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미혜 어디 나갔어? ”
“아까 친구들이랑 여행 간다고 나갔는데, 무슨 일이야? ”
“하아… 어디로 간대? ”
“멀리 나간다고만 하던데… 한 2박 3일 간다고 하더라. ”
“아… ”
“그런데 미혜는 왜? ”
“얘가 내 옷을 입고 나갔어. 왜, 저번에 샀던 그 까만 가디건 있잖아. ”
“걔도 참, 아무리 그래도 오빠 옷을 입고 나간다니… ”
그리고 그의 동생은, 사흘 후에 돌아왔다.
문제는, 돌아오긴 했지만 갑자기 이상해졌다는 것이었다. 방에 들어가도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아무와도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가 돌아오게 된 경위도, 경찰이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을 발견해서였다. 경찰이 말하기로는, 발견 당시부터 쭉 이 상태였다고만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친구들 중 한 명은 이미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고.
무슨 영문인지 몰라 물어봐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영문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 지도 모를 정도로, 피폐해져 버린 것 같았다. 피투성이인 옷과 얼굴을 그대로 입은 채 며칠이 지났다.
“어디로 갔는 지는 모르시는군요… 돌아왔을 때는 의사소통도 불가능할 정도로 미쳐버렸고요.. ”
“제 동생 뿐 아니라 다른 친구도 그런 모양이예요. 다른 한 명은 죽어서 돌아왔고요… 한밤중이 되면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가끔 방에서 울음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그게 전부예요. 살아 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닌 거죠… ”
“흠… 일단 어디를 갔는 지부터 알아봐야 할 텐데, 큰일이네요… ”
“동생 전화기는 있지? 핸드폰같은 건 있을 거 아냐. 컴퓨터라던가… ”
“핸드폰이야 있죠. 컴퓨터는 제 걸 같이 쓰고는 있지만, 요즘은 잘 쓰질 않아서… ”
“좋아. 그럼 일단 동생이 어디로 갔는 지 알아봐야 하니까, 오후에 핸드폰 갖고 다시 와. 다른 사람의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건 안 되지만,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어. ”
“하지만 전화기가 잠겨있을텐데요… ”
“전화기에는 손을 대지 않을 거니까 그건 염려 말고. 아, 그리고 이거 이 녀석 연락처니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
파이로는 남자에게 명함을 건넸다.
“그나저나 세 명이 갔다가 하나가 죽고 둘이 미쳐버렸을 정도면, 그 다음 희생자는 나머지 두 명이 될 수도 있어. 그 정도로 저주받은 구역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그 쪽으로 한 번 알아보도록 하지. ”
“그런 구역으로 일부러 갔을 리가 없잖아요. 이제 갓 고등학교 졸업한 친구들인데… ”
“폐가 매니아라던가…? 우리 처음 의뢰 들어왔던 녀석처럼 말이지. ”
“…… ”
오후, 남자가 동생의 핸드폰을 들고 다시 사무실로 오자 파이로는 애시를 불렀다. 그녀는 미기야의 핸드폰에서 튀어나왔다.
“!!”
“으음, 처음 보는 핸드폰이네? 이 쪽이 의뢰자인거지? ”
“네. 여동생이 어딘가에 다녀온 후로 미쳐버렸다고 하네요… 거기다가 같이 갔던 사람들 중 한 명은 이미 사망한 상태고…… ”
“그런가… 알겠어. ”
핸드폰 속으로 들어간 애시는 한참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 한참 후에야 다시 밖으로 나온 그녀는, 무라사키를 호출하고 파이로에게 어떤 주소가 적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여긴 어디야? ”
“그 아이들이 향했던 곳. …어서 무라사키부터 불러, 안 그러면 그 애는 둘째치고 너나 네 부모도 같이 죽을 수 있어. 물론 그 아이의 친구도 마찬가지지만… ”
“죽…는다뇨? 그게 무슨… ”
“일단 너는 집에 돌아가면 문 앞에 소금을 산 모양으로 쌓아 두도록 해. 그리고 우리 쪽에서 갈 때까지 누구도 밖으로 나가선 안 돼. 문 밖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녀석이 그 아이가 있는 곳을 알아챌 거야. 파이로, 너는 어서 그 집에 대해서 알아봐. 그 아이들은 거기서 경찰에게 발견돼서 집으로 돌아오게 된 거야. ”
평소와 달리 애시는 매우 다급한 목소리로 두 사람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남자를 집으로 돌려보낸 후, 미기야는 애시의 말대로 서둘러 무라사키를 불렀다. 마침 근처에 있었던 그녀는 사무실로 바로 도착해 주었다.
