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7. The last game of Laplace(상)

「당신은 합격입니다.
그 동안 정체를 숨기면서 여러 사람들을 시험했지만,
당신같은 사람은 보지 못 했습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

“여, 나 왔다. …응? 뭐야, 이 여우는? ”
“누구세요? ”

명계에 갔던 파이로가 업무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그녀가 본 것은, 그새 늘어난 식객…들 중에서도 키츠네였다.

“어, 파이로 씨! ”
“여, 현. 얘 누구냐? ”
“아하, 이 분은 괴이사냥꾼인 키츠네 씨예요. 키츠네 씨, 예전에 말씀드렸던 파이로 씨예요. ”
“아… 이 분이구나. ”
“그런데 파이로 씨, 명계에서 볼일 보신다던 건 다 끝나신거예요? ”
“응. 서류 처리 다 끝내고, 새 몸도 받아왔지. 가윗날 숨기는 부적도 머리끈으로 바꿔갖고 왔어. 미기야 있냐? ”
“아, 네. 잠깐만요… 오너, 파이로 씨 오셨어요- ”

사무실 안에서 볼일을 보던 미기야가 밖으로 나왔다. 그 옆에는 애시도 같이 있었다.

“어라, 너… 파이로? ”
“뭐야, 진짜 괴이 달고 사는거냐… ”
“딱히 달고 싶어서 다는 거 아니거든요… 명계에서 볼일 보신다는 건 다 끝나신거예요? ”
“어. 새로 몸도 만들었지~ 참, 이거 선물. ”

파이로는 미기야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길쭉한 상자를 열어보니, 붓이 들어있었다.

“부적 들고 다니기 귀찮다매. 그 붓으로 어디에든 끄적거리면, 주술을 쓸 수 있지. ”
“와우. 꼭 필요했는데… ”
“후후, 너 유령이구나? ”
“죽은 지 꽤 됐지. 그나저나 도대체 이 녀석은 뭔데 핸드폰을 넘어서 오는거냐? ”
“우후후, 나는 거울이 있으면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거든~ 꼭 거울이 아니어도 상관 없지만… ”
“그런가- 그러고보니 들어본 적 있는 것 같군. 괴이를 먹어치우는 괴이, 애시 리스트로베라. ”

파이로가 오랜만에 사무실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있을 때,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
‘라플라스입니다. ‘
“라플라스 씨…? 이번엔 무슨 일인가요? ”
‘마지막 게임을 하실 때라서 말이죠. ‘
“…… ”
‘미기야 씨도 아실거예요. 최근 F 실험동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사건… 뉴스에는 잘 나지 않았지만요. ‘

사실 뉴스에 나오기는 했지만, 잠깐 비추고 말았던 살인사건이다.
피해자는 전부 탈모가 일어나더니 쓰러져서 죽었다. 범인은 나오지 않았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초능력으로 사람을 살해하는 청부살인업자가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리고 정계에서 실험 내용을 비밀로 하기 위해서 암살을 하려고 한다는 얘기도 있었고, 신약을 테스트하다 부작용이 나서 죽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온갖가지 유언비어가 있었지만 범인은 오리무중이라는 그 사건.

“들어본 적 있습니다만… ”
‘그럼 잘 아시겠네요. 온갖가지 유언비어가 떠돌고 있는 그 사건… 마지막 게임은, 그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겁니다. ‘
“……?????? ”
‘그럼 전 이만. ‘

역시 뜬금없었다.

“무슨 일이냐? ”
“라플라스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서, 수수께끼를 내고 있거든요. ”
“아아, 전 세계의 유능함 탐정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있다지. 끝까지 통과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
“…아세요? ”
“명계에도 소문이 파다해. …설마, 난제신 라플라스는 아니겠지… ”

난제신 라플라스라, 그런 신이 우리에게 연락을 할 리가 없지.

“그나저나 문제가 뭐냐? ”
“이번이 마지막 문제라면서, 최근에 일어났던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아달래요. ”
“아, 그 실험동 살인사건? ”
“네. ”
“되게 유명하던데. 어떤 사람은 토하다가 죽고, 어떤 사람은 설사라다가 죽고… 공통적인 증상으로 탈모가 있긴 했는데, 몇몇 피해자는 평소에도 스트레스 탓인지 탈모가 있었대. 다 모이면 현장으로 한번 가 보자. ”
“네. 마침 알고 지내는 형사분도 계시니, 한번 전화 해 볼게요. ”

미기야가 정훈에게 전화를 거는 동안, 밖으로 나갔던 라우드가 돌아왔다. 라우드 역시 오랜만에 보는 파이로의 얼굴이 반가웠는지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또 라플라스가 수수께끼라도 낸 거야? ”
“아아, 응. 실험동 연쇄 살인사건. ”
“아하. 너 볼일은 다 끝난거야? ”
“어. ”
“그렇군- 어, 오너. ”
“아, 라우드 씨. 마침 잘 왔어요. 라플라스가 마지막 수수께끼를 냈는데, F 실험동의 연쇄 살인사건을 수사해달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정훈 씨에게 연락했더니, 그 쪽 담당 형사님께 얘기해둘테니 현장으로 가 보라세요. ”
“그럼 가야죠. 현, 가자. ”
“네. ”

일행은 F 실험동으로 출발했다.

