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V. 뱀공주 이야기, 그 후…

어느 날, 미기야에게 한 통의 메일이 왔다. 그것은 ‘요키히메’라는 아이디로 온 메일이었다.

‘저는 요키히메입니다. 일본에서 살고 있지요. 일전에 쟈카이 마을의 일을 해결해줬다는 얘기를 듣고 이렇게 메일을 보내게 됐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쟈카이 마을은 물론 그 일대가 뱀공주에 의해 황폐화됐습니다. 농작물은 하루하루 말라가며, 강물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이고, 사람들은 굶어죽고 있습니다. 괴담수사대에서 왔다 간 이후로 그렇게 됐다고 하는데, 한번 더 들러주셔서 뱀공주를 진정시켜주세요. 부디 부탁드립니다.

일본에 도착할 예정인 시간을 알려주시면, 공항으로 가겠습니다.

-요키히메’

“마을이… 황폐화됐다고? 뱀공주는 원래 토지신 아니었어? ”
“뭐냐? ”
“아, 파이로 씨. 의뢰 메일이 왔는데요… ”

파이로도 요키히메가 보낸 메일을 읽었다.

“그러고보니 뱀공주는 토지신이라고 하지 않았어? 거기서 무슨 마츠린가 뭔가 한다고… 아, 그러고 보니 그 때…… 실종된 사람, 인신공양하려다 실패하지 않았어? ”
“아, 그러고보니… ”

미기야는 사토나카 가의 일을 떠올렸다. 처음 유카리에게서 오빠인 유메지를 찾아달라는 말을 듣고 쟈카이 마을로 향했을 때만 해도, 히메마츠리에 찾아온 외부인은 극진히 대접한다는 걸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실상은, 마츠리 기간에 외부인을 바친다. 그것도 짐승의 옷을 입혀서.

“그러고보니 유카리 씨가 의뢰를 했었죠. 유메지 씨가 쟈카이 마을로 갔다가 실종됐다고…… ”
“그 떄 우리가 안 갔으면 죽을 뻔 했지. …근데 그 녀석이 또 날뛰는건가? 토지신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날뛸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
“원래 토지신을 모시는 이유는, 토지신이 그 지역의 땅을 돌보지 않으면 지력도 상하고, 작물 수확도 안 돼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일테니까요. ”
“그런가… 그럼 또 일본으로 가야 돼? ”
“네. 이번에는 넉넉한 캐리어로 준비했어요. ”
“이럴 땐 나도 여권 하나 갖고 싶다…… ”

미기야와 파이로가 일본에서 필요한 짐을 꾸리고 있을 때, 쿠로키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키츠네~ 어라, 두 분 어디 가세요? ”
“일본에서 의뢰가 들어와서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
“키츠네 찾아 왔죠. ”
“아, 키츠네 씨는 잠깐 뭐 좀 사러 나가셨어요. ”
“그렇군요~ 그런데 일본에는 왜 가는거예요? ”
“토지신이 미쳐 날뛰고 있댄다… ”
“토지신…? 토지신이라… 혹시 마을에 뭐 문제 있어요? ”
“네. 마을이 황폐화돼고 난리도 아니라고, 한번 와 달라고 하네요… ”
“나 왔다! 어라, 누나? ”

여행용 칫솔을 사러 갔던 키츠네가 돌아왔다.

“키츠네, 너도 일본에 가니? ”
“응. 누나도 갈려? ”
“난 여기 수사대원도 아닌데 뭐하러.. ”
“한명이라도 더 가면 좋지. 그리고 거기 토지신이 뭐랬더라… 아, 뱀. 뱀이었던가… ”
“뱀공주. ”
“맞다, 뱀공주… 그래서 나도 이번에 같이 가는거거든. ”
“뱀을 토지신으로 모시는 곳이 있다니, 신기하네요.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
“환영일세. ”
‘뭐… 현이 못 간다고 해서 티켓은 남았다만…… ‘

파이로와 쿠로키는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서로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정상 갈 수 없는 현과 라우드는 일행이 돌아올 동안 사무실을 보기로 했다.

