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수사대는 C구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그것은, 어느 남성의 의뢰였다.
며칠 전 사무실에 찾아왔었던 그는, 얼마 전 아내와 아이가 죽은 후 집에 기현상이 생겼다며 이를 해결해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그리고 괴담수사대는, 이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그 남자의 집에 도착했다. 아파트 단지 자체는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외관도 화려했고, 단지 내에는 입주민 전용으로 여러가지 편의 시설도 있었다. 카페나 놀이터는 물론 피트니스 센터나 무더위 쉼터같은 곳도 있었다.
“요즘 아파트들은 하나같이 겉멋이 엄청 들었군. ”
“엥? 겉멋? ”
“생각해봐, 십몇년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에 이런 시설같은 거 없었잖아. 광장같은 빈 공간이 있고 거기서 가끔 바자회나 하는 정도였지, 지금처럼 이런 거창한 시설같은 거 안 지었잖아. 공동현관 같은 것도 없었고. ”
“그건 그렇지… ”
“저는 그 때 한국에 없었으니 논외로 하겠습니다. 여기서 101동으로 가야 하는데… ”
미기야는 공동현관 앞을 지키고 있는 경비에게 101동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살아있었다면 미기야의 아버지뻘 되었을 남자는, 어딘가를 가리키며 101동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101동은 꽤나 구석진 곳에 있어서 찾기가 힘들었지만, 겨우겨우 101동을 찾은 미기야는 공동현관을 통해 203호를 호출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수사대원들은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랐다.
“어서오세요, 안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꽤 기다리고 있었는지 남자가 괴담수사대를 맞았다.
“……! ”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서던 파이로가 본 것은, 바닥과 벽에 있는 핏자국이었다.
“이게 사무실에서 말했던 기현상이라는거야? ”
“네. 아침이건 저녁이건 상관없이 항상 이런 게 집 안에 보입니다. ”
“음… ”
핏자국은 단순히 사건 현장에 있는 혈흔과는 달랐다. 아니, 애초에 사건 현장에 있는 혈흔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생겨날 리 없다. 자기 집에 혈흔이 묻어있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는데다가, 살인 사건이 있었다고 해도 범인은 어떻게 해서든 혈흔을 지우려고 혈안이 된다. 자신이 사는 공간이나 자신이 입는 옷에 피가 묻는다는 건, 별로 좋은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피가 묻어있다면, 어떤 방법을 써서든 지우려고 할 것이다.
“확실히 이상하네요. 게다가 이건… 발자국이예요. ”
혈흔은 발자국의 모양을 띠고 있었다. 어지러이 찍혀있었지만 초등학교에 갓 들어갔을법한 아이의 발자국이 하나, 어른의 발자국이 하나, 그리고 조금 작은 아이의 발자국이 하나 있었다. 벽이나 소파 등에 찍혀 있는 손 모양도 마찬가지였다.
“라우드 씨, 뭔가 보이나요? ”
“8살은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랑, 그것보다 좀 더 작은 남자아이… 그리고 젊은 여자가 한 명 보여요. ”
“아이랑 여자는 어떻게 생겼나요? ”
“그냥 펑범한 아이들이예요. 여자는 머리를 하나로 묶었는데, 흰색 곱창 머리끈이 보여요. ”
“혹시 이렇게 생겼나요? ”
남자는 핸드폰에 저장되었던 가족 사진을 라우드에게 보여줬다. 유원지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인지, 네 사람이 단란하게 웃고 있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사라진 세 명이 라우드가 영상에서 봤던 두 아이와 젊은 여자였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걸까요? ”
“글쎄… 망자가 뭔가 할 말이 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산 자를 괴롭히는 것도 도리는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저들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같은 거 없을까? ”
“글쎄요… 일단 불러모으든가 해야 할텐데… ”
파이로와 미기야가 고민할 동안, 현은 혈흔을 따라 집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작은 발자국 두 개를 따라가보면 아이의 방이 나온다. 방 한쪽에는 이층 침대가 있었고, 그 앞에는 알파벳과 한글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아마 아이가 한글을 뗄 시기에 붙였던 모양이다. 포스터의 옆에는 공부용 책상과 옷장, 그리고 책장이 놓여있었다. 발자국이 향한 책상 밑에는 아이들이 주로 가지고 놀던 것인지, 장난감이 가득 쌓여있는 상자도 보였다. 책상 밑에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모양인지, 장난감 상자에 손자국이 보이기 시작했다.
큰 발자국은 부엌 쪽으로 향했다. 저녁이라도 만들 요량인건지 손자국은 냉장고애서 시작해 싱크대에까지 찍혀있었다. 싱크대에서 시작된 손자국은 도마로, 식칼로, 그리고 인덕션으로 옮겨갔다. 남편과 아이를 위한 저녁 식사를 만들 요량인 듯 했다.