“오랜만이네요~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
“오, 금방 왔네. 너 혹시, 이 집에 대해 아는 거 있어? 인터넷에서 찾아는 봤는데, 그냥 접근 금지 구역이라고만 나오는데… 정보도 너무 적어. ”
무라사키는 액정 화면에 뜬 주소를 보고 얼굴이 사색이 됐다. 역시, 그녀는 뭔가 아는 눈치였다. 이 주소를 어떻게 아느냐는 그녀의 질문에, 파이로는 의뢰자가 찾아 왔었다는 것과 의뢰의 내용을 말했다. 그리고 애시가 무라사키를 부를 것을 지시했다는 것도 함께.
“근데 왜 그렇게 놀라? 이 집, 뭐 저주받았어? ”
“의뢰자와 동생은 괜찮은가요? 한 명이 죽어서 왔을 정도면 그 둘도 무사하진 못 할 거예요. ”
“애시가 집에 가자마자 소금 쌓아두고 밖에 나가지 말라고는 했대. ”
“음… 하지만 언제까지고 안 나갈 수는 없어요. 일단 그 집에 가서 조치부터 취하고, 이 집으로 같이 가도록 해요. 그나저나 이 집은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인데, 대체 어떻게 알고 간 거지…? ”
“…절대 가면 안 되는 건 다른 흉가도 마찬가지 아니냐? ”
“다른 폐가나 폐건물도 그렇지만, 여기는 살아있는 인간… 특히 여자나 어린아이는 가면 안 되는 곳이예요. 아예 발을 들이는 것 조차 금지죠… 그렇다고 해도 죽어서 오다니, 대체 거기서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무튼, 일단 가죠. ”
무라사키는 미기야와 데스 애더를 데리고 미혜의 집으로 갔다. 현관 앞에는 소금이 쌓여 있었다. 철문 너머로 비명 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고 있었다. 무라사키가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자, 안에서 중년의 남자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괴담수사대입니다. ”
“아, 민준이가 말씀한 사람들이군요. 죄송합니다, 지금 집안 꼴이 말이 아니라… 일단 들어오세요. ”
집 안으로 들어서자,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사무실에서 봤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피투성이 옷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칼을 가진 여자를 붙들고 있었다. 비명 소리의 주인은 그녀였다.
“이게 대체… ”
“아무래도 이 근처에 온 모양이예요. 빨리 어떻게든 해야겠어요. ”
무라사키는 미혜와 민준을 뗴어 놓고, 데스 애더에게 무언가를 건네도록 했다. 그것은 데스 애더의 거미줄에 구슬을 꿰어 만든 팔찌였다. 팔찌에 엮인 구슬은 평범하지만 알이 조금 큰, 붉은 루비였다.
“다른 분들도 이것을 차 주세요. 이걸 차고 있으면, 녀석이 접근하지 못 할 거예요. ”
무라사키가 다른 가족들에게 팔찌를 하나씩 건네 줄 동안, 데스 애더는 미혜를 진정시켰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기운이 빠졌는지, 그녀가 축 늘어져버렸다.
“이 분, 며칠째 아무것도 못 드셨나요? ”
“식사도 하지 않고 며칠째 저러고 있으니까요… 딸애가 걱정입니다. 대체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
“그렇군요… 곧 괜찮아질 거예요. 그 팔찌를 빼도 괜찮아지게 되면, 제가 민준씨를 통해서 연락을 하겠습니다. 그 떄까지는 이 팔찌를 절대 몸에서 떼 놓으시면 안 돼요. ”
“알겠습니다. ”
팔찌를 절대 떼어 놓지 말 것을 신신당부한 후, 셋은 사무실에 들러 파이로와 함께 예의 그 집으로 갔다. 꽤 낡은 초가집 같았는데, 사람 손이 탄 듯한 흔적은 아예 없었다. 초가집이 불편하긴 해도 일부러 그 곳에서 사는 사람도 있다지만, 이 집은 그래 보이지는 않았다.
