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침으로 나온 버거를 보면서, 사람이 줄어든 탓인지 식사가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아침이 버거라는 얘기를 듣고 흔한 패스트푸드점의 버거일거라 생각했던 그의 눈앞에 놓인 것은 막대기가 꽂혀진 수제버거였기 때문이다.
“와, 버거 비주얼 멋지네요. ”
적당히 구워진 빵 위로 양상추와 토마토가 있고, 그 위로는 두툼한 패티와 치즈가 교대로 두 개 올려져 있었다. 그 위로는 계란 프라이와 얇게 썬 양파, 그리고 딱딱하게 구운 베이컨이 올려져 있었다. 같이 나온 감자튀김은 웨지포테이토였고, 콜라와 케찹이 곁들여져 있었다.
‘장갑에 냅킨까지 줬네… ‘
입을 있는 힘껏 벌리고 버거를 한 입 먹어보면, 고소한 치즈의 맛과 함께 패티의 육즙이 느껴진다. 도저히 이렇게 익히기 힘든 두꼐의 패티였지만, 바깥쪽이 타지 않은 상태에서 안쪽까지 골고루 익었다. 이 정도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고든 램지나 제이미 올리버정도는 돼야 할 것 같다. 곁들여서 나온 감자튀김도 안쪽까지 바삭하게 익어서 마치 웨지포테이토 모양의 감자 스틱을 먹는 기분이었다.
예전에 신입사원이 처음 들어왔을 때 회사에서 회식 겸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감자튀김이 딱 이랬지, 그는 잠시 그 때를 생각했다.
‘다들 잘 있으려나. ‘
쓰레기를 갈무리하고 밖으로 나간 인원들은 카드를 배부받았다. 그리고 두 줄로 줄을 선 다음,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판데모니움 로열 3라운드는 시청자 참여형 게임입니다! 그 종목은 바로~ 루도입니다! 시청자 여러분들의 성적은 게임에 전혀 반영되지 않으니, 참가자 여러분들과 함께 게임을 즐겨주시면 됩니다! ”
25개의 테이블에는 두 명씩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뿔이나 날개, 꼬리가 있는 것들도 있었고 겉보기에는 사람과 비슷한 것들도 있었다. 그와 85번이 앉을 테이블에도 그런 무언가가 앉아있었다. 한쪽은 머리에 뿔이 달린 여자였고, 그 옆에는 커다란 후드를 입은 여자가 앉아있었다.
“응? 이쪽인가? ”
“카드를 들고 있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지…? ”
머리에 뿔이 달린 여자는 흰 민소매에 돌핀 팬츠를 입고 있었다. 전신을 식물 덩굴같은 것이 휘감고 있었고, 등에는 박쥐 날개같이 생긴 것도 달려있었다. 그 옆에 앉아있는 여자는 뿔이나 날개같은 것은 없었지만, 피어싱이 달린 귀가 뾰족했다.
“7번, 85번이구나. 카드 상자 색이 같은 쪽이랑 마주앉아. ”
카드 상자를 확인한 둘은 각자 자리에 앉았다. 그의 앞에는, 뿔이 달린 여자가 있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진행자는 카드를 꺼내 잘 섞었다.
“응? 무기를 가져오시면 어떻게 해요? 게임에서는 지급받은 카드만 사용해야 합니다. ”
“이게 있다고 카드를 안 줬는데? ”
“그렇습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어딘가로 날아갔던 진행자는, 잠시 후 다시 돌아왔다.
“여기는 공격 자체가 막혀있어서 카드를 별도로 안 주신 듯 하네요. 이 카드로 사용하실거죠? ”
“응. ”
“이번 게임은 뭐야? ”
“루도라는데? ”
“루도? 그건 어떻게 하는건데? ”
“잠시 기다리고 계시면, 제가 설명해드릴게요. ”
후드를 입은 여자의 카드를 잘 섞은 진행자는, 테이블에 마지막 카드 더미를 내려놓았다.
“자, 그럼 이번 게임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이번 게임은 중간계에서도 서방 지역에서 많이 한다고 알려진 루도라는 보드게임입니다. 여러분들은 각자의 말을 움직여서 보드를 한 바퀴 돌고, 종점으로 오시면 되는 매우 간단한 게임이죠. 원래 루도에서는 주사위를 굴려서 말을 움직였지만, 여러분은 이번에 주사위 대신 카드를 쓰게 될 겁니다. 여러분의 카드 상자와 색이 같은 카드가 나오게 되면, 말을 움직이시면 됩니다. 시청자 여러분들의 성적은 반영되지 않으니, 게임을 즐겨주세요. ”
“루도라… 그럼 말을 잡을 수도 있겠네? ”
“예리하신 질문입니다. ”
참여자들에게는 반말을 썼던 것과 달리, 진행자는 둘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었다.
“이 게임에서도 상대방의 말을 잡을 수는 있습니다. 단, 말을 잡는 순간 서로 카드를 뽑아서 숫자가 더 큰 쪽이 잡게 됩니다. 대신 상대를 잡더라도 한번 더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기존의 루도와 달리, 이번에는 빠른 진행을 위해 같은 색의 카드가 나오면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원래 출발하는 데 조건같은 거 있어? ”
“응. 6이 나와야 출발할 수 있어서 운 나쁘면 한번도 출발 못 해. ”
“아하”
“그럼, 선을 정하겠습니다. ”
허공에서 12면체 주사위가 나왔다.
