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아침 식사를 알리는 소리가 남은 참가자들의 잠을 깨워주고 있었다.
-아침 먹을 시간이다.
처음에는 내일 아침 메뉴가 뭘지 고민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언제쯤 끝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한 번 라운드가 진행될때마다 사람이 반정도는 없어지는 것 같은데, 지금 몇 명이나 남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침 식사 메뉴를 받았다.
‘어, 이건…? ‘
이번에도 도시락이겠거니 한 그의 눈앞에는 커다란 쟁반이 놓여있었다. 쟁반 위에는 스프가 담긴 커다란 접시와 수저, 그리고 커다란 접시였다. 옆에는 포크와 스푼, 나이프도 놓여있었다. 커다란 접시 위에는 오래 전 엄마와 함께 먹었던 경양식 돈까스가 올려져 있었다.
커다란 돈까스 위에는 소스가 듬뿍 부어져 있었고, 썰러있지 않았다. 맞아, 예전에는 돈까스를 우리가 직접 썰어먹었었지. 그 때는 그도 어려서 엄마나 아빠가 썰어주곤 했는데. 칼로 썰 때마다 바삭하게 튀겨진 돈까스에서 바삭거리는 소리가 났다.
돈까스 옆에는 양배추를 채썰고 케찹과 마요네즈를 뿌린 샐러드가 있었다. 양배추는 하얀 양배추와 자색 양비추가 섞여있었다. 어릴때는 돈까스만 먹고 샐러드는 남기는 통에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께 혼나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오이피클과 단무지, 검은깨를 살짝 뿌린 둥근 흰밥이 놓여있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네. ‘
잘 튀겨진 돈까스를 썰어서 한 입 먹어보면, 어릴적 부모님과 함께 먹던 그 때 생각이 난다. 시험에서 100점을 맞거나, 다독상을 타거나… 뭔가를 잘 했을 때는 항상 거기서 밥을 먹곤 했다. 마지막으로 경양식당에서 돈까스를 먹었던 건, 아마 첫 휴가를 나왔을 때였던 듯 했다.
식사를 마친 그는 그릇을 갈무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그를 제외하고 다섯 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다. 슬슬 끝이 보인다, 그는 생각했다.
“준비됐으면 저 쪽에서 일렬로 서. ”
진행 요원의 지시대로 일렬로 선 사람들은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경기장은 예전에 유행했던 플랫폼 게임이 떠오를 것 같은 생김새였다. 키즈카페에서나 볼 법한 놀이방같기도 한 세트는, 무대처럼 되어 있었으며 위에 커다란 전광판이 있었다.
“네, 여러분- 이제 판데모니움 로열의 엔드게임까지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엔드게임까지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아, 말씀드리는 순간, 판데모니움 로열 제 6라운드! 연산 애슬레틱을 위해 선수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
일렬로 서 있었던 사람들이 무대 위로 올라서자, 장내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네, 이번 경기는 연산 애슬레틱입니다. 규칙은 간단합니다. 전광판에 문제가 나올텐데, 여러분들은 제한시간 내에 이 문제의 정답을 풀어 관문을 통과하면 됩니다. 간단하죠? 그럼 참가자 여러분들은 모두 출발선에 서 주세요. 준비하시고- 시작합니다! ”
경기가 시작되자, 전광판에 ‘시작’ 두 글자가 보임과 동시에 무대 뒤에 설치된 문이 사라지고 경기장이 나타났다.
“자, 자, 달려주세요! 첫 문제입니다. 2+2*2는? ”
첫번째 문제가 나옴과 동시에, 여러가지 숫자가 쓰인 문이 보였다. 사람들은 각자 정답이 쓰여진 문으로 들어갔다.
“정답은 6입니다! 탈락자는 없습니다! ”
다시 환호성이 들림과 동시에, 다음 문제가 나왔다.
“2의 10승은 1024입니다. 그럼 2의 12승은 얼마일까요? 준비하시고, 달려주세요! ”
두번째 문제 역시 그에게는 간단했다. 다른 사람들도 소요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번에도 정답이 쓰여진 문을 쉽게 통과했다. 그렇게 문제를 내고 달리기를 반복한 끝에, 어느덧 문제는 여섯번째가 되었다.
“여섯번째 문제입니다. 10!의 1의 자리는 어떤 수일까요? 준비하시고, 시작! ”
고등학교 수학책에서나 봤을법한 기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간신히 저게 팩토리얼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10!이면 1부터 10까지를 전부 곱하는거지… 5!이 120이었으니까 이후로 일의 자리는 0일거야. ‘
그는 있는 힘껏 장애물을 피해 달렸다. 그리고 0이 적힌 문을 통과했다. 그의 뒤로, 몇 사람인가 더 문을 통과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몇 사람인가 절규하는 소리도 들렸던 것 같다.
