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네. 공양물도 거들떠 보지 않다니… ‘
공물로 온 과일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여자는 신사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신사는 정리를 안 한지 꽤 오래 돼서 너저분했을 터였다.
‘신사는 오래 전부터 아무도 관리를 안 했다고 하던데…? ‘
그녀는 다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아마노테 씨, 이 곳을 떠나 있었던 게 언제부터였나요? ”
“어느 순간 뱀공주가 이 곳을 떠나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어요. 아마… 10~15년정도 전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
“그럼 그 후로 뱀공주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는거죠? ”
“네. 기운이 약하게나마 느껴지는 걸 보면 어디엔가 분명 계시겠지만, 확실히 어디에 있는 지는 모르죠. 아마 그 분도 제가 떠난 후 여기를 곧 떠나시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
“하긴,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속이고 인육을 공양했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
“그런데 그건 왜…? ”
“아, 그게… 저 신사 쪽에서 뱀공주를 본 것 같아서요. ”
“네?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
쿠로키는 아마노테에게 자신이 본 것을 얘기했다. 검은 뱀의 몸통을 가진 여자가 신사에 있었던 것과, 공물로 바쳐진 과일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는 것을…
“뱀공주님은 검은 뱀이 아니예요. 그 분의 몸통은 하얀 색인데…? ”
“그럼 저 뱀은 대체……? ”
“일단 돌아가서 얘기해봐요. 키요히메라면 뭔가 알 지도 모르고,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들키기라도 하면 별로 좋지 않을거에요. ”
“네. ”
아마노테는 쿠로키와 함께 키요히메를 찾아가, 쟈카이 마을에서 있었던 일과 쿠로키가 본 검은 뱀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니까, 뱀공주는 원래 하얀 몸통을 가졌다는 얘기죠? 하지만 쿠로키 씨가 그 곳에서 본 건 검은 뱀이라는거고요.. ”
“네. 신사에 있었던 게 뱀공주님이었다면 분명 제가 기척을 느꼈을 테고… 저는 신사를 관리하고 있었을 때 몇 번 뵌 적이 있어서 알고 있어요. ”
“그렇다면 대체 그 검은 뱀은 뭘까요… 공양물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는 건, 단단히 화가 났다는 걸로도 해석할 수 있다지만… 심지어 폐허가 된 신사에서 머무르고 있다고 했죠? ”
“네. ”
“아무래도 뭔가가 오래 전부터 잘못된 것 같아요. ”
“음… 일단은 그 검은 뱀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도 한 번 알아볼게요. ”
“네. 이쪽에서도 최대한 빨리 알아볼게요. ”
두 사람은 일행이 있는 여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막 두 사람이 돌아왔을 때, 저녁으로 냉모밀이 나왔다. 오자마자 배고팠는지 젓가락을 들고, 두 사람은 메밀을 게눈 감추듯 먹었다.
“안 뻇어먹어. ”
“미안해요, 배가 너무 고팠어요. ”
“키요히메씨에게 다녀오셨나요? 키요히메씨는 뭐라세요? ”
“글쎄요… 그 쪽에서도 최대한 빨리 알아보겠다고 하셨어요. ”
“아까 그 검은 뱀 말하는거냐? ”
“네. 그 녀석은 진짜 뱀공주가 아니었어요. 뱀공주는 하얀 몸통인데, 그 뱀은 검은 색 몸통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
“흐음…… 쟈카이 마을의 뱀공주에 대해 연구한 논문도 없고…… 참 곤란하게 됐다. ”
파이로는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편의점에서 사 온 초밥을 먹고 있었다.
“…잠깐만, 유메지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
“유메지 씨요? ”
“그 쪽으로 조사했다니까 뭔가 알 거 아냐. …애초에 뱀공주가 떠난 것도 유메지의 일로 인해 뱀공주가 지금까지 자신을 달래기 위해 인육을 바쳤다는 사실을 알았기 떄문 아냐? ”
“그렇긴 하지만, 그 검은 뱀의 정체가 뭔지까지는 모르실걸요… 일단 제가 한 번 연락은 해 볼게요. ”
미기야는 유메지와 통화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복잡한 상황과는 달리 별이 총총하게 떠 있는 밤이었다.