“이 집은, 어느 누구도 접근해서는 안 되는 집이예요. 그리고 한 가지 더 금기 사항이 있는데… 이 집 안에 있는 물건에는 절대 손을 대면 안 돼요. 아마, 죽었다던 친구는 이 집 안에 있는 물건을 만졌을거예요. ”
“대체 이 집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 건가요? ”
“그러게. 게다가 인터넷에서 정보조차 찾을 수 없다니 말이야. ”
“정확히는, 이 집이 아니라 이 집 안에 있는 ‘물건’을 조심해야 하는 거예요. 손을 대면 안 되는 물건이라고 했지만, 그건 사실 퍼즐처럼 짜 맞춰진 오동나무 상자일 뿐… 겉으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물건이죠. 상자 안에는 은장도와 동백 기름, 그리고 참빗이 들어 있고요. 사실 겉으로만 보면 그게 전부예요. ”
“동백 기름은 뭐지… 머릿기름 아냐? 되게 오래 전부터 있었던 모양이군. ”
“맞아요. 그 물건의 주인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이 곳에 있었어요. 정확히 언제부터, 왜 있었는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상자와 상자 속 물건은 그녀의 것이라는 것… 그래서 그것에 함부로 손을 대면 죽는 거예요. 사실, 여자와 아이는 발을 들여서도 안 되는 곳이라고는 했지만 남자라고 해서 발을 들여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예요. 이 집과 이 집 안의 존재는 살아 있는 인간을 거부하기 때문이죠. ”
살아있는 것을 거부한다, 게다가 언제부터 있었는 지는 불명이다. 데스 애더는 뭔가 집히는 게 있는지, 집 주변에 거미줄을 둘렀다.
“저 상자, 코토리바코일지도 몰라. 적어도 그 비슷한 물건이겠지… ”
“코토리바코…? ”
“응. 그거, 주살 도구야. 짜맞춰진 상자에 암컷 짐승의 피를 가득 채운 다음, 그 피가 마르기 전에 아이를 죽여 그 아이의 검지 끝과 탯줄, 그리고 내장의 피를 조금 넣는 걸 말해. 아이를 몇 명 넣느냐에 따라 잇포우, 니포우…이렇게 해서 일곱 명 까지. …하지만 가족들까지 위험헤 처한다면 그건 핫카이일 수도 있어. …아이를 여덟 죽여서 넣은 거지… 어쩌면, 그 안의 박스도 그런 것일 지 몰라. ”
“하지만 어째서 그런 걸… ”
“아마도, 이 마을 전체에 원한이 있었던 모양이지… 그래도 일단 내가 줄은 쳤으니 됐어. 혹시라도 안에 있는 녀석이 공격할 기미를 보이면, 내가 어떻게든 해 줄게. ”
“코토리바코인가… 혹시 모르니 너희들은 여기 있어라. ”
“파이로 씨, 어쩌려고요? ”
“제아무리 주살 도구라지만 이미 한 번 죽은 몸을 또 죽이진 않겠지. ”
파이로는 그렇게 말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퀴퀴한 곰팡내가 감도는 가운데, 군데군데 흙벽이 드러난 벽이 보였다. 집은 그렇게 넓어 보이지는 않는, 아예 이 상자를 위해 지어진 집 같았다. 천정 쪽으로는 금줄이 거꾸로 쳐져 있었던 흔적이 보였지만, 금줄은 어쨰서인지 끊어진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이 안에, 그 상자가 있는 건가… ‘
집 안으로 들어서니 무라사키가 말했던 상자가 보였다. 오동나무로 만든 상자였다. 나무를 이어 맞춘 상자는, 틈새에 적갈색의 얼룩이 보였다.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어 이리저기 살펴보니, 이어 맞추긴 했지만 열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마치 조선 시대의 분갑처럼, 뚜껑을 밀자 상자가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은장도와 작은 항아리, 그리고 나무로 만든 참빗이었다. 참빗에는 동백꽃 장식이 달려 있었고, 은장도의 몸통과 항아리에는 동백꽃이 그려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은장도에는 동백꽃 모양의 장식까지 달려 있었다.
“동백 기름까지 있을 정도면 더럽게 오래 된 모양이군. ”
그리고 그녀는, 상자의 바닥 쪽에 있는 거울을 발견했다. 옻칠을 했는지 광이 반들반등한 거울의 뒷면에도 동백꽅이 그려져 있었다. 거울의 손잡이 쪽에는 옥과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식도 달려 있었다. 거울은 아무도 만지지 않았는지, 반질반질한 표면을 자랑하고 있었다.