실험동에 도착하자, 정훈에게 연락을 받은 담당 형사가 나와 있었다. 형사는 담배를 태우면서, 미기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괴담수사대에서 나왔습니다. ”
“아, 안녕하세요. 정훈이 연락은 받았습니다. 저는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김재석이라고 합니다. ”
“유키나미 미기야입니다. 그리고 이 쪽은 위현, 저스티스 라우드, 파이로, 애시 리스트로베라예요. ”
“아.. 반갑습니다. 안 그래도 수사 막 시작하려던 도중이었는데, 협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네. ”

재석과 가볍게 악수를 나눈 미기야는, 실험동 안으로 들어갔다.

“피해자들은 여기서 일하고 있었군요. 흐음… 일단 담당 교수님을 만나뵐 수 있을까요? ”
“네. 저 쪽에 계시는 이남현 교수님이 이 실험동 담당이세요. ”
“그렇군요… ”

재석이 가리킨 곳에는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사각 뿔테 안경을 쓰고, 희끗희끗한 머리를 가르마를 타게 빗어넘긴 남자. 캐주얼한 옷을 입고는 있었지만, 딱 보기에도 높은 직위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괴담수사대에서 나왔습니다. 혹시 이 실험동 담당이신 이남현 교수님이신가요? ”
“아, 네. 제가 이 실험동 담당 교수입니다. ”
“실험동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요. ”
“물어볼 게요? ”
“네. 일단 교수님, 혹시 실험실 안에서 특별히 사이가 안 좋은 연구원들이 있었나요? 확실하지는 않더라도 그런 낌새가 보인다던가요. ”
“음… 사실 연구원들이 교수에게 그런 걸 티 내는 경우는 드물죠. 그런데도 사이가 안 좋은 게 티가 나는 두 연구원이 있긴 했어요. ”
“혹시 두 연구원이 다 피해자인가요? ”
“아뇨, 한 명은 한달 전에 그만 뒀습니다. 그 후로도 짐때문에 드나들긴 했지만, 그 때는 현장에 제가 있어서 별 일은 없었습니다. ”
“그렇군요… 그럼 다른 연구원은……? ”
“다른 연구원은 어제 복통 증상을 호소하고 일찍 집에 갔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니 걱정이네요… ”
“음…… 그럼 그 두 연구원들을 빼고 나머지는 딱히 원한 관계를 가질만한 사람들이 없었겠네요. ”
“네. 딱히 그럴 만한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
“교수님- ”

복도를 가로질러, 막 출근했는지 가방을 들고 여자 한 명이 다가왔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청바지에 반팔티를 입고 출근한 걸 보니 급하게 온 모양이었다.

“아, 현아구나. ”
“이 분은 누구세요? ”
“실험동에서 있었던 사건을 수사하러 왔대. 괴담수사대의 유키나미 미기야 씨. ”
“아, 안녕하세요. 최현아예요. ”
“안녕하세요, 유키나미 미기야입니다. ”
“그나저나 빨리 범인 좀 잡아주세요… 어제 배 아프다고 일찍 갔던 언니도 실려가셨거든요…… 아침에 전화 해 봤는데, 언니네 어머님이 언니가 실려갔다고 하셨어요. ”
“실려갔다고요? ”
“네. 배가 좀 아프다고 하다가 잠잠해져서 이제 좀 괜찮은가 싶어서 갔는데, 미동도 없더래요. ”
“!!”
“서, 설마… 미연 언니도 피해자인 건…… ”
“잠시만요- 형사님! 형사님! ”

미기야는 석재에게 황급히 달려갔다.