“애시. ”
“응? ”
“괴이가 그 지방의 토지신을 따라하는 경우도 있어? ”
“우소가미 외에는 그런 능력을 가진 녀석은 없어. 그런데 우소가미는 내가 먹어버렸잖아. ”
“흠… 그럼 그 녀석은 대체 뭐지…? ”
“뭔데 그래? ”
“아까 쟈카이 마을에 갔을 때, 쿠로키 씨가 검은 뱀을 봤대. 그런데 아마노테의 말에 의하면 뱀공주는 하얀색 몸통을 가졌다는 거야. 토지신이 아무리 화가 났다지만 타락도 아니고 몸 색깔이 반전될 리없잖아. ”
“음… 역시 뭔가 이상하네. 천사가 타락해서 악마가 되는 경우는 있다지만, 토지신은 그 지역의 대지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숙명이고 주어진 형태를 가지고 태어나기 떄문에 그 색이 반전될 수는 없어. ”
검은 뱀의 정체가 점점 미궁으로 빠져 갈 무렵, 유메지와 통화를 마친 미기야가 들어왔다.
“뭐래냐? ”
“유메지 씨도 잘은 모른대요. 하지만 뱀공주는 토지신이니만큼 반전되거나 할 가능성은 없고, 무언가가 뱀공주로 위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데요? ”
“위장? ”
“네. ”
“인육 바치다 토지신에게 찍힌 마을이 뭐가 좋다고 위장을… 잠깐. ”
미기야에게 한 마디 쏘아붙이려던 파이로는 불헌듯 뭔가 생각난 듯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 인육 먹이는 거, 오래 전부터 했었다고 했지? 유메지 일 터지기 전까지. ”
“네. 아까 낮에도 보셨잖아요, 두개골 널려있는 거. ”
“이건 가설일 지도 모르지만… 그 인간들의 원한이 가짜 뱀공주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은데. ”
“원한…이요? ”
“한 인간의 원한은 하잘 것 없어보일 지 모르지만, 여러 사람의 원한이 한 곳에 모이면 마을에 저주 내리는 건 아무것도 아니지. 생각해 봐, 그냥 마을에 발을 들였을 뿐인데 원하지도 않는 죽음을 맞이하고, 그 시신은 요리돼서 토지신한테 먹혔어. 기분이 어떻겠냐? ”
“…… 그럼 거기서 죽은 사람들이 가짜 뱀공주를 만들어냈단말이예요? ”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가능성은 있겠지. 그리고 뱀공주는 토지신이기떄문에 머무르는 곳의 땅을 좋은 기운으로 북돋워주지만, 가짜 뱀공주는 애초에 원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때문에 토지신으로서의 기능은 전혀 하지 못 하는거야. 그래서 마을이 황폐화된거고. ”
“가만, 그럼 공양물은 어쨰서 안 받는거죠? ”
“그야 그들의 목적은 나를 그렇게 만든 쟈카이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것일테니까. 다른 마을 놈들이 달래봤자 소용 없어. 쟈카이 마을 사람들이 용서를 빌고 빌어도 모자랄 판인데? 그 녀석은 아마, 자기를 이렇게 만든 마을 사람들을 잡아먹어야 직성이 풀릴걸? ”
“……! ”
그 곳에는 황폐해 진 신사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두개골이 있었다. 그 두개골의 주인들은 전부, 쟈카이 마을에 발을 들였다가 외부인이라는 이유로 희생되 뱀공주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사람들이었다.
원하지도 않는 죽음을 맞이한 것도 억울한데, 그 시신은 뱀공주에게 바친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요리되어진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황폐한 대지에 널려있는 두개골의 수 이상으로 많았다. 그 사람들의 망령은, 오직 한 가지 원한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바로 ‘쟈카이 마을을 없애버리는 것’.
