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2. 재앙을 부르는 전화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말도 있지?
그런데 왜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고 사람을 다치게 하는거지?
역시 인간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는걸. 」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A동 2층 빌라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사상자는 다행히도 없었지만 집은……

“또 화재네. ”
“요즘들어 왜 이렇게 불이 많이 나지? 여름이라고 방심하는건가… ”
“여름…? 계절이 화재랑 무슨 상관이야? ”
“보통, 여름은 습하고 비가 자주 와요. 반대로 겨울은 건조해서 여름해 비해 불이 많이 나고, 여름은 겨울과 반대로 불이 덜 나는거죠. ”
“그런가… ”

며칠 쨰 같은 소식이었다.
방화범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고 수사했지만 결국 범인은 못 잡았다고 했다. 그 외에는 이렇다 할 것도 없다. 그냥, 여느때와 달리 화재가 좀 빈번하다는 것 외에는.

“화재 사건인가봐? ”
“아, 깜짝이야… ”

TV로 보이는 상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거울 안에 있는 줄 알았던 애시가 TV에서 튀어나왔다.

“TV로도 나올 수 있는거예요? ”
“후훗, 난 상을 비출 수 있는 무언가라면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니까… 그나저나 또 화재 소식인가봐? ”
“네. 여름인데도 뭔가, 화재가 자주 일어나네요… 거기다가 이건 너무 자주예요.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방화범의 소행이라면 빨리 잡는 게 좋지 않을까… ”
“그렇겠네. 흐음… 아, 손님 오셨다. ”

마침 미기야에게 볼일이 있었는지, 정훈이 찾아왔다.
오르페우스 사건 이후로, 정훈은 종종 미기야에게 찾아오곤 했다. 정훈은 수사대로 미기야를 찾아와 사건을 수사하는 건으로 조언을 받기도 하고, 협력을 구하기도 했었다.

“어서오세요. 오늘은 무슨 일로… ”
“다름이 아니라, 그 화재 사건 때문에요. 오늘도 불이 났다고 해서 현장에 갔다 오는 길이예요. ”
“아아, 그 뉴스 봤어요. 그래도 다친 사람은 없다지만 집이 홀랑 타 버려서, 어떻게 한대요… 그보다 범인은 어떻게… ”
“사실은 그것때문에 찾아왔습니다. ”

정훈의 말로는, 조사를 해 봤지만 사고가 난 집들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점도 없었다고 한다. 그냥 어느날 갑자기 불이 났고, 그 와중에는 사상자도 나왔었다고. 거기다가 범인이라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해도 뭔가 단서가 있어야 하는데, 하다못해 그 근처의 CCTV 영상도 없었다.

“그리고 이걸 봐 주세요. ”

정훈은 핸드폰을 건넸다.

“오늘 아침 보도된 화재 사건을, 목격자가 우연히 찍은 영상이라고 합니다. 목격자의 말로는, 밤에 자기 집 근처로 찾아오는 새를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사건을 목격했다고 해요. ”

미기야는 말없이 영상을 보고 있었다.
영상 속에는 어제 불이 났던 집이 보였다. 목격자는 처음에 집을 찍으려던 게 아니었는지 카메라는 그 집을 살짝 벗어나 하늘에 있는 달을 찍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집은 화면 밖에서 아예 나간 것은 아니었고, 화면의 반은 집이고 화면의 반은 하늘이었다. 그렇게 몇 초간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갑자기 불이 확 붙었다. 순간 카메라는 집 쪽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상은 끝났다. 그 시점에서, 목격자가 119에 신고를 했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불이 붙다니… 안쪽에서 불이 일어난걸까요… ”
“그게 좀 이상합니다. 현장을 조사해봤는데, 화재의 원인이 가스불도 아니었고 전기 스파크도 아니었어요. 가스 폭발도 아니었고, 그 집에 담배를 피는 사람은 없었고요. 누군가 불장난을 한 것도 아니었어요. ”
“흐음… 혹시 생존자는 뭐라고 하던가요? ”
“가장 먼저 화재를 발견한 사람 말로는, 낡은 책더미에서부터 불이 시작돼서 순식간에 옮겨붙었다고 하던데… ”
“낡은 책더미라… ”

