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요히메의 말대로 뱀공주를 찾았지만, 그녀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자 파이로는 그녀에게,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담배 냄새를 한번 더 풍기겠다는 협박 하닌 협박을 했다.
“그래… 내 도움이 필요하다니, 대체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이나 좀 들어보자. 따라들 오거라. ”
뱀공주는 일행을 자신이 거처하는 신사로 안내했다.
“인간의 손을 타지 않아 여의치 않지만, 일단 들어오거라. ”
올라올 때 길이 보이지 않았던 것도 그렇지만, 신사는 매우 더러웠다. 아무도 관리를 하지 않는건지 썩어가는 문에, 바람에 날렸는지 끊어진 종이들이 보였다.
“그래… 가짜 뱀공주가 나타나다니,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더냐? ”
“문자 그대로야. 쟈카이 마을에서 죽은 외지인들의 원한이, 가짜 뱀공주를 만들어냈어… 그리고 그 마을은 물론 주변 마을까지 황폐화됐지. 거기다가 그 녀석이 바라는 건 단 한 가지야. 바로, 너에게 제물로 바친다며 자신들을 살해한 마을 사람들의 몰살. ”
“피는 피를 부르는 법이지. 그것은 죄에 대한 벌이니라. ”
“뭐, 인과응보긴 하죠. 원래 토지신은 인신 공양을 받지 않죠? 같은 흙에서 난 존재라서인가요? ”
“그렇지. ”
뱀공주는 후욱,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 녀석들은 토지신의 뱀을 죽였다. 그리고 그게 이 몸이었지… 나는 단지 하얀 뱀이라는 이유로 놈들의 조상에게서 죽임당하고, 그것때문에 인간들을 죽이려고 했었어. 그러자 인간들은 나를 달래려고 공물을 보냈지. 처음에는 짐승의 고기였어.
허나 어느 순간부터 공물에서 흙맛이 나더구나. 검은 여우, 네가 말한 대로 우리는 인간을 같은 흙에서 태어난 존재로 보기 떄문에 먹지 않는다. 그래서 짐승의 고기와 인간의 고기를 구별할 수 있지…
처음에 흙맛이 났을 때는 흙이 묻어서 그런 것인가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고기에서 흙맛이 나더군. 인간들에게 얘기했지만 그 녀석들은 얼버무릴 뿐이었다. …뭐, 어쨌든 공물은 공물이니 나는 그 녀석들에게 은혜를 내렸노라.
그리고 그러다가, 이 녀석을 만난 거지. ”
뱀공주는 애시를 가리켰다. 그것은, 유메지의 일로 인해 수사대가 왔을 때였다. 외부인을 잡아서 뱀공주에게 제물로 바쳐왔었던 것을 애시가 말했던 그 때.
“나는 그 떄 매우 충격을 받았었다. 지금까지 내가 먹은 고기에서 흙맛이 났던 이유는, 인간들의 고기였기 떄문이었다니. 그리고 나는 내가 죽임당했던 신사로 가 봤지. 거기에는…
인간의 머리들이 나뒹굴고, 인간의 뼈가 나뒹굴었으며, 아직 흙으로 돌아가지 못 한 육신들이 잠들어 있었느니라. ”
“!!”
“근데 단순히 그런 정도면 그냥 벌을 내리면 장땡 아닌가? 왜 마을을 떠났던거냐? ”
“물론 네녀석 말대로 벌만 주고 끝났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느니라… ”
뱀공주는 아직도 분노가 가시지 않는지,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 녀석들은 아예 이전 마을에는 발도 들이지 않았느니라. 아마노테만 신사를 관리하러 가끔 올 뿐이었지. 그 후 놈들이 왜 지금까지 공양을 바쳤는가를 알게 된 건, 아마노테가 신사를 관리한 후였다. 아마 놈들은, 인간들의 잔해를 치우려고 온 모양이겠지만… 나는 그 때 분명히 들었느니라.
“이 일, 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거지? ”
“조금만 기다려. 곧 녀석이 벌을 내릴 거야. 그렇게 된다면 그걸 빌미로, 녀석에게 주는 공물도 없앨 수 있어. ”
“휴우… 어째서 토지신의 뱀을 죽여서 우리만 이 고생인거냐고. ”
“맞아. 그놈의 전통, 전통… 쯧. ”
“그나저나 녀석이 인간을 공양받은 걸 눈치채면 어쩌지? ”
“설마 금방 눈치 채겠어? 몇 번이나 공양했지만 그 떄마다 잘 먹던데. ”
“그렇겠지…? ”
그 녀석들은, 내가 징벌을 내리면 그걸 빌미로 나에게 더 이상 공양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일부러 인간을 공양하고 벌을 내리기를 기다렸던게지… ”
“제를 지낼 때마다 귀찮아하고 있는 건 보였지만 그 정도였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네. ”
“심지어 그 녀석들의 조상이 나를 죽여 이렇게 만들었느니라. ”
“그래서 그 녀석들이 제를 주도적으로 했던 거로군? ”
“카나 씨는 쟈카이 마을 출신이었죠? 그럼 뱀공주에게 올리는 제에 대해서 가르쳐주세요. ”
“저도 마을을 나온 지 오래 돼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
카나는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뱀공주에게 올리는 제에는 공물로 그 해 수확한 과일과 고기가 올라가요. 그리고 그 공물을 준비하는 것은, 조상이 토지신의 뱀을 죽였다고 하는 가문… 그러니까, 미야시(宮氏)가에서 주도하곤 했죠. 어릴 적부터 쭉 그래왔고요.