“주사위를 던져서 가장 숫자가 큰 쪽이 선입니다. 진행 방향은 시계방향으로 해 주세요. ”
각자 12면체 주사위를 던졌다. 그리고 뿔이 달린 여자가 던졌을 때, 12가 나와 그녀가 선이 되었다. 더미에서 카드를 뽑은 그녀는, 카드 내용물을 확인하고 말을 집어 움직였다. 그 다음으로 후드를 입은 여자도 카드를 뽑고 말을 옮겼고, 그 역시 카드를 뽑고 말을 옮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85번의 차례가 되자 그 역시 카드를 뽑았다. 하지만 그는 작게 한숨을 쉴 뿐, 말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카드를 뽑고 움직이는 게 몇 번 반복될 무렵.
“어, 잡았네. ”
“두 분, 카드를 뽑아주세요. ”
뿔이 달린 여자와 85번은 각자 카드 더미에서 카드를 뽑은 다음, 서로 확인했다. 그리고 85번의 말은 시작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뒤로도 카드를 뽑고 이동하기를 반복하던 찰나.
“오, 내가 1등이네. ”
후드를 입은 여자가 모든 말을 종점으로 보냈다.
“이제 관전 모드에 돌입하면 되는건가… ”
“네. ”
후드를 입은 여자가 느긋하게 지켜보는 와중에, 세 사람은 계속해서 카드를 뽑고 말을 움직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모든 말을 전부 종점으로 모은 것은, 그였다.
“내가 2등 하고 싶었는데… ”
“우리 성적은 반영도 안 되는데 뭐하러 거기 목매고 그래? ”
“그래도… ”
“느긋하게 해. ”
시청자로 온 둘의 성적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건, 그가 2등이 되었을 때 결과가 결정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게임은 계속되었다.
“와, 그래도 3등은 했다. ”
“…… ”
끝까지 게임이 계속된 결과, 뿔 달린 여자가 세번째로 모든 말을 종점으로 모았다. 그리고, 그가 2등이 된 시점에 안색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던 85번은 게임이 전부 끝났을 때, 어디 아픈 사람처럼 얼굴이 백지장같았다.
“유감이네. ”
“…… 저,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거죠…? ”
“음… 일단 바로 죽지는 않을거야. 너, 지병이 있지? ”
“맞아요, 페닐케톤뇨증이 있어요. ”
“그 병에 걸린 환자들은 특별식을 먹어야 한다며? 그런데 오늘까지 식사한 건 어땠어? ”
“보통식이었는데… 아픈 곳도 없고 무사했어요. ”
“같이 처방된 약을 꼬박꼬박 먹어서 그랬을거야. 그리고 그 약을 제조한 쪽에서, 임상실험을 위해 네가 필요하다고 했어. ”
“제가요? ”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너랑 같은 사람들도 보통식을 먹을 수 있게 해 주는 약을 연구중인가봐. 먹었을 때 얼마나 호전되는지, 적정 용량은 어느정도인지… 이런 걸 봐야 한다고, 페닐케톤뇨증이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했거든. 잠깐 기다리면, 널 데리러 올 거야. ”
진행자는 85번을 진행 요원에게 인계했다.
“7번, 승리 축하해. 그리고 두 분, 오늘 재밌으셨길 바랍니다. ”
“재밌었지! ”
“역시, 기획 하나는 잘 하는구만. 매번 이렇게 기획하기도 힘들텐데… ”
“이 게임 또 하고싶은데… 언제 신청 받아? ”
“글쎄요… 그건 다음 로열이 언제 개최되느냐에 달렸죠. ”
“괜찮으면 나중에 내 친구들이랑 할래? 걔들도 보드게임 파티에 사람 늘면 좋아할거고. ”
“정말? 그럼 나중에 같이 하자. ”
뿔 달린 여자와 후드를 입은 여자를 뒤로 하고, 그는 숙소로 돌아왔다.
“응? 숙소가 2인 1실이예요? ”
“원래는 4인 1실이 원칙인데, 남은 인원이 25명이라서 그렇게 되면 한 명이 독방을 써야 하기 때문에 조정했어요. ”
그가 숙소로 도착했을 때, 먼저 왔던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 또 뵙네요. ”
“7번님이랑 구면이세요? ”
“네, 구면이예요. 1라운드 끝나고 같은 방을 썼었어요. ”
“와… 이런 우연도 있네요. ”
숙소에 모인 사람들은 게임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저는 이번 라운드 상대가 아까까지 한 방을 썼던 사람이었어요. 7번님은요? ”
“전 85번님이요. ”
“아, 그 분… 어제까지만 해도 같은 방이었는데… 뭔가 몸에서 쥐 오줌 냄새같은 거 났어요. 뭐라던가… PKU 환자라고 했었는데… 그래서 밥이랑 같이 약을 처방받더라고요. 그 병이 약을 먹는다고 되는 병이 아닌걸로 아는데… ”
“정말요? ”
“네. PKU 환자들은 평생 특별식을 먹으면서 관리해야 해요. ”
“그… 그 분, 아까 임상실험 대상이라고 들은 것 같았어요. 그 약때문에… ”
“임상 실험이요? ”
“네. 그래서 게임 끝나고 그쪽으로 데려갔는데… 그나저나 우리 참가자 중에 커플 있던데, 어떻게 됐을까요? ”
“커플이요? ”
85번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은, 이번 게임에 참가한 커플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2라운드 줄 설 때 잠깐 봤었는데, 둘이 같은 팀이라고 좋아하던데요? ”
“이번 라운드도 다른 테이블로 갔다고는 들었는데, 둘 다 무사한지는 모르겠네요. 저는 제 게임 끝나고 바로 와서… ”
“웬지 무사하게 돼도 비참해질 것 같지 않아요? ”
“왜요? ”
“이 게임, 참여자가 계속 반씩 줄어들다보면 마지막에 두 명이 남잖아요. 무승부나 공동 우승이 없다면, 마지막에 남는 두명이 1:1로 붙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 커플이 마지막까지 남게 되면, 그 커플끼리 싸워야 한다는 얘기잖아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