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여긴 어디야? “

분명 나는 친구녀석과 훔친 차를 타고 신나게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도로를 달리면서 거나하게 술도 한잔씩 하고, 아무도 없는 새벽 도로를 씽씽 내달리며 소리도 지르고… 그렇게 한참을 내달리다가 뭔가를 들이받은 것 같기도 하고, 눈앞이 흐려진 것 같기도 하고, 그 뒤 다시 눈을 떠 봤을 때는 낡은 건물 안이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사방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전화기는 사고를 당했을 때 망가졌는지 작동되지 않아서, 광원이라곤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주변을 손으로 더듬어 보니 무언가가 잡혔다. 더듬어서 찾아보니 뭔가 누를 수 있는 부분이 있었고, 버튼을 누르자 밝아졌다. 그가 주운 것은 어릴 적 아버지와 캠핑을 갔을 때 몇 번 썼던 걸이형 랜턴이었다.

주변이 밝아지자, 그제서야 여기가 어디인지 보였다. 벽은 하얀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지만, 꽤 오래 되어서 칠이 거의 다 벗겨졌다. 벽 부분부분 녹물이 흐른 자국이 보이고, 군데군데 녹물이 고여 있었다. 똑, 똑, 똑…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낡은 침대는 그래도 몸 정도는 누일 수 있을 정도였고, 침대 위에는 모포가 널브러져 있었다. 주변에서 쓸만한 것은 아까 주운 랜턴 외에는 없었고, 바닥에는 종잇장과 나무 조각, 약병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병원의 병실인 것 같았다.

‘병원인가보네… 나갈 길을 찾아봐야겠어. ‘

마냥 앉아있기도 뭣해서, 그는 다른 곳을 더 탐색해보기로 했다. 병실을 나와 복도를 둘러보니, 빨려들어갈 것처럼 캄캄했다. 그는 랜턴의 빛만으로도 복도 끝을 전부 비추지는 못할 것 같은 긴 복도를 걸었다. 복도를 걷는 내내 다른 병실도 보였지만, 어차피 전부 낡은 병실일거라 생각한 그는 층계참을 내려왔다. 낡은 모니터 몇 대와 접수대가 있고, 사람들이 앉아서 기다릴 수 있는 의자가 있는 걸 보면 로비였다.

입구는 유리문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밀어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어록으로 잠겨있었지만, 도어록 안에는 건전지가 없었다. 어딘가에 있는 건전지만 찾는다면 나갈 수 있을 것도 같았지만, 건전지가 있을만한 곳을 짐작할 수는 없었다. 여차하면 부수고 나갈까 해서 뭔가 무기가 될만한 것을 찾아봤지만, 애초에 의자는 붙박이라 분리가 되지 않았다.

-으흐흐흣…

어디선가 기분 나쁜 울음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는 점점 가까워져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은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난감한 존재였다. 간호사라고 하기에는, 그가 봐 왔던 복색은 아니었다. 어디선가 본 적은 있지만, 그게 현실은 아니었다. 한 손에는 주사기를 들고, 반대 손에는 작은 약병을 든 채로 그것은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내며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얼굴은 계란처럼 반들반들한 표면에 어린아이가 눈코입을 그려놓은것처럼 생겼다. 머리카락은 없었고,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몸은 정상적인 사람의 몸인 것 같았지만 어딘가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발목을 무언가가 잡아뜯은 것 같이 생긴 그것은 공중에 뜬 채로, 약병의 물질을 주사기에 담으면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얼어붙은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저것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 말고는 없었다.

있는 힘껏 도망쳐서 어딘가로 들어간 그는, 열려있던 캐비넷 안에 숨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숨소리를 듣고 그것이 다가올까봐 한숨조차 쉴 수 없었다. 잠시 후, 끼익하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잡히면 죽는다, 정말로 죽는다, 제발 빨리 지나가라. 그는 속으로 되뇌였다. 다행히도 그것은 그를 더 찾을 수 없었는지 금세 나갔다.

“휴, 겨우 살았네… “

안도의 한숨을 쉬고 둘러보니, 이 곳은 진료실인 것 같았다. 그가 숨었던 캐비넷 맞은 편에는 책상이 있었고, 뒤에는 책장이 있었다. 책상 위에는 종잇장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의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죽 의자였다. 책장에는 읽어봐도 무슨 내용일 지 모를 것 같은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그 아래 칸에는 파일들이 있었다. 파일들은 환자의 진료 기록인 듯, 월별로 나뉘어 있었다. 책상 옆 옷걸이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설마 또 그것이 있지는 않겠지, 빨리 도어록 건전지를 찾아보자. 진료실 책상을 뒤적인 그는 AA 배터리 두 개를 찾았다. 하지만 보통 도어락에는 AA건전지 네 개가 들어갈 터, 건전지를 더 찾아야 했다. 또 다시 그것이 다가오기 전에 그는 진료실을 빠져나와 1층 복도를 걸었다. 진료실은 그가 숨은 곳 말고도 몇군데가 더 있었고, 진료실 문 앞에는 명패가 걸려 있었다. 명패에는 ‘정신과 전문의’라거나 ‘정신과 교수’라는 말이 써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는 정신병원이였던 모양이다.