낡은 책더미에서부터 시작된 불.
그리고 원인은 가스 폭발도, 전기 화재도 아니었다. 거기다가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대체 원인은 뭘까? 그리고 이런 불을 낸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흐음…… 집에서 폭죽을 터뜨릴 리도 없고… ”

역시 뭔가 석연찮았다. 하지만 이렇다 할 가닥도 잡을 수 없었다. 책더미에서 불이 붙었다. 가스도 전기도 담뱃불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뭘까?

정훈이 돌아간 이후에도, 미기야는 불이 난 이유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느라 애시가 부르는 것도 듣지 못 할 정도였다. 보다못한 애시가 머리를 살짝 잡아당기자, 그제서야 고개를 돌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
“이번 사건때문에요. ”
“아, 그 화재 사건? 왜? ”
“불은 낡은 책더미에서 났는데, 조사 결과 원인은 가스나 전깃불, 담뱃불이 아니었어요. …다른 원인이 있는걸까요… 평범하게 쌓여있던 낡은 책더미에서 불이라니… ”
“흠… 이번 사건만 가지고는 조사하기 힘들겠는데… ”
“근데 그 동안 있었던 사건들, 피해자들하고 뭔가 공통점이 있나 해서 찾아봤더니 공통점이 없었어요. ”
“후훗… 인간이 범인일 때야 그렇겠지만… 괴이라면 어떨까? ”
“??”

안 그래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후훗, 몇주 전 우연히 SNS에서 본 거야. ”

애시가 내민 핸드폰에는 누군가의 글이 있었다.
글에는 휴대폰이 하수구에 빠져서 119를 불렀다는 내용이 써 있었고, 밑에 댓글에는 그런 글쓴이를 지탄하는 글들이 올라왔었다. 하지만 글쓴이는 반성의 기색이 전혀 없어 며칠 후 글을 내렸다고 했다. 그녀는 우연히 그 글을 읽고 캡쳐를 해 뒀었다고 한다.

“이 글이 올라온 후, 글쓴이의 집에 화재가 일어났어. 가스, 전기, 담뱃불도 아닌… 단순히 쌓여있던 종이에 불이 붙어서 생긴 화재였지. 그리고… 글쓴이는 죽었어. ”
“음…… 하지만 그거, 순전히 우연 아닐까요? ”
“우연인지 아닐 지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지.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 말이야… 그 집 사람들이 119에 사소한 것으로 신고를 한다거나 장난 전화를 한 적이 있는 지 알아보면 돼. ”
“그걸 어떻게 알아봐요… ”
“뭐, 조사해보면 알지도… ”
‘남 얘기 하듯 하시네요. ‘

그래도 조사라도 한 번 해 볼까 싶었던 미기야는 정훈에게 피해자가 혹시 119에 전화한 적이 있는지 조사를 부탁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정훈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아, 형사님. ”
‘아, 미기야 씨. 아까 알아보라고 했던 것들 알아봤는데… 불이 났던 집들 중 몇 곳에서, 사건이 발생하기 몇일 전에 그 집의 번호로 119에 전화를 전 적이 있었습니다. 장난 전화였다고 해요. ‘
“그런가요… 장난 전화라…… ”
‘그리고 몇 곳에서는, 119에 전화를 한 적이 있었지만 상당히 사소한 일로 전화를 했었다고 해요. 뭐… 예를 들자면, 구급차를 택시처럼 이용한다거나 하는 거죠.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

미기야는 전화를 끊자마자 애시를 찾았다.

