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3. 소원을 들어주는 폐건물

게시자: 미스테리어스
제목: [투고괴담] 소원을 들어주는 폐건물

구독자 ‘goathub0102’님께서 투고해주신 이야기입니다.

안녕하세요, 최근에 미스테리어스의 괴담집을 구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제가 겪은 이야기 하나를 투고하고자 합니다.

저는 E시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회사는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었지만 직원들끼리는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도 있었고,텃세를 부린다거나 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단 한 명, 소위 ‘꼰대’라고 부르는 부장님만 빼면 다 좋았죠. 능력도 없는데다가 공수표만 남발하기 좋아하는데도 회사에 잘만 다니는 걸 보면서 다들 낙하산일거다, 대표님 친구 가족이다, 대표님 가족이다, 그런 얘기가 오가곤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회사에 더 이상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회사 옆에는 낡은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지은 지 꽤 되어보이는 건물인데, 제가 듣기로는 2~30년 됐다고 하더군요, 최근에 외벽을 새로 도색하고, 안쪽도 무너질 것 같은 실 몇 개는 새로 공사하긴 했지만, 그래도 낡은 건물인 건 티가 납니다. 그래도 이곳에서 꽤 오랫동안 장사했던 식당도 있고, 개중에는 맛집으로 방송에 나왔던 집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건물에서도 20년 가까이 공실이었던 곳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4층 404호입니다.

건물의 404호는 원래 수예점이 있던 곳이라고도 하고, 공부방이 있었던 곳이라고도 했습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그 곳은 음식점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호실은 외관을 도색하고 내부도 공사를 한 번 거쳤지만 404호만큼은 짓고 나서 거의 공사를 진행한 적이 없었습니다. 공사를 하려고 했지만 인부들이 크게 다치는바람에 공사를 진행하지 못 했다고 하더군요. 듣기로는 그것때문에 무당을 불렀는데, 무당이 돈을 두배로 준다는데도 한사코 404호에는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천장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던데다가 내부에 석면 자재가 있어서 그걸 전부 걷어내야 했던 상황이라, 건물주가 404호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안에 있던 무언가를 간신히 달래서 20년 전에 딱 한 번, 무사히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404호는 어떤 공사도 진행하지 않고, 어떤 가게든 입주시키지 않은 채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사람이 잘만한 작은 방이 있고, 예전에 무사히 공사를 하게 해 달라고 올렸던 제삿상과 향로가 남아있습니다. 제사를 지낸 후 음식을 치운 것 외에는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아서 향로에는 그 때 썼던 향도 남아있습니다.

404호에 관한 수수께끼의 소문이 하나 있는데, 404호에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제사상에 놓인 향로에 불을 붙이고 절을 두 번 한 다음 소원을 빌면, 향에 붙었던 불이 꺼지고 빈 접시 위에 붉은 쪽지가 하나 나타나게 된다고 합니다. 쪽지에는 하얀 잉크같은 것으로 소원을 이루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쓰여있다고 합니다.

1층에서 해장국집을 하는 사장님에게는 수험생인 아들이 있었습니다. 부모 마음이라는 게 다 그렇듯, 아들이 좋은 대학에 가서 고생 없이 사는 게 소원이었던 사장님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404호에 가서 아들이 이번에 꼭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나타난 붉은 쪽지에는 ‘너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쓰여있었다고 합니다.

그 뒤, 식당 사장님의 아들은 바라던 대로 좋은 대학에 합격했지만 공무원 시험에서 계속 낙방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사장님은 저랑 동갑인 사람들이 식사하러 가면 서비스로 머릿고기를 한 접시 내어주시면서 아들이 생각나서 주는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2층 미용실에 다니는 디자이너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잘 됐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 분은 미용실에 단골 손님으로 오는 남자분을 좋아하고 있었고, 주변 손님들도 둘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기도 했지요. 저도 가끔 앞머리를 정리하러 갔다가 듣게 되었습니다. 디자이너가 받은 붉은 쪽지에는 ‘업을 시작할 때부터 함꼐했던 것’이라고 쓰여있었다고 하네요.

머리를 다듬으러 갔을 때 가위가 바뀌어서 물어봤더니, 404호에 소원을 빌은 후로 그 분과 잘 되긴 했는데, 그 분과 사귀기 시작한 날 미용 일을 시작하면서 쭉 써왔던 가위를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래도 가위를 잃어버리고 사랑을 쟁취한거면, 대가 치고는 생각보다 약하다고 하셨습니다. 두 분은 이후 결혼까지 무사히 마치고, 지금은 슬하에 아들도 하나 있습니다. 아직도 그 미용실에 다니시는데, 지금은 남편 뿐 아니라 아들도 거기서 머리를 다듬고 있습니다.

10층 꼭대기에 근무하던 스타트업 사장님은 404호에서 ‘직원들 월급은 줄 수 있을 정도로 회사가 넉넉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었습니다. 가끔 식당에서 마주치는 분인데, 거기 근무하는 직원들 얘기로는 대표님이 사무실에 계시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하십니다. 투자 유치에, 은행 대출에, 국가 사업까지… 상당히 바쁘신 분이셨지만 직원들을 위하는 마음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 분이셨습니다. 그 분도 소원을 빌고 나타난 붉은 쪽지를 열어봤지만, 쪽지에는 ‘초심을 계속 유지한다면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라고 쓰여있었다고 합니다.