“흐음… ”
거울을 들여다보자, 거울 안에 비친 그녀의 상이 천천히 바뀌었다. 그리고 거울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낯선 여자였다. 검고 긴 머리를 단정하게 빗은, 머리 한쪽에 동백꽃을 꽂은 까만 눈의 여자였다. 거울 속에서 튀어나온 그녀는 파이로를 보고 놀랐다.
“망자가 어째서 이런 대낮에 돌아다니는겁니까? ”
“망자도 망자 나름이지. 난 지상에 눌러앉은 몸이니까. ”
“…… 이 곳까지 오다니, 제법이군요. …아아, 망자니까 내가 건드릴 수가 없기 때문인게지? 그래, 나에겐 무슨 볼일이 있는 겁니까? ”
그녀는 거울을 받아들어 다시 상자에 넣었다. 아마도, 굉장히 아끼는 물건인 듯 했다.
“최근, 이 곳에 다녀갔던 세 명의 여학생 중 한 명은 죽고 두 명은 미쳤다. …그거, 니 짓이지? ”
“생각하신 대로입니다. 타인의 물건에는 함부로 손대는 것이 아니거늘, 어찌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 남의 물건을 만진단 말입니까. ”
“뭐, 확실히 그건 예의가 아니긴 하지. …꼭 오지 말라면 오는 무모한 놈들이 있어요… 그리고 해를 입는다고. 그나저나 네녀석은 어째서 이 곳에 눌러앉게 된 거냐? ”
“저는 백희라고 합니다. ”
자신을 백희라고 소개한 여자는 말을 이었다.
“제가 누구였는지…그것은 기억나지 않지요. 눈을 떴을 때 처음 봤던 것이, 이 상자 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상자 속에서 온종일 피비린내를 맡았지요. 그렇게 수십년을 지내왔습니다… ”
“…이 상자, 코토리바코 아니냐? ”
“그러합니다. 이 상자는 코토리바코라고 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일본에서 온 것은 아닙니다. 저는, 꽃다운 나이에 살해당해서 이 곳에 묻혀버린 셈이니…… ”
“살해당해? ”
“그러합니다. ”
“…… ”
“저에게는 위로 언니가 여섯 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 한다며 할머님께 숱한 구박을 받아오셨던 게지요… 저를 낳고 난 후로 어머님을 향한 구박은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쭉, 어머님이 핍박 받는 모습과 그런 어머님을 가만히 보기만 할 뿐인 아버님을 보면서 자라왔습니다… ”
남아선호사상. 그 남아선호사상이 문제였다. 아이가 생기길 바라며 부모님들은 노력했지만 아이가 들어 서지 않았다. 그러다가 들어선 것이 백희였다. 그리고 백희의 할머니가 점을 보러 갔을 때 점쟁이는 엄마 뱃속에서 자라고 있던 백희를 죽여 나무 상자 속을 그녀의 피로 채운 다음 공양을 해야 아들이 들어 선다는 점괘를 내놓았고, 안 그래도 여섯 번째로 태어날 손녀가 눈엣가시였던 할머니는 결국 백희를 죽였다.
“이 상자의 얼룩은 제 피입니다. 이 안의 거울이나 은장도, 빗, 동백 기름은 평소에 제가 쓰던 것들을 어머님께서 공양해 주신 것이고요… 그 뒤로 어머님은 기적적으로 아이를 가지셨지만, 또 딸을 낳았다며 할머님께서 구박을 하시더군요… ”
“그래서… 죽였어? ”
“…어머님을 구해드리고 싶었으니까요… ”
그녀는 죽어가면서 자신을 이렇게 만든 할머니와, 방관자였던 아버지를 원망했다. 다른 언니들도 그녀의 어머니도 불쌍했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벌레같이 보는 그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딸이 죽는데도 방관하는 그 사람은 치가 떨리게 싫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할머니와 아버지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어머님도, 언니도… 아마 제 몫을 살다가 죽었겠지요. 다음 생에는 절대, 구박받지 않고 사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빌어먹을 남아선호사상이란… 그럼 넌 그 뒤로 이 집을 계속 지키고 있었던 거냐? ”
“그런 셈이지요. 가족들이 살해당한 후로는, 아무도 이 집에 발을 들이지 않았으니… ”
“…그럼 이 얼룩이…… 피였단 말이야? ”
그제서야 그녀는, 들어오면서 봤던 검붉은 얼룩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
“저를 죽게 만든 사람, 그리고 이렇게 될 때까지 방관한 사람의 피입니다. 후훗… 지금쯤 무간지옥에서 고통받고 있겠지요. ”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어째선지 그 미소가 슬퍼 보였다.