“애시, 당신 말대로예요. 몇몇 집에서는 장난 전화를 걸었고, 몇몇 집에서는 119를 부르지 않아도 되는 일에 119를 불렀었대요. 그것도 불이 나기 몇일 전에요. ”
“역시, 이번 사건도 괴이의 짓인 모양이구나… 하지만 이번에는 괴이를 찾기가 꽤 힘들 것 같은데. ”
“키츠네 씨라면 가능할지도…? ”
“후훗, 맞다. 사냥꾼이 있었구나~ ”

두 사람은 키츠네 쪽을 바라보고 살짝 웃었다.

“앙? 갑자기 왜 웃는거야? ”
“키츠네 씨, 부탁할 일이 있어서요. ”
“뭔데? ”
“이번 화재 사건을 맡게 됐는데… 범인이 아무래도 괴이인 것 같아서요. 키츠네 씨는 괴이사냥꾼이니까 괴이를 찾는 법을 아시겠죠? ”
“뭐야, 그럼 이번 사건의 범인은 불과 관련된 괴이인건가… 뭐, 그렇다면 한번 찾아보자. ”

그 날 저녁.
미기야는 애시와 키츠네를 데리고 밤 거리로 나왔다.

“여기서 어떻게 괴이를 찾죠… ”
“간단해. 불과 관련된 괴이는 불에 잘 타는 물건을 좋아하거든. 그러니까 이 목탄을 들고 다니면 녀석이 보일거야. ”
“잠깐만요, 종이같은 게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 여기 있네요. ”

미기야는 목탄 한 쪽을 휴지로 감싼 다음 오른손에 들었다.

“괴이가 목탄을 발견하면, 원한같은 것 상관 없이 여기에 들러붙게 돼 있어. 원래 불과 관련된 괴이는 이런 걸 상당히 좋아하거든. 거기다가 휴지까지 있으면? 완전 금상첨화지. 괴이가 들러붙으면, 아마 목탄에 불이 붙을거야. ”
“탈 만한 거라… 그럼 애시 씨는 뭘 좋아하시나요? ”
“나? 나는… 뭔가 비출 수 있는 거라면 다 좋지. 거울 뿐 아니라 창문이나 핸드폰같은 것도. 후훗… 그나저나 어디에 숨어있을까… ”
“으음… ”

그 와중에 애시는 핸드폰 삼매경이었다.

“저기요… 핸드폰 좀 그만 하시지 그래요… ”
“잠깐만. 재밌는 게 올라왔거든. ”
“지금 임무 중 아니냐… ”
“후훗, 혹시 또 119에 장난 전화나 쓸데없는 일 때문에 연락한 사람이 자랑스럽게 글을 올렸나 해서. 글은 못 찾았지만… ”

애시는 뭔가 아쉬운 듯 핸드폰을 끄고, 주변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 때, 미기야가 들고 있던 목탄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
“근처에 괴이가 있는 모양이야! ”
“그런데 연기만 가지고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데요… ”
“후훗, 조금만 기다려, 지금 냄새 맡고 오는 중이니까. ”

그리고 곧이어 불꽃이 확 피어오르자, 키츠네는 목탄에 침을 꽂았다. 그리고 애시가 허공에 무언가를 잡는 듯한 모션을 취했다.

“이 녀석인 것 같아. ”
“…? ”
“아, 너는 안 보이겠구나… 후훗. ”
“히이익- 다, 다, 당신! 애시잖아요! ”
“후훗… 나에 대해 알고 있다니, 꽤 뛰어난걸…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대답해줄래? 그러면 네 존재 정도는 살려줄 수 있는데… ”
“히이익… 뭐, 뭐, 뭐, 뭔데요…? ”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미기야에게도 목소리는 들렸다. 녀석은 애시를 보자마자 겁에 질린 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발버둥도 치는지 목탄에 붙은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요즘 화재 사건이 일어난 거 알지…? 혹시 네가 그런거니? ”
“아, 아, 아뇨! 저, 저, 전 절대 아니예요! ”
“거짓말 하는 거 아니지? ”
“그, 그, 그럼요! 애시 씨 앞에서 거짓말을 했다가 들켜버리면 정말 죽을 지도 모른다구요! 하지만 며칠 전 불이 났을 때 근처에서 조금 이상하게 생긴 녀석을 본 적은 있었어요… ”
“조금 이상하게 생긴 녀석…? ”
“네, 네! 머리가 우리들과는 다르게 인간의 머리칼과 같았어요. 분명 우리와 동류인 것 같은데, 형태는 인간이었다니까요? 어, 어, 어제도 이 근처에서 봤는걸요! 그러니까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
“좋아, 사실대로 얘기했으니까 목숨 정도는 살려줄게. 후훗… ”