다른 진료실도 그가 숨었던 진료실과 다를 바는 없었다. 책상과 의자, 책장, 알 수 없는 책들과 파일, 그리코 캐비넷. 하지만 서랍을 뒤져도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건전지 외에 그가 진료실에서 건진것이라곤 맥가이버칼뿐이었다. 진료실을 나와 1층을 배회하던 그는 화장실을 발견했다. 화장실을 발견하고 보니, 이 병원에서 눈을 뜬 이후로는 배가 고프다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다. 무서워서 경황이 없었나보지, 뭐. 그는 어물쩡 넘겼다.

건전지를 찾기 위해서는 다른곳도 더 둘러볼 필요가 있었지만, 맞은 편 복도로 가기 위해서는 로비를 지나야 했다. 또 그것과 마주칠까봐 그는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에 거의 다 올라왔을 때, 이층 복도를 빙빙 도는 그것을 발견한 그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로비 쪽으로 걸었다. 진료실들을 거쳐 로비를 지나쳐 가니, 또 진료실이 보였다. 진료실들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똑같은 책상에 똑같은 의자, 똑같은 캐비넷, 똑같은 책과 파일.

‘여기도 없나… ‘

하지만 진료실에서 쓸만한 것을 건지지는 못했다. 랜턴 건전지라도 빼서 끼워볼까, 그는 로비로 되돌아가 아까 주웠던 건전지를 도어록에 끼웠다. 딸깍, 하는 소리가 들리자 멀리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또 그것이 오는걸까? 숨을 죽이고, 그는 조심스럽게 다음 건전지를 끼웠다. 딸깍, 흐느끼는 소리가 가까워진 것 같다. 건전지가 들어갈 곳은 이제 두 군데, 그는 랜턴을 열어 건전지를 꺼냈다. 밖에서 들어오는 어슴푸레한 빛에 비춰보자, 건전지는 AA건전지였다.

빨리 그것이 오기 전에 빠져나가야 해, 그는 랜턴에 들어있던 건전지를 몽땅 빼 더듬더듬 도어락에 끼웠다. 딸깍, 그것이 다가온 것 같다. 딸깍, 확실히 그것이 다가왔다. 사이렌과도 같은 소리를 내면서 도어락이 작동하자, 그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도어락 소리를 듣고 다가온 그것을 피해 있는 힘껏 어슴푸레한 빛 쪽으로 내달렸다. 그것은 더 이상 쫓아오지 않고 우두커니 도망치는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어슴푸레한 빛 쪽으로 계속해서 내달렸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달리고는 있었지만 어디가 바닥이고 어디가 벽인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 하늘도 바닥도 전부 어슴푸레한 빛이었다. 멀리서 숲 같은 걸 본 것 같은데, 막상 가까이 왔음에도 숲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어찌되었든, 앞으로 가야 한다. 그는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듯 있는 힘껏 내달렸다.

“헉? “

눈을 떴을 때, 그는 병실이었다. 호흡기가 꽂혀져 있었고, 손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환자가 눈을 떴습니다! “
“임종훈씨, 정신이 드십니까? “
“여긴…… 어디죠? “
“병원입니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간신히 구조했어요. 동승자는… “
“녀석이 깨어났다고? “

의사에게서 막 설명을 들으려던 찰나, 건장한 남성이 들어섰다. 그는 자신을 한정훈 형사라고 소개하며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새끼, 명줄은 기네… 임종훈,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남의 차 훔쳐서 음주운전 했냐? “
“제, 제가요…? “
“그래. 니가 니 친구 몫까지 대답해야겠다, 네 친구는 이미 황천길 건너갔거든. “

구급대원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같이 타고 있었던 친구는 이미 죽은 상태였다. 그리고 종훈은 숨이 붙어있었지만 코마상태였다. 그 차에 치여 여대생 한 명이 죽었고, 차 주인은 재산 피해를 입었다. 그럼 지금까지 있었던 폐병원은 사후세계인걸까? 그는 의아했다. 하지만 아직 성인도 아니고 청소년인 이상 법으로 날 어떻게 할 수는 없지, 그는 당당했다.