“뭔가 보여? ”
“아뇨. 하지만 눈을 쓰면 뭔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 혈흔들, 마치 살아있는것처럼… 자신이 살아있을 때 했던 일을 그대로 하고 있어요. ”
현이 안경을 벗자, 방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두 아이와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여자가 보였다. 죽은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생했다.
“방에서 두 아이가 놀고 있어요. 그리고 부엌에서는 여자가 요리를 하고 있고… ”
“혹시 아까 그 사진 속 세 사람이야? ”
“네. ”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지만, 쌓여있는 장난감 상자에는 혈흔이 생긴 것 외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마찬가지로, 여자가 요리를 하고 있었지만 혈흔이 왔다갔다 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요리도 되고 있지 않았다.
“현, 라우드. 이만 돌아가자. ”
“네? 해결은 어쩌고요? ”
“일단 임시방편으로 부적을 줬어. 이거 당장은 해결 못 해. ”
남자의 집을 나왔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 붉은 노을이 보이고 있었다. 딱 장을 보고 저녁을 할 시간이었다.
“영안으로 본 세계는 어땠어? ”
“사진 속 두 아이와 아내가 그대로 있었어요. 죽은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생했어요. 사진 속 그 모습 그대로… ”
“음… ”
“그건 왜 물어보는거야? ”
“뭔가 집히는 게 있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 뭔가가 있어. 원혼같은 게 집에 혈흔을 남긴다면 카페트같이 액체가 스미기 쉬운 재질에는 피가 묻어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아까 혈흔을 유심히 봤을 때 그런 게 없었어. 카페트가 깔려있었지만, 카페트는 깨끗했지? ”
“그러고보니 소파나 벽, 바닥에도 전혀 남지 않았어… ”
“냉장고나 장난감 상자에도 전혀 묻지 않은 것 같았어요. ”
혈흔은 분명 눈에는 보였지만, 어느 곳에도 묻지 않았다. 바닥이야 장판의 재질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보통 피가 묻는다면 가죽 소파여도 조금은 묻어나게 되어 있다. 가기다가 카페트나 방석같이 물이 스미기 쉬운 천 재질이라면, 피가 묻는 것을 넘어서 피 얼룩을 빼는것조차 힘들 정도로 곤란해지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의 집에서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
“아내와 아이가 죽은 이유는 뭐라고 하던? ”
“거기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던데요. 저도 실례되는 질문이라 물어보진 못했고… ”
“일단 지금은 세베루스 씨를 통해서 내가 먼저 조사해볼테니, 너희들은 들어가. 시간이 꽤 늦었어. ”
다른 수사대원들이 집으로 돌아가자, 파이로는 세베루스에게 연락해 오늘 현장에 갔던 이야기를 했다.
“혈흔이요? ”
“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단 말이죠… 카페트나 소파에 있는 방석같은 데 하나도 묻어나지 않았어요. 거기다가 죽은 아이들과 아내를 본 수사대원의 말에 따르면, 죽은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대요. 별다른 해를 끼칠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마치 그대로 살아가는것처럼… ”
“그대로… 그대로라… 파이로 씨, 사망자 이름은 아시나요? ”
“사망자 이름까지는 모릅니다. 실례되는 질문일 것 같아서 언제 죽었는지도 물어보지 못했대요. 이 쪽에서도 알고 있는 정보는 아내와 아이 둘이 한날 한시에 죽은 것과 이 현상이 아내와 아이가 죽은 후 생겼다는 것 뿐이예요. ”
“그 현상이 생긴 지 얼마나 됐죠? ”
“얼주 한 달은 됐을거예요. ”
“아버지를 제외한 일가족이 사망, 얼추 한달… 거기다가 기현상까지… 아, 나왔습니다. 잠시만요. …어? ”
전화기 너머로 뭔가 확인하던 세베루스가 놀라는 음성이 들렸다.
“파이로 씨, 남편분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
“유종훈이요. ”
“유종훈… 유종훈……. 맞아요, 이 사람들. 명계에서도 서류 처리가 안 돼서 찾고 있었어요. ”
“그렇다는 건, 그쪽에서 사람이 와야 한다는거군요. ”
“그런데… 이 사람이 왜 스틱스에 등재된거죠? ”
“예? ”
“이건 관리자님께 열람 허가를 받아야 해서, 바로는 조회할 수 없어요. 조회 되는대로 다시 연락드릴게요. ”
다음날, 파이로는 세베루스와 통화하면서 나눴던 이야기를 수사대원들에게 전부 얘기했다.