“그럼, 무사히 다녀오세요. ”
“뭐, 설마 두 번 죽기야 하겠냐. ”
“그… 그야 그렇지만…… ”
“갔다와라. ”
“네, 그럼 잘 부탁합니다. ”

두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일행은 공항으로 갔다.

“일본 가는 건 좋은데, 또 그 마을이라니… 영 찝찝하네. ”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

또 거기라니, 우리는 왜 가도 이런 데만 가냐. 파이로와 애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또…라뇨? 거기 전에 한 번 갔었어요? ”
“아아… 실종된 오빠를 찾아달라는 의뢰가 있었거든. 그래서 쟈카이 마을에 갔다가, 토지신에게 인신공양될 뻔한 거 살려갖고 데려왔지. ”
“세상에나… 토지신에게 인신공양이라니, 그거 최악인데요…? 토지신들은 같은 흙으로 빚어진 인간은 먹지 않는다고 하는데… ”
“물론 바칠 때는 짐승의 옷을 입혀서 인간인 줄 몰랐겠지. ”
“으음…… ”

같은 흙으로 빚어진 인간은 먹지 않는 것이 토지신의 법칙이다. 그 법칙을 어기고 인신 공양을 하게 되면 재앙을 내릴 뿐 아니라, 토지신은 그 땅을 떠나게 된다. 이번에 마을이 황폐화 된 것도 그 탓일까…?

잠시 후, 비행기가 일본에 도착했다. 그리고 공항 밖으로 나오자, 검고 긴 머리에 하늘빛 기모노를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회색 뱀을 온 몸에 휘감고 있었다.

“저기… 혹시 요키히메님 맞으신가요……? ”
“아, 네. 제가 요키히메예요. ”
“괴담수사대입니다. 메일 받고 찾아왔습니다. ”
“아아, 고맙습니다.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부터 들어 주세요. ”
“네. ”

그녀는 일행을 근처 식당으로 데려왔다.

“뱀이 참 크네요. ”
“이 뱀은 제 분신이니까요. 요키히메라는 이름은 제 가명이예요. 저는 사실 키요히메랍니다. ”
“으엑? 콜록- 키요히메라면 그… 안친을 종쨰 태워죽였다는…? ”

요키히메의 본명을 들은 파이로는 하마터면 물을 풋, 뿜을 뻔 했다.

“그야… 저를 배신했으니까요. 만나기로 철썩같이 약속해놓곤… 그보다, 쟈카이 마을에 요전에 방문하셨던 적 있었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었나요? ”
“여동생의 의뢰였어요. 실종된 오빠를 찾아달라는… 그래서 그 마을로 갔는데, 토지신에게 그 사람을 바치려고 하더라고요. 그 마을의 토지신이 뱀공주였죠… ”
“인신공양이라… 무릇 토지신은 같은 흙으로 빚어진 인간을 입에 대서는 안되거늘…… ”
“그래서 짐승의 옷을 입히고 죽여서 바쳤다고 하던데. 뭐, 어느 쪽이 됐건 사실을 안 이상 가만히 있지는 않았겠지… ”
“역시, 그렇게 된 거였군요. ”

마침 주문한 덮밥이 나왔다. 각자 수저를 나눠갖고 갓 나온 따끈따끈한 덮밥을 먹었다,

“그런데 마을이 황폐화됐다는 건…? ”
“말 그대로예요. 쟈카이 마을은 물론 그 일대의 마을까지, 뱀공주를 달래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황폐화 돼고 있어요. 작물이 자라지 못 할 정도로 지력을 소모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일대의 호수나 강물이 말라버렸죠. 그리고 인간들도 굶어죽고 있어요. ”
“으음… 역시 한번 가 보는 게 좋겠어요. ”
“그러고보니 소개해 줄 사람이 있었지요… 아, 여기예요. ”

키요히메에게 인사를 건네고, 누군가가 자리에 앉았다. 은빛 머리에 등에는 거대한 호리병을 메고 있었다.