“아차차, 나는 네녀석의 넋두리를 들어 주러 온 게 아니었지… 그 아이들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온 것 뿐이었는데. …여기에 발을 들인 녀석은 둘째치고 가족들까지 죽이다니, 그건 너무한 처사 아니냐? ”
“저는 그 아이들의 가족들에게 손을 댈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제 집에 발을 들인 자를 어떻게든 하고 싶었던 겁니다. …가만, 그 아이들의 가족들이 위험하단 말씀이신지요? ”
“응. 난 그래서 니가 가족들도 다 주살 하려는 줄 알았지. ”
“아니 될 말씀입니다. 그 아이들이라면 모를까, 가족들은 아무 잘못도 없지 않습니까. ”
“…그럼 대체 가족들을 노리는 건 누구지? ”
그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당신은 이 곳에 홀로 오셨습니까? ”
“밖에 일행이 또 있긴 하지. 여기는 산 자가 발을 들이면 안 된대서 밖에서 대기 타는 중이다. ”
“그렇습니까… 그러하다면,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신다면 그 아이들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드리겠습니다. ”
“뭔데? ”
“이 상자를 가지고 나가셔서, 집 앞 마당에서 태워 주십시오. ”
“…그럼 너도 죽잖아. ”
“저는 이 거울에 깃든 몸이라, 상자를 태우는 것 만으로는 죽지 않습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
“좋아. ”
밖에서 세 사람이 한참동안 기다리자, 파이로가 상자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는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흑요석보다 검은 눈으로 바깥에 서 있던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분이… 집 안에 계신…? ”
“응. 아, 너 라이터 있냐? 이 박스 좀 태워라. ”
“담배도 안 피는데 라이터를 들고 다닐 리가 없잖아요… ”
“어쩌지… 혼불로는 이승의 물건을 태울 수 없는데. ”
“당신의 불이 혼불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승의 불이 아닌 혼불로 이 상자를 태워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제 원한도 꺠끗하게 타 버릴 것 같습니다. ”
“그런 거였냐… ”
파이로가 상자에 혼불을 붙이자, 푸른색 불꽃이 옮겨붙었다. 불이 타오름과 동시에 상자의 이음매에 있던 갈색 얼룩이 없어지고, 불이 사그러들었다. 그 후, 파이로는 상자에 있었던 집기류들을 다시 넣었다.
“됐다. 이제 그 아이는 괜찮은 거지? ”
“약속대로, 저주는 풀어드렸으니까요. ”
“그나저나 그 가족들을 공격하는 건 대체… ”
“아무래도, 그 가족들에게 원한을 가진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제가 그 아이에게 저주를 걸 때, 함께 따라온 듯 합니다. 아무래도 그 집에 다시 가보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
“그게 무슨… 그럼 당신이 그 가족들까지 저주한 게 아니란 말이예요? ”
“그 가족들이 제 집에 들어온 것도 아닌데, 제가 어찌 저주를 걸겠습니까. 일단 한시가 급하니, 어서 가시지요. 그 집에 들어서거든, 거울을 꺼내 보아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나오겠습니다. ”
“응. ”
백희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자, 넷은 다시 민준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분명 저주를 풀었다는 말과 달리 집은 더욱 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팔찌가 끊어진 채, 한 손에 칼을 들고 무언가를 찾는 미혜가 거실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은 보이지 않았다.
“!!”
“아차차, 거울! ”
파이로가 거울을 들어 미혜를 비추자, 안에서 백희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바닥에 널브러진 팔찌를 주워들었다.