수많은 사람들의 원한은 진작부터 모여 있었지만, 유메지의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토지신인 뱀공주가 땅에 머물러 있었기때문에 그나마 사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고, 마을도 어찌어찌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유메지의 일을 통해 자신이 인육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뱀공주는 분노해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망자의 원한은 검은 뱀공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검은 뱀공주는 원한에 의해 탄생된 존재이기떄문에 토지신으로서의 기능은 없어, 마을을 황폐화시킬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목적은 자신들을 망자로 만든 쟈카이 마을에 대한 복수뿐이었기때문에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어찌됐건 그 녀석은 원한이 모여 생겨난 괴물에 불과해. 토지신 따위가 아니지… ”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모시고 있던데요… ”
“그야 뱀공주님꼐서 얼굴을 잘 보여주려 하지 않기 떄문이죠. 저 외에는 어떤 사람들도 뱀공주님의 얼굴을 본 적 없었어요. ”
“그래서 검은 뱀이 진짜 뱀공주인 줄 알고 모신 거구만… ”
애초에 마을 사람들은, 아마노테를 제외하곤 뱀공주의 얼굴을 몰랐다. 그런 와중에 검은 뱀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검은 뱀을 진짜 뱀공주로 알고 모시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그 검은 뱀이 공물을 받지 않은 이유는… 쟈카이 마을에게 복수하는 것 외에 목적이 없기 떄문인가요? ”
“아니. 애초에 그 녀석은 아무것도 못 먹을걸? ”
“…? 아무것도 못 먹어요? ”
“그 과일은 토지신에게 바칠 공물이라 신성하게 해야 하거든. 망령이니 공물에 손을 댈 수 없어서 거들떠도 못 보는거야. 만지려고 했다간 온 몸이 타들어갈지도 모르지? ”
“…… ”
뱀공주가 떠난 토지에 홀연히 나타난 검은 뱀. 그리고 그녀를 모시고 있는 사람들. 뱀공주가 사라진 땅에 망자들이 만든 거짓된 신이 자리잡았다. 아마노테는 신사 부근의 땅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라져버린 뱀공주의 행방 역시.
“무슨 일이냐, 아마노테? 마을이 걱정되는 것이냐? ”
그녀의 등 뒤에 멘 호리병은 그녀의 마음을 꿰기라도 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뱀공주님의 행방이 묘연해서 걱정이야. ”
“음. 확실히 이 넓은 곳에서 뱀공주를 찾기란 쉽지 않지… 그래도 방법이 있을게다. 일단 그 녀석을 막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뱀공주를 찾아야지. ”
“그래야지… 일단은 공주님을 찾는 게 먼저야. 녀석을 막는 건 그 다음이고… ”
일단은 사라진 뱀공주를 찾는 게 먼저다. 그녀는 뭔가 결심한 듯 키요히메를 찾아갔다.
“아, 아마노테 씨. 뭔가 알아내셨나요? ”
“네. 그 녀석은… 뱀공주에게 바칠 제물로 희생된 망령들의 원한이 만들어낸 가짜 뱀이었어요. …그래서 공물을 먹을 수 없었던거고요… ”
“원한이… 가짜 뱀을 만들어낸다라…… 있을법한 일이죠… 당신은 그 녀석을 말리고 싶은거죠? ”
“네… 하지만, 그 전에 뱀공주님을 찾아야 해요… 하지만 이 넓은 땅 어디에서 찾아야 할 지 난감하네요… ”
“그거라면 걱정 말아요. 당신의 동료 중에, 뱀공주의 행방을 찾는 걸 도와줄 이가 있을거예요. ”
“정말요? ”
“네. 그나저나 검은 뱀이 망령이 만들어 낸 존재라니… 걱정이네요. 이러다가 마을 사람들이 위험해지는 건 아닌지… ”
“저도 걱정입니다. ”
“일단 뱀공주부터 찾으세요. 그게 우선이예요. 뱀공주 없이 갔다간 녀석에게 공격당해서 위험할 수도 있어요. ”
“네, 그럼 다음에… ”
아마노테는 여관으로 돌아왔다.
‘뱀공주를 찾는 일을 도와 줄 동료라… 누굴까? ‘