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III-1. 악마와의 거래

“여기는 미성년자 출입 금지야. ”

이 곳은 후미진 골목 한켠에 있는 작은 바 ‘엘 푸르가토’였다. 막 바를 열고 장사를 준비하던 마스터는,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이 바 입구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남학생은 바를 열고 장사를 준비하려던 마스터를 보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저, 이걸 받았는데… ”

남학생이 내민 것은 티켓이었다. 학생은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를 도와줬더니 여기로 가면 고민을 해결해 줄 거라면서, 티켓을 주었다고 했다. 마스터는 학생이 내민 티켓을 보고 입구를 대충 정리한 다음 학생을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뭐, 어쩔 수 없나… 안으로 들어와. ”

학생은 한 눈에 보기에도 술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인상이었다. 오히려 반에서 1~2등을 다툴 정도로 성적이 좋아보였다. 마스터는 남학생을 바 한쪽에 ‘카운셀링용’이라고 적힌 팻말이 붙은 의자에 앉게 했다.

“여기서 하나 골라. ”
“으음… ”

한참 고민하던 남학생은 블루 하와이를 골랐다. 바텐더는 칵테일 잔을 닦더니 익숙한 솜씨로 칵테일을 만들고, 그 위에 가니쉬를 올린 다음 잔을 코스터 위에 얹었다. 그리고 잔에 빨대를 꽂은 다음 코스터를 남학생 쪽으로 살짝 밀었다.

“너는 미성년자라서 논 알콜로 만들었어. ”
“잘 먹겠습니다. ”
“그래, 그 티켓을 받았다는 건 뭔가 고민거리를 안고 있다는 얘기겠지? 무슨 고민이 있어서 여기까지 찾아온거니? ”
“저…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은데, 재능도 없는 것 같고… 잘 모르겠어요. ”
“프로게이머… 프로게이머라… 목표는 있고? ”
“정상에서 페이커와 겨뤄보고 싶어요. ”
“페이커라… 들어본 적 있지. 연봉으로 건물 한 채는 너끈하겠던데. 그럼 가족들은 뭐라고 하는데? ”
“가족들은 그런 직업을 가질 바에는 공무원을 하라고 하세요. 중학교 졸업하기 전에 그랜드마스터를 찍지 못하면 포기하라면서… 그래서 열심히 해봤는데, 저는 다이아까지가 한계였어요. 팀원들을 잘못 만난건지, 제가 능력이 부족한건지… ”
“진로에 관한 갈등은 그 나이대에 흔히 있는 일이지. 그래서… 너는 만약 그쪽으로 재능이 없다면 깨끗이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니? ”
“슬프지만 그래야겠죠… ”
“각오가 되어 있다라… ”

마스터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뭔가랑 바꿔서 그 재능을 가질 수 있다면 뭐든 내줄 수 있는 각오도 되어 있니? ”
“뭐든지요? ”
“응. 그건 네가 아끼는 물건이 될 수도 있고, 네 소중한 사람이 될 수도 있어. 하지만 뭘 지불해야 할 지 네가 정할 수는 없고, 언제 지불할 지 역시 네가 정할 수 없어. 너는 그저 통보받는 입장이 될 거야. ”

무언가와 바꿔서 재능을 얻는다, 대신에 그 무언가가 뭐가 될 지는 모른다. 남학생은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프로게이머가 돼서 페이커와 만날 수 있다면, 동등한 실력으로 겨뤄볼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게 본인에게 있어서 사소한 것이라면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 대가가 만약 미래의 여자친구라면, 평생 떵떵거리면서 독신으로 살면 그만이니까.

“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어요. ”
“음… 좋아. 각오가 되어 있구나. 그럼 너에게 이걸 줄게. ”

마스터는 카운터를 잠시 뒤적이더니, 키보드 하나를 건넸다. 인터넷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꽤 비싸보이는 게이밍 키보드였다.