애시가 손을 놓자, 무언가가 재빨리 사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 형태의 괴이라… 그런 경우는 꽤 드문데… ”
“당신도 사람 형태잖아요. ”
“그러니까 드물다는거지. 상급 괴이가 아닌 이상,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는 경우는 없어. 아무튼… 인간 형태의 괴이를 찾으면 돼. ”

목탄의 불을 끄고 다시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를 몇 번 반복했다. 한참을 돌아다니던 세 사람은 근처 놀이터로 갔다. 놀이터는 밤이라 그런지 사람이 얼마 없어 꽤 한산했다.

“저기서 잠깐 쉬었다 가…… 엥? ”
“연기다! 애시, 혹시 어떤 괴이인지 보여? ”
“응, 저 녀석이 우리가 찾던 괴이인 것 같은데…? ”
“흐음… 왔다! ”

키츠네가 다시 목탄에 침을 꽂았다. 그리고 애시는 또 다시 허공을 잡았다.

“넌 누군데 사람들의 집에 불을 지르고 다니는거지? ”
“네녀석은 누군데 날 볼 수 있는거지? ”
“나도 너와는 동류지. 순순히 얘기하지 않으면, 네녀석의 존재 자체를 먹어치워서 없앨 수도 있단다~ 나는, 비춰지는 상을 먹어치우거든… ”
“!!”
“후훗,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걸 보니 괴이가 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구나… 그래, 불을 지른 이유가 뭐지? 거기다가 네가 불을 지른 집은 119와 관련이 있었지… 몇몇 집은 장난전화를 했고, 몇몇 집은 쓸데없는 일로 119에 전화를 했더구나… 혹시 네가 불을 지른 이유가 그것과 관련 있는거니? ”
“어떻게 알았지…? 맞아… 난…… 집에 불이 났었어… 상당히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누군가가 장난전화를 걸어서, 출동이 늦어졌지…… 그래서 난, 그리고 우리 가족들은 집 안에서 전부 죽어버렸어… 그 뒤로 미웠어… 그런 것들로 소중한, 정말 중요한 일을 하지 못 하게 방해하는 게…… ”
“…… 그렇다고 해도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건 옳지 않아. 사실 애초에 장난전화를 건 인간들 역시 잘한 건 아니야. 그리고 쓸데없는… 부르지 않아도 될 일로 119를 부르는 사람들 역시 잘한 건 아니지. 그렇지만 너 역시 잘했다고는 할 수 없어. ”
“…… ”

키츠네와 애시의 눈에는, 힘없이 고개를 떨군 괴이가 보였다.

“어서 명계로 돌아가. 아직 삶에 미련이 있는거라면, 명계로 가면 다시 환생할 수 있을거야. 우리와 같은 종족이 되려면 삶의 미련을 포기해야 해… 우리는, 귀신과 인간의 중간 경계이니까… ”
“…… ”
“어떻게 할거야? 네가 우리와 같은 상태로 계속 남아있겠다면 우린 널 죽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위험해질테니까. ”

애시는 괴이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미기야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 애시가 뭐라뭐라 말을 하는가 싶더니, 무언가를 보내는 듯한 모션을 취했다.

“다음 생에는 비참하게 죽지 않길 바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