사람 역시 천 마리의 새끼를 품은 검은 산양에게는 자식이었다. 그렇기때문에 보통은 저주를 내리거나 자신의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정도로 끝나지만, 이번 사건은 그렇지 않았다. 그것은, 천 마리의 새끼를 품은 검은 산양이 그 둘을 더 이상 자식으로 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패트롤은 이를 ‘모든 생명의 어머니가 호적에서 파버렸다’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