“네, 이번 문제의 정답은 0입니다. 10!은 3,628,800이죠. 이번 문제에서 한 명의 탈락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럼 이어서 다음 문제입니다. 화면을 잘 봐주세요. ”
화면에는 반달처럼 생긴 기호가 보였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것은 논리 게이트입니다. 이 논리게이트는 불 대수 연산 중에서도 XOR 연산인데요, 이 연산의 진리표는 이렇게 생겼고, 기호는 이런 식으로 씁니다. ”
사회자는 논리게이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이게 문제랑 무슨 관련이 있는거지? 라고 생각한 찰나.
“그럼 여기서 일곱번째 문제입니다. 9 ^ 11은? ”
여기서 바로 문제가 나온다고? 그는 당황했다. 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전부 당황한 것 같았다. 생전 듣도 보도 못 한 문제가 나오자 멍하니 서 있는 사람부터, 어떻게든 풀어보려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시간이 촉박합니다, 여러분. 잘못하면 전원 탈락할지도 몰라요. ”
전원 탈락이라는 말에 그는 일단 몸을 움직여 장애물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아까 보여준 진리표에는 0이랑 1밖에 없었는데, 설마 이진법으로 계산하는건가? 그러면 9가 1001이고 11이 1011이니까… 그거야! ‘
장애물을 뛰어넘어 점프한 그는 2가 쓰여진 문으로 뛰어들었다.
“말씀드리는 순간, 일곱번째 문제의 정답을 맞춘 참가자가 나왔습니다! ”
어, 이게 맞나? 할 새도 없었다. 그를 향한 환호성을 들으며, 말없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고 있었다. 곧이어, 문을 뚫고 다른 남자도 들어왔다.
“일곱번째 문제의 정답은 2였습니다. 전체 참가자 중 반 이상이 탈락했기 때문에, 이번 라운드는 여기서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남은 엔드게임을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종료 선언과 함께 어디선가 절규가 들려왔다. 안돼, 난 여기서 꼭 이겨야 한단 말이야, 제발 한번만 기회를 줘! 그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끊임없이 애원하면서 소리치던 목소리는 어느새 사라졌다.
“엔드게임에 진출하다니, 축하해. 이제 너희들은 저 쪽으로 가면 돼. ”
진행 요원에게 안내를 받은 두 사람은 각자의 숙소로 갔다. 지금까지 봤던 방과는 완전히 정 반대로, 안내받은 숙소는 5성급 호텔의 스위트룸에 들어선 느낌을 주고 있었다. 천장에는 고급스러운 샹들리에가 달려있었고, 거실처럼 보이는 방에는 TV와 가죽 소파가 놓여있었다.
‘이 정도면 하루 숙박비만 일곱자리는 넘기겠는데? ‘
안쪽에는 킹사이즈 침대가 놓여있는 방이 있었다. 금실로 수놓은 무늬가 불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침대 위에는 정성스럽게 개켜 놓은 목욕 가운과 세면도구가 놓여져 있었다. 욕실에는 커다란 욕조가 있었고, 어매니티로 고급 브랜드의 일회용 샴푸와 린스, 바디워시가 놓여져 있었다.
그 동안의 피로는 잊어버려도 될 정도로, 고급스러운 방이었다. 한번이라도 이런 곳에 묵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렇게나마 소원성취를 해보는구나. 그는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 저녁이 올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저녁 드십시오. ”
노크 소리와 함께 문 앞에 놓인 저녁은,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먹어볼법한 잘 익은 스테이크였다. 미디움으로 익은 스테이크 옆에는 매시드 포테이토가 있었고, 매시드 포테이토 위에는 캐비어가 올려져 있었다. 그 옆에는 와인잔과 함께 로마네 콩티 한 병이 놓여져 있었다.
그 옆에는 익힌 푸아그라가 있었고, 아래쪽 선반에는 수저와 와인 오프너, 샐러드 보울이 올려진 쟁반이 있었다. 샐러드 보울에는 발사믹 드레싱이 담긴 작은 그릇과 화이트 트러플을 편썰어서 얹은 샐러드가 놓여있었다. 야채는 갓 수확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신선해보였다.
수저 옆에 놓인 카드에는 ‘사흘 후에 엔드게임이 있을 예정이니, 그 때 모시러 오겠습니다. 부디 맛있게 드셔주시길. ‘이라는 글귀가 쓰여있었다. 그리고 쟁반 밑에는 여느 호텔에 가면 있는 매뉴얼이 놓여있었다. 방 정리는 언제 진행할 예정이고, TV는 어떻게 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어디로 연락하면 된다, 그런 것들이 적혀있었다.
‘3일동안 여기서 지낸다고? ‘
그는 3일이나 이런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에 좋아해야 할 지, 아니면 안타까워해야 할 지 난감했다.
분명 이 곳은 매우 고급스러운 방이고, 지금 자신이 먹고 있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사흘 후면 엔드게임이 있다. 여기까지 올라온 사람이라면, 아마 상대도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을거고, 그 염원이 강해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패배하게 되면 그는 이것들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된다.
‘뭐, 아무렴 어때,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도 있고. ‘
곧 그는, 엔드게임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