“어른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왜 우리는 운전하면 안 되는데요? “
“임마, 너는 무면허에 음주운전에 사람까지 치여 죽였어. “
“그건 거기 있었던 사람이 잘못인거죠. 왜 차를 못 피해요? “
“이 새끼가 아주 당당하네. 오냐, 너는 청소년이라 법이 오냐오냐해준다고 기고만장해서 어깨 빡 세우고 있는거냐? “
“세울 어깨가 없네요, 일어날 힘이 없어서. “

어차피 청소년이라 법정에 서는 것도 아니니 됐어, 그는 픽 웃었다. 어차피 이 사건도 몇 년 후면 사람들 사이에서는 잊혀지겠지. 우리는 잘못 없어, 어른들도 술 마시고 운전 하잖아. 우리는 그저 그걸 좀 일찍 했을 뿐이야. 그 때 죽은 사람이 잘못이지, 그 떄 차를 못 피한 그 사람이 잘못이지.

-으흐흐흣…

그런데, 꿈 속에서 들었던 울음소리가 어째서 지금도 들리는걸까?

그럴 리가 없었다. 그는 확실히 그 폐병원에서 빠져나왔고, 폐병원에서 빠져나와 어슴푸레한 빛 속을 달릴 때 그것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그저 사후세계의 존재이고, 여기는 현실이다. 설마, 그것이 여기까지 왔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그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울음소리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큰일이다, 몸에는 호흡기와 링거가 꽂혀 있어서 움직임도 자유롭지 않은데. 그는 너스 콜을 눌렀지만, 하필이면 이럴 때 너스 콜은 작동하지 않았다. 울음소리가 점점 커져가더니, 이내 그것이 다시 나타났다. 도망치려고 했지만 호흡기 줄까지 달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는 억지로 호흡기를 떼고 링거 봉을 이용해 그것을 쫓아내려고 했지만 이내 손목을 잡혔고, 기다렸다는 듯 그것은 약병에 든 액체를 주사했다.

눈앞이 점점 흐려져가고 있었다. 몸을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숨이 막혀오고, 잠이 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 어라…? “

눈을 뜬 그는 침대에 묶인 채 눈을 떴다. 수술실의 조명이 그를 환히 비추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분명 페인트가 벗겨진 벽에 녹물이 흐른 벽은 아까 그 폐병원이었다. 하지만 이 병원에 수술실이 있었던가? 정신병원에 수술실이 있을 리는 없었다. 그런데 그가 묶여있는 곳은 수술실이었다. 짤그랑, 금속제 도구를 뒤적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몸은 단단히 묶여있었고, 그가 할 수 있는 건 발버둥치는 것 뿐이었다.

움직이면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린 탓인지, 그것이 다가왔다. 한 손에는 긴 송곳을, 다른 손에는 망치를 들고. 그것은 또 다시 주사기를 꺼내 마구 저항하는 그에게 놓았고, 잠시 후 몸에 힘이 빠졌는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그의 눈꺼출을 고정시키기 위한 장치를 가져왔다.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눈을 뜨긴 했지만, 마치 내가 내가 아닌듯한 느낌이었다. 뭔가를 할 의지가 들지 않는다.
나는 누구지? 여기에 왜 들어온거지? 왜 한쪽 눈에서 피가 나는거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뭐라고? 환자가 갑자기 사라져? “
“네… 저희도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 지 모르겠지만,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나서 갔을 때 호흡기와 링거만 남아있고 환자분은 사라진 상태였어요, 병실엔 이상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고요. “
“뭐…? “

병원에서는 환자가 갑자기 사라진 것 때문에 경찰이 출동하고, 괴담수사대도 출동했다. 야나기는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냄새를 맡고, 냄새의 정체라 클로로포름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라우드의 사이코메트리로도 누워 있던 환자가 갑자기 무언가를 보고 겁에 질린 듯 호흡기를 뗴고, 링거를 휘두르다 의식을 잃고 사라지는 모습만이 보였다. 크로노스의 시계를 이용해 과거로 갔던 파이로는, 뭔가 엄청난 것을 본 모양이었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얘기하지 않았다.

“이건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 뭔가 엄청난 것이 개입했어… 단순 마물 수준이 아니야. “
“대체 뭘 본겁니까, 그거라도 말씀해주세요. “
“말해봤자 인간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 다만 한 가지,.. 그 무언가는 청소년을 처벌하지 못 하는 법을 대신해 그 녀석을 벌한거야. “
“하지만 수사를 그렇게 끝낼 수는 없잖습니까… “
“뭐, 그것도 그렇군… 가장 무난한 건 실종으로 마무리짓는거지만 상당히 석연찮은 구석이 있겠지. “

어딘가 찝찝하지만, 실종으로 끝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뿐이었다.

“다음번에는 좀 난이도를 올려볼까… 건전지도 하나하나 따로 숨겨놓는 편이 더 재밌겠지? 도어락에 비밀번호도 걸어두고 말이지… 뭐, 끝까지 해서 도망친 그 용기는 가상하지만… 애초에 지게끔 만들어진 게임에서 룰을 깨고 이긴다면, 나도 룰을 꺠고 데려오면 그만이니까. “

핏빛 붕대를 감은 여자는 폐인이 된 종훈을 보고 만족한 듯 미소를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