그 회사는 그 후 방송에도 혁신 기업으로 출연했었고, 방송에 나간 덕분인지 투자 유치도 잘 돼서 직원들 월급도 넉넉하게 줄 수 있게 되었고, 곧 넓은 공간으로 이사도 간다고 합니다. 사세가 확장되어서 직원들도 더 충원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회사가 잘 되면 직원에게 좀 박하게 대하는 대표도 있다고 하지만, 그 회사는 404호에 소원을 빈 후로 쭉 직원 복지가 최우선이라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건물을 옮기는 것도 주상복합 건물이라 오피스텔이 있는 한 층을 통째로 사서 직원들 사택으로 쓰려고 옮기는거라고 합니다.

같이 일하는 동안 저에게 유독 잘해주셨던 차장님이 한 분 계십니다. 이 분은 부장님이랑 유독 사이가 좋지 않았는지 자주 싸웠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모든 아르바이트의 해고가 결정되었을때도 거기에 반박한다고 싸웠다가 ‘그럼 니 연봉 깎아서 고용해라’라는 말까지 들었다며 분해하셨고요. 다른 직원들도 거기에 동조하면서 어린애도 안 내세울 것 같은 논리라고 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일하는 날, 직원들과 같이 점심을 먹던 차장님은 ‘404호에 그 부장님이 그만두게 해 달라고 빌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차장님도 소원을 빈 후 쪽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붉은 쪽지에는 ‘모든 것은 그가 지불할 것이다’라고 쓰여있었다는데, 거기에 적혀있는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후, 새해 인사 겸 차장님께 연락을 드렸다가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저희 회사는 404호가 있는 폐건물에도 사무실이 있었고, 최근에 그 옆 건물로 사무실을 전부 옮기면서 자리가 부족해서 아르바이트를 해고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만 둔 다음날, 빈 사무실을 전부 정리할 예정이었고요.

제가 그만 둔 다음날은 오후에 종무식이 있었고, 빈 사무실에는 짐이 꽤 많아서 오전중에 짐을 다 치우려면 전 직원이 동원되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연히 그 부장님도 짐을 정리하러 가려고 했었죠. 정말 짐을 정리하러 갔다고 해도 보나마나 짐은 안 나르고 잔소리만 줄창 해댈 게 뻔했던지라, 팀장님은 짐은 직원들이랑 당신이 나를테니 부장님은 서류 더미 처리를 위해 트럭을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짐중에는 버려야 할 서류 더미들이 꽤 있었고, 이걸 직원들이 일일이 옮기기 힘들어서 전부터 트럭으로 싣자는 의견도 나왔었고요. 그리고 그게 직원들이 봤던 부장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짐을 전부 나른 직원들은 쓸만한 집기류를 카트에 실어 옆 사무실로 옮긴 다음, 서류 더미들을 옮겼습니다. 서류 더미들을 트럭에 실을 무렵 부장님이 보이지 않자 또 트럭만 불러놓고 종무식 준비한답시고 사무실로 갔겠거니 했습니다. 그렇게 툴툴대면서 서류 더미를 다 싣고 트럭이 가는것까지 확인한 직원들이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부장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에게 물어봤지만,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은 오히려 짐을 정리하러 갔던 직원들에게 되묻고 있었습니다. 그 날, 부장님이 사라진 것 때문에 종무식은 진행하지 못했고, 직원들은 그냥 팀별로 같이 점심을 먹고 퇴근했습니다.

종무식 당일 사라졌던 부장님은, 이후 404호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건물 주변의 CCTV를 확인해보니, 직원들이 서류 더미를 정리할 시간에 트럭을 부른 부장님은 트럭이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뒤로 CCTV 영상을 계속 확인했지만 건물 안에 들어갔던 사람이 나오는 영상이 없었습니다. 그 시간에는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았던데다가 1층에 있는 해장국집도 아들 기일이라 쉬는바람에 탐문수사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사라졌던 부장님을 발견한 것은, 4층 화장실을 청소하러 갔던 청소부였습니다. 404호는 공실인데다가 사람이 살지도 않는 곳인데, 사람이 있어서 이상하게 여기고 들어갔다가 부장님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을 불렀다고 합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잠자듯 편안하게 죽어있었지만 내장이 있어야 할 곳에 피가 잔뜩 묻은 무명천이 내장이 배치된 모양대로 놓여있었고, 온 몸에 피가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부장님을 죽이고 내장을 전부 들어낸 다음 무명천을 잔뜩 채워넣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됐다면 배가 갈라져 있어야 했을텐데 그조차 없이 시신이 깨끗한 상태였습니다. 심지어 봉합 자국 하나 없이요. 거기다가 피 역시 주사 바늘같은 것이 꽂힌 자국만 있었지 저항한 흔적 하나 없었다고 했습니다. 안에 들어있던 무명천은 말 그대로 흰 무명천이었고, 거기에 잔뜩 묻은 피가 부장님의 피였다고 합니다.

대체 부장님은 왜 그런 모습으로 발견된것일까요? 그리고 붉은 쪽지에 쓰여있었던 ‘모든 것’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