공물을 준비하는 건 미야시 가의 장남이나 장녀가 해야 하고.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이 공물을 만지거나 하면 부정탄다고 손도 못 대게 해요. 남자는 고기를 준비하고, 여자는 과일을 맡는데, 만약 여자 형제가 없다면 엄마가 해야 하고, 엄마도 없다면 차남이 해야 해요.
과일은 직접 농사를 지은 것으로 해야 하며, 고기 역시 공물을 올리는 자가 직접 짐승을 도축해야 해요. 그래서 지금껏 산짐승을 사냥해서 바쳤던 거고요. 인신공양도 금기시 됐지만, 외지인의 손을 탄 공물을 바치는 것 역시 부정탄다고 금지했죠. ”
“그렇군요… ”
“그렇게 제를 올리고 나면, 다음 해 농사도 항상 풍년이었죠. ”
“본질은 토지신이니까. ”
제를 더 이상 지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인신공양을 했다, 그것도 징벌을 노리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쟈카이 마을을 떠났고, 그 후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없어지자 가짜 뱀공주가 생겨난 것이다.
“아마도 그 뱀공주는 지금까지 자신을 죽여온 미야시 가의 장남, 그 녀석의 피를 원할 것이다. 너는 쟈카이 마을 출신이니, 그 녀석이 누구인지 아느냐? ”
“미야시 카케루. 그 녀석이었어요… 쌍둥이 동생으로 미야시 슈우가 있죠. ”
“카케루라… ”
뱀공주는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했다. 신사 안에는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삐걱, 밖에 바람이 부는지 문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릴 무렵, 그녀는 눈을 뜨고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모두를 둘러봤다.
“가짜 뱀공주는 그 녀석을 노리는 것이니라. 자신들을 나에게 마치겠다고 죽여온 그 녀석을 말이다. ”
“그럼… 그 녀석의 목적은 카케루라는건가요? ”
“그렇다. 지금쯤 그 녀석은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카케루라는 녀석의 피를 노릴 것이니라. 혹여 속이기 위해 쌍둥이 동생을 제물로 바친다면, 녀석은 길길이 날뛰어 모든 이의 생명을 거둘 것이야… ”
“그 녀석을 막을 다른 방법은 없나? 원한을 정화한다던가… ”
“네녀석도 유령이니 알 것 아니냐. 억울하게 죽은 자가, 그것도 자기 시체가 훼손된 자가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설령 그런 방법이 있다 한들 들을 것 같으냐? 그렇게 해서 진정됐으면 너희들이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을 것이야. ”
“…… ”
“신사가 있던 곳이 황폐해 진 이유는 죽어서도 시체가 훼손되어 편히 눈을 감지 못 한 그들의 억울함이, 저주가 되었기 떄문이니라. 내가 있는 동안은 토지신에 눌려서 나오지 못 했던 저주가, 내가 그 땅을 떠난 후에 한꺼번에 나온 것이니라. ”
파이로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죽일 수 밖에 없는건가. 그녀 역시 시체를 잃어버리고 미쳐 날뛰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검은 뱀도 마찬가지라면, 원한을 풀어줄 수 없다면 차라리 이승에서 사라지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녀석들은 단지 제를 지내기 싫어서 이유없이 인간들을 죽였고, 그것때문에 쌓여버린 원한이 벌이 되어 돌아가는 것이다. ”
“…그렇다면 최후에는, 내가 직접 태워버리는 수밖에 없겠군… 나도 그런 놈들과 같은 부류였어서 잘 알지… 그들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 ”
파이로는 등 뒤의 가윗날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집에서 죽었어. 오래 전에 죽었지만 시체가 파묻혀 있었고, 그걸 어떤 녀석이 태워버려서 시신이 없지. …그리고 내 시체를 파묻은 녀석에 대한 원한으로 인간들을 죽여버렸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인간이 싫어서. …그 녀석도 그런 거라면, 그 원한마저도 남지 않게 이승을 떠나게 해 주지. ”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정말로, 최악의 순간이 온다면 녀석을 혼불로 태워버리리라. 그 원한마저 전부 다.
“…죄를 지은 자에게 벌은 따라오고, 인간의 피를 묻힌 자는 편히 살 수 없느니라.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이미 죽은 자인 너는 그 이치를 따르지 않겠지만,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그렇지… ”
“공주님, 쟈카이 마을로 돌아갈 생각은 없나요? ”
“나는 이제 이 곳이 편하느니라. 그리고 내가 간다 한 들 뭐가 달라지겠느냐? 인간들은 자신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서는 금방 잊어버리는데. ”
“…… ”
“대신 너희에게 그 녀석과 맞설 수 있는 무언가를 주마. ”
뱀공주는 낡은 상자에서 부채와 대롱을 꺼냈다. 가늘고 무늬가 군데군데 있는 대롱은, 뚜껑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부채에는 곡옥 두 개가 달려있었다.
“이것은 대롱여우니라. 이 곳에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지만, 이제 주인을 찾은 것 같구나. 그리고 이것은 아마키츠네오우기(天狐扇)이니라. 역시 내가 여기 왔을 때 발견한 것이니라. 하나씩 받거라. ”
그리고 뱀공주는 대롱을 키츠네에게, 부채를 쿠로키에게 건넸다.
“그 대롱여우는 땅의 힘을 가지고 있느니라. 그리고 그 부채에는 바람의 힘이 들어있지. 아마 녀석을 무찌르는 데 도움이 될게다. …그럼, 녀석을 진정시켜주게. ”
“…뭐, 네녀석이 돌아가지 않겠다는데 억지로 끌고 가지는 않을게. 그 녀석, 우리가 꼭 해결할게. ”
일행이 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저녁나절이었다. 하룻밤 머물 여관을 찾고, 여관에 들어간 일행은 다음 날 쟈카이 마을로 향할 것을 약속하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