“너에게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의가 있고, 재능이 있다면 너는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너에게 정말로 재능이 없다면, 너도 모르는 사이 무언가를 지불하게 될 거야. ”

키보드를 들고 돌아온 남학생은 평소처럼 숙제를 마치고 마스터에게서 받은 키보드 포장을 뜯었다. 키보드를 컴퓨터에 연결하고 전원을 켜자, 형형색색의 LED가 화려하게 켜졌다. 그 키보드를 연결하고 게임을 켜자, 평소와 달리 게임이 술술 풀리는 느낌이었다. 누구와 팀을 맺건, 승급전에서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었던지라 남학생은 그랜드마스터를 달성했다.

“엄마! 이거 봐, 그랜드마스터야! ”
“……! ”
“봤지? 이제 인정하겠지? ”
“이걸 대체 어떻게… ”
“어쩔 수 없지… 그래, 인정하마. ”

그랜드마스터를 달성하자마자 남학생은 자신의 꿈을 부정했던 부모님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던 프로게이머로서의 재능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재능을 인정받아 프로팀에 입단한 그는 마스터에게서 받은 키보드와 함께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갔다.

그의 팀을 결승전까지 이끌어간 그는, 이윽고 페이커와 결승전에서 만날 수 있었다. 결승전을 치르면서 이따금 마스터가 말한 ‘지불’에 대한 걱정도 들었지만, 곧 페이커와 결승에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은 파도에 모래성이 스러지듯 사라졌다.

‘드디어 페이커와 결승전에서 만났어! ‘

그토록 바랐던 결승전에서, 그는 페이커를 만났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는 속으로 매우 기뻐했다. 페이커는 그가 늘 영상으로 봐왔던 화려한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그 역시 화려한 플레이로 화답했다. 그의 팀은 비록 졌지만, 그는 페이커와 결승전에서 만났다는 꿈을 이루었다. 그리고 경기를 마친 후에는 늘 사용하던 키보드에 페이커의 사인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네? 암이요? ”
“다행히도 초기라서 갑상선을 절제하면 살 수 있습니다. ”

그는 갑상선암에 걸려서 선수 생활을 쉬게 되었다. 다행히도 암은 초기라서 치료를 마치면 살 수 있었지만, 치료를 할 동안은 안정을 취해야 했기 때문에 그는 병상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다른 팀원들이나 감독님도 이따금 병문안을 와 주었다.

“몸은 좀 어때? ”
“다행히도 초기라, 항암치료 마치면 괜찮아질거래. ”
“다행이네. 얼른 나아서 봤으면 좋겠다. ”
“스폰서 업체에서 좋은 컴퓨터 해 줬는데, 네 것만 아직 개봉을 못 했어. 얼른 나아서 개봉식 하자. ”
“응. ”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금방 털고 일어설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의 우상이었던 페이커 역시 그의 쾌유를 빈다며 응원의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의 상태는 예상과 달리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분명 갑상선암은 초기였고, 갑상선을 절제하면 살 수 있을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수술을 택하지 않고 항암치료를 택했다. 아직 초기이기도 하고, 갑상선을 절제했다가 휴우증이 남으면 선수 생활을 못 하게 될까봐서였다. 그런데 그것이 악수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루하루 항암치료를 받으며 병상에 누워있던 그의 머리맡에, 정장을 입은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자신을 ‘로즈마리’라고 소개하면서, 데리러 왔다는 말을 했다.

“저를… 데리러 오셨다고요? 저는 항암치료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는데… ”
“아, 유감이지만 그 항암치료라는 거 더 해봐야 의미가 없거든… 퍼질대로 퍼져서. 대체 어쩌자고 악마와 거래를 한 거야? ”
“거래…? ”
“엘 푸르가토. 기억 안 나? 거기서 진로 상담 받았었지? ”
“……! ”

그는 그제서야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지불한 대가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너는 그래도 양반이야. 적어도 수명을 지불하는 걸로 꿈은 이뤘으니까. 다른 걸로 받아갔더라면 온전히 살지도 못했을테고… ”
“…… ”
“지금 바로 데려가는 건 아니야. 며칠 말미는 줄 테니까, 유서 정도는 남겨두라고. ”

로즈마리는 유서 정도는 남겨두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