“아, 미기야 씨. 무슨 일이십니까? ”
“형사님, 이 실험동에 있었던 연구원 하나가 응급실에 실려갔대요. ”
“…네? ”
“막 출근한 연구원이 연락을 해 봤는데, 복통을 호소하다가 갑자기 미동도 없어서 실려갔대요. ”
“이번엔 복통인가… ”
“그리고, 실험실에 특별히 원한 관계가 있는 연구원은 없었어요.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 둘 있었는데, 한 사람은 한달쯤 전에 그만 뒀고 지금은 짐때문에 잠깐 드나드는 사이고요. …근데 좀 석연찮은 게, 응급실에 실려간 연구원이 한달 전에 그만둔 그 연구원과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
“확실히 뭔가 석연찮네요… 이따가 병원으로 가서 얘기해봐요. ”
“네. ”

미기야와 현, 석재는 연구원이 실려간 응급실로 갔다. 하지만 한 발 늦었는지, 연구원은 보이지 않고 연구원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만이 있었다.

“실례합니다. ”
“흐윽… 흐윽…… 누구……세요…? ”
“경찰입니다. ”
“경찰……? 흐윽- 저희 미연이… 미연이를 이렇게 만든 범인 좀 잡아주세요! 흐윽…… ”
“진정하시고, 무슨 일인 지 말씀을…… ”

형사를 붙들었던 중년 여성의 손이 미끄러지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미기야의 뒤를 따라온 현은 그 여성을 보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
“현! 어머님 좀 부축…… 현? ”
“할머니…… 할머니…… ”
“현, 왜그래? ”

미기야가 현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지만, 현은 이미 정신을 놓아버렸는지 무언가를 중얼거릴 뿐이었다. 미기야는 석재에게 양해를 구하고, 현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애시가 들어있던 거울을 꺼내자, 애시가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로 날 부른 거야? 마카롱이라도 사 온거야? ”
“지금 농담 할 때가 아니예요… ”
“알아. …현? 왜 이래? ”

애시가 현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가 어깨를 잡아 흔들었지만, 현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무슨 일이야, 왜 이래? ”
“그게… 피해자의 어머니가 통곡하는 모습을 보더니…… ”
“…… ”
“갑자기 이렇게 돼서, 무슨 영문인 지 모르겠어요…… ”
“…… ”

애시는 가만히 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녀석의 힘이 있어야겠는걸… ”
“그… 녀석이요…? ”
“리바이어던. ”

리바이어던이라면, 심연 속으로 들어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다는 괴물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없었지만. 그런데, 리바이어던의 힘이 필요하다니?

“아무래도, 현에게 무언가 상처가 있는 것 같아. …아까 어머님이 우셨던 것과 관련이 있을 거야… 리바이어던이라면,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분명 도와줄 수 있을거야. …잠시만. ”

애시가 거울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밖으로 꺼내자, 까만 것이 붙들려 나왔다. 이내 까만 것을 반쯤 꺼내자, 까만 것은 감았던 눈을 떴다. 붉은 공 같은 눈이 여섯 개, 얼굴 주변에 희고 뾰족한 이빨을 두른 리바이어던.

“어, 애시구나. 무슨 일이야? ”
“리바이어던, 이 아이의 마음 속을 들여다봐 줘. 무슨 상처가 있었는지… ”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긴 하네… 잠시만. ”

쑤욱, 튀어나온 리바이어던은 현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도 않았는데 밖으로 튀어나온 리바이어던은, 뭔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생각보다 심각해. ”
“……? ”
“이 녀석, 한쪽 눈의 색이 달라. …왼쪽 눈에 렌즈를 끼고 있어. ”
“렌즈…? ”
“응, 렌즈. 색깔이 있는 렌즈… 원래의 눈은, 짙은 보라색이야. ”
“…… ”

리바이어던이 들여다본 것은, 현의 과거였다.

현의 부모님은 어릴 적, 맞벌이를 하고 있었다. 두분 다 실험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교수와 제자 사이로 만나 결혼에 골인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현이 부모님의 실험실로 놀러갔던 날이었다.

그 날 실험실에서 일어난 사고로 인해 양친은 목숨을 잃었고, 현은 코마 상태에 있었다. 정신을 차린 그녀가 일어났을 때, 할머니가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이미 양친은 현을 지키느라 큰 부상을 입고 돌아가신 상태였다.

거울을 본 현은 왼쪽 눈이 짙은 보라색으로 변한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눈에 보여서는 안 될 것이 보인다는 것 때문에 놀랐다. 퇴원을 한 후, 현은 한동안 한쪽 눈을 안대로 가렸다. 학창시절, 괴롭힘도 많이 당했었다. 안대가 벗겨진 적도 있었다. 렌즈를 사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괴로웠다…

여기까지가 리바이어던이 본 과거였다.

“…… 그런…… ”
“아무래도, 그 때의 일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기도…… ”
“괜찮을까… ”
“괜찮아. 나는 심연 속을 들여다보는 것은 물론, 심연 속의 존재와 대화를 나눌 수 있거든. 잠깐이면 돼. 잠시만. ”

리바이어던은 다시 현의 몸 속으로 쑥,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