“이것은… 그렇지요. 붉은 색은 나쁜 기운을 내쫓아줍니다… 게다가 이 실은, 집 주변에 둘렀던 것과 동일하군요. 뭔지 모르겠지만, 특별한 물건인 것 같네요. ”
“그거, 이 녀석 거미줄이거든. 이 녀석은 자신이 거미줄을 친 영역 안을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
“그러하군요… 어서 다른 가족들을 찾아 보세요. ”
“아, 응. ”
미혜가 거실 한복판에서 가만히 서 있는 가운데, 울음 소리같은 게 들려왔다. 파이로와 무라사키가 소리를 따라가 보니, 가족들은 이층에 모여 있었다. 겁에 질려 굳어버린 민준과 달리, 그의 엄마는 남편을 책망하며 울고 있었다.
“이건 대관절 뭔 상황이냐… ”
“민준 씨, 괜찮아요? 괴담수사대예요. ”
“아아, 안녕하세요… 하아- 대관절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미혜가 팔찌를 끊더니, 칼을 들고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어요… ”
“…어머님은 또 왜 저러시고? ”
“그게… ”
민준에게는 위로 누나가 한 명 있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누나가 뱃속에 있을 때, 아이가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의 조모가 아이를 지우라고 하도 닦달을 해서 지웠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어머니가 남편을 책망하는 이유는, 그 때 한번도 할머니를 말리지 않고 방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적어도 남편이 할머니를 막아줬더라면, 그 아이가 죽을 일은 없었을 거라고…
“참, 그 빌어먹을 남아선호사상이 사람 여럿 잡네. ”
“…… 그렇군요… ”
“어찌됐건 저거 막기 전까진 여기 가만히 있어. 죽은 누나가 좋은 데 가길 빌고. 그 집 갔다 오는 길인데, 그 녀석이 너희들에게까지는 해를 끼치지 않아. 아마 죽은 네 누나가 네 동생의 몸을 빌린 것일 수도 있어. ”
“…… ”
거실로 내려와 보니, 미혜는 칼을 바닥에 떨어트린 채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식칼 근처에는 백희의 은장도가 떨어져 있었다. 파이로는 은장도를 주워 들고, 식칼은 가윗날로 멀리 튕겨버렸다.
“가족들은 무사하십니까? ”
“응. …저 집 엄마가 미친듯이 통곡하면서 저 집 아빠 책망하는 거 빼고. ”
“…… ”
“이 집에도, 너와 비슷한 이유로 빛을 보지 못 한 사람이 있어. 그리고 그 녀석이 지금 일을 벌이는 중이고… ”
“그렇습니까… ”
백희는 미혜에게 다가가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면서 미혜를 달랬다.
“나… 나는 죽었는데… 어째서 얘는 살아 있는거야…? 어째서… ”
“아마도, 그 다음으로 아들이 태어났기 때문일 겝니다… 하지만, 그런 할머니라면 분명 자신의 손녀를 눈엣가시처럼 여길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요,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게지요? 그리고 어머니가 그렇게 구박당할 동안 아무 것도 못 했던 아버지가 싫은 게지요? ”
“엄마…… 불쌍해…… 그렇게 구박받았는데… 아버지는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어… 그리고 할머니도… ”
“이건 얘네 할머니가 와서 사과해야 할 거 같다. ”
“그래보입니다… 아무래도, 상처가 심한 모양입니다. ”
“그럼 너, 이 아이가 결혼하게 되면 이 아이의 딸로 태어나는 건 어때? 요즘은 그 때처럼 딸이라고 지우라고 하면 오히려 그런 말 꺼낸 사람이 욕 들어먹거든. 아마 너도 다시 태어나 세상의 빛도 보고 좋은 것도 누릴 수 있을 거야. …어찌됐건, 손에 피를 묻힌다는 건 유령이라고 해도 용서받지 못 할 짓이거든. 그건 너도 알지? ”
“…… ”
미혜가 풀썩 쓰러지고, 그녀의 뒤에 2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슬픈 눈으로, 미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아이도 곧 네 존재를 알게 될 거야. 그 때, 편히 잠들기를 바라겠지. 그러니까 이만 돌아가도록 해. ”
“…… 내 동생… 미안해. …나중에 보자… ”
그녀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파이로는, 미혜를 소파에 눕혀 놓고 이층 방으로 가 가족들에게 상황이 끝났음을 알렸다. 그리고 죽은 아이에게 반드시 공양을 할 것을 당부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무쉴로 돌아갔다.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군. ”
“그렇죠… 사실, 지금 제 또래의 한국인 청년들은 그래서 남자쪽이 더 많다고 해요. 딸이면 태어나기 전에 낙태를 하는 거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