“이쪽은 아마노테예요. 뱀공주의 신사를 모시다가 오래 전 신사를 떠났었죠. 그래도 뱀공주를 모시던 분이니 누구보다도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을거예요. ”
“아마노테입니다. 반갑습니다. ”
“유키나미 미기야입니다. 이쪽은 파이로고요. ”
“난 키츠네야. 이쪽은 우리 누나 쿠로키. ”
“난 야나기. ”
“그나저나 쟈카이 마을이 황폐화되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
“그 곳 인간들이 뱀공주를 달래려고, 인신공양을 했었대. ”
“그런…… ”
“아마도 뱀공주는 마을을 떠났거나, 아니면 분노한 상태로 그 땅에 머무르고 있는 게 분명해요. 일단 마을로 가 봐요. ”
“네. ”

덮밥을 다 먹은 일행은 키요히메의 배웅을 받고 쟈카이 마을로 향했다. 안그레도 황폐해진 탓인지, 마을로 가는 입구가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여기 랜턴 없으면 못 가겠는데… ”
“핸드폰에 손전등 기능 있잖아. ”
“배터리가 없어요. ”
“으음… 그럼 여우불이라도 밝혀드릴까요? ”
“혼불이요? ”
“네. 저는 구미호기때문에 여우불을 쓸 수 있거든요. ”
“닿으면 위험할 것 같은데… ”
“그렇긴 하지만, 지금은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
“잠시만요~ ”

쿠로키의 치마 속 꼬리가 순식간에 아홉개가 되는가 싶더니, 꼬리 끝에 검은 불길이 일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불길을 등에 담아 아마노테에게 건넸다.

“이 녀석, 구미호였구만? 거기다가 까만 여우불이라니… 보통내기는 아니네. ”

아마노테가 등불을 받아들자, 말소리가 들렸다.

“??”
“방금 무슨 소리가… ”
“아, 실례했습니다. 등에 있는 호리병이 말 한거예요. ”
“호리병이요? ”
“이 호리병은 평범한 호리병이 아닌 요괴입니다. 신력을 가지고 있죠. 그렇기때문에 요괴나 귀신같은 존재를 알아본답니다. ”
“그렇군요. ”

버석버석, 마른 가지와 나뭇잎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길을 따라 가 보니, 쟈카이 마을로 가는 이정표가 나왔다.

아마노테는 먼저, 자신이 관리하고 있던 신사로 향했다. 이전의 쟈카이 마을이 있던 곳에 세워졌다는 뱀공주의 신사였다. 하지만 그녀가 떠난 이후로는 어느 누구도 손을 댄 흔적이 없었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았단말인가… 분명 신신당부 했을텐데…… ”
“으엑… 이 머리들…… 미처 처리도 못 한 모양이군… ”

여전히 땅바닥에는 두개골이 나뒹굴고 있었다. 지금까지 인신공양에 희생된 사람들의 머리였다. 파이로는 나뒹굴고 있는 두개골에게 조용히 목례를 건네곤 신사를 둘러봤다.

분명 토지신의 신사일텐데, 히메마츠리 이외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모양인지 꽤 더럽고 낡아 있었다. 문간에 붙여 둔 부적 역시 낡아서 무슨 글자가 쓰여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관리 안 한 모양이네. ”
“그러게요… ”
“이런 주제에 공양만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

신사를 둘러보던 쿠로키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것은 분명 인간의 그림자였지만, 다리는 인간이 아닌 뱀의 그것이었다.

‘저게 설마 뱀공주인가? ‘

그림자의 뒤를 좇아 살금살금 가 보니, 하반신이 검은 뱀의 몸통인 여자가 있었다. 머리는 틀어올려 묶은 상태였다. 공양물로 들어 온 모양인지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이 있었지만 그녀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네. 공양물도 거들떠 보지 않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