“스틱스? ”
“그래서 바로는 조회가 안되고, 관리자들 통해서 허가를 받아야 하나봐. 알아보는대로 연락 준대. ”
“스틱스가 뭔가요? ”
“자살의 원인 제공을 한 사람이 적히는 명부야. ”
그 날 저녁, 파이로는 세베루스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서류 처리가 안 된 영혼이라는 얘기를 들은 관리자가 바로 허가해줘서 데이터를 열람했다는 것과, 남자가 스틱스에 등재된 원인은 자기 가족을 자살로 몰았기 때문이라는 것.
“자기 가족을 자살로 몰았다고요? ”
“네. 아직 관련 인물들이 명계로 넘어오지 않아서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네요… ”
“허어… ”
“아마 내일 명계에서 사람이 하나 갈겁니다. 사정 청취 겸, 서류 처리 겸 해서요. 그 분과 같이 가시면 될겁니다. ”
다음날, 세베루스의 말대로 사무실에 정장을 차려입은 남성 한 명이 괴담수사대 사무실로 왔다. 검은 재킷 안에 칼라가 없는 흰색 셔츠를 단정하게 받쳐 입은, 손바닥이 없는 장갑을 낀 금발의 남성이었다. 그는 자신을 ‘타임’이라고 소개하면서,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세베루스 씨를 통해서 얘기는 들었습니다. 지금 그 집으로 가실건가요? ”
“네, 안그래도 막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
“그럼 바로 가시죠. ”
예의 그 집에 도착하자, 여전히 혈흔이 어지러이 찍혀있었다. 영안으로 집을 보고 있는 현의 눈에는, 집 안에서 세상 모르고 뛰어노는 두 남자아이와 소파에 앉아 있는 여자가 보였다. 수사대원과 함께 온 타임이 들어서자, 혈흔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것처럼 멈췄다.
“귀여운 아이가 두 명, 저 쪽에 어른이 한 명. 저 쪽이 어머니인가봐? ”
“……! ”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해치지 않을게. 아저씨는 너희들이 왜 여기에 있는건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온 거야. ”
이곳저곳에 어지러이 찍혀 있던 혈흔들이 타임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작은 발자국 두 개가 먼저 다가와 멈추자, 커다란 발자국도 이내 다가와 멈춰 섰다. 그리고 잠시 후, 발자국이 사라졌다.
“발자국이…? ”
“사정 청취가 끝났으니까, 이 세 명은 나와 같이 가게 될 거야. 그리고 당신. ”
발자국들과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때와 달리, 한결 무거운 표정으로 종훈을 거리킨 타임은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사랑해 마지 않는 가족들을 모래알 한 알같은 의심으로 인하여 죽음으로 몰아간 것을, 평생 후회하며 살게 될 겁니다. ”
“……! ”
“죽으면 후회가 끝날거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은, 죽어서도 후회하게 될 테니까. 그럼, 이만 돌아가시죠. ”
수사대원들은 타임과 함께 아파트를 나왔다. 아파트를 나서는 타임의 옆에는, 젊은 여자와 남자아이 두 명이 한쪽 손목에 티켓을 찬 채 나란히 걷고 있었다.
“이제 타임씨는 돌아가시는건가요? ”
“네. 오래된 역으로 가서 명계행 열차를 타야 하니까요. ”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된 사연이길래 스틱스에 등재된걸까? 자기 가족을 자살로 몰다니… ”
“여러분들은 혈액형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
“생물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죠. ”
“그럼 AB형과 O형 사이에서 O형이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게… 가능하던가요…? ”
“가능해. ”
한참 무언가를 생각하던 파이로는, 종훈이 가족들을 자살로 몰고 간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뭔지 알 것도 같군. 둘 중 한쪽이 cis-AB형이었지? ”
“cis-AB요? ”
“우리가 생각하는 ABO식 혈액형, 그리고 그 유전법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A형과 B형이 각각 두 혐색체의 한 쪽을 차지하고 있어야 해. 하지만 cis-AB는 A형과 B형이 한쪽으로 쏠려있기때문에 둘 중 한쪽이 cis-AB형이라면 O형과 결혼했을 때 O형이 나올 수 있지. ”
“잘 알고 계시군요. ”
“어느쪽이 cis-AB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아마 남편쪽이 등재됐다면 아내가 외도한 걸로, 아이들은 외도로 낳은 자식으로 의심했겠지. cis-AB까지는 생물시간에 다루지 않아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일이 왕왕 있긴 해. 그래도 참 멍청하네, 친자검사를 해 보면 될 것을 덮어놓고 의심부터 해서 사랑하는 가족도 죽게 만들고 영원히